하나님과의 동행/묵상하는 하루

새벽녘의 베드로를 보았다(마27:69-75)

강 영 길 2012. 7. 13. 00:39

오늘 아침 집을 나선 뒤 건널목을 건너는데 건너편에 중년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그 여자분의 얼굴을 보고 즉각적으로 정신병이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저 여인을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서 길을 건넜고 그 아주머니 앞을 지나갔다.

 

이 아주머니는 내가 기도한 것을 알았을까? 아주머니 바로 앞에 갔을 때 나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 몇 시에요?"

이렇게 묻는 아주머니 얼굴은 마치 가면을 쓴 사람처럼 아무 표정이 없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알려주고 다시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저 사람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그렇게 하고 몇 걸음을 가는데 무언가 뒤가 근질거렸다. 마치 그 여인이 나를 뒤쫓아 오는 것 같았다. 무언가 인기척이 나를 쫓아온다고 생각되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여인이 나를 아주 바짝 뒤따라오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 와서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런데 내가 돌아서자 마자 그 백지같은 표정으로 내 눈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씨발."

나는 겁이 없는 편이다. 웬만한 일에 놀라지 않는다. 그런데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나는 그 아주머니에 대한 분노가 없다. 그리고 가능하면 친절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가식이었다.

"뭐라구요?"

이 한 마디를 했는데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나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 여인이 너무 바짝 쫓아오고 있어서 놀라기도 했거니와 그 표정과 발음이 공포스러웠다. 나는 정말로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두려움과 분노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느꼈다. 인간의 분노가 두려움에서 나오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너무 놀라서 한 마디 하자 여인은 다시 너무나 순한 얼굴로 변한다.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고선 되돌아서 가버린다.

 

그런 다음에 열시에 드리는 예배에 참석했다. 찬양을 드리고 있는데 그 여인이 떠올랐다. 그 여인을 생각하다 나는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누구인가? 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태복음 27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세번의 부인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늘 말했다. 베드로의 부인이 이해된다고. 나라도 저렇게 했을 거라고. 정말로 베드로의 심정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심정을 잘 몰랐던 것같다.

 

나는 묵상할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내가 실천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여자의 접근과 "씨발"이라는 말 한 마디에 나는 공포에 질려 버렸다. 사랑하긴 커녕 겁에 질려서 도망갈 자세부터 취했다. 만일 그 여인이 내 머리채라도 잡았다면 어쩌면 나는 그 여인에게 폭행을 가했을지도 모르고 나도 같이 욕설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말인가? 매맞고 피흘려도 그들을 위해 기도했던 예수님의 사랑을 내가 어떻게 전한다는 말인가? 나는 내 힘으로 사랑할 수 없다. 나는 내 힘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

 

베드로가 느낀 마음은 틀림없이 공포였을 것이다. 그것도 격한 공포였을 것이다. 저주까지 하면서 부정해야만 했던 베드로가 얼마나 큰 공포에 휩싸였을까? 그 많은 적대세력 앞에서 말이다. 언제 자기를 죽일지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베드로가 느꼈을 공포는 너무나 컸다. 그래서 베드로는 긍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 공포 속에서 자기를 인정하고 있으나 베드로는 공포를 이기지 못했다. 아니 예수님은 공포를 느끼지 않았으나 베드로는 느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내가 공포를 느낀 그 순간 나는 이미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다. 이미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다. 그 여인이 "아니에요."라고 말한 것은 나에게 닭 우는 소리였다. 그제서야 나는 안심을 했고 그제서야 나는 베드로가 울었듯이 울었으니까.

 

나는 새벽녘의 베드로를 봤다. 아니 베드로의 그 공포를 봤다. 내가 공포를 느낀 그 순간이 바로 예수님을 부정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주여 나의 연약함을 보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