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복음서/요한복음

요한복음 18장

강 영 길 2012. 9. 23. 21:11

18장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은 물었다. 예수님은 늘 묻고 대답하신다. 예수님은 뒤로 숨지 않았다. 당할 일을 아시고 나아갔다. 도망가지도 않았다. 때가 되었을 때 숨지 않고 당당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사명을 가진 자세다.)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예수님은 자신을 잡아가라는 말을 하고 있다. 내가 바로 예수니 나를 잡아가라, 이런 내용이다. 복잡한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예수라고 말했을 뿐이다. 또 유다는 그들과 함께 있다. 배신하는 자는 언젠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다. 대적하는 모습으로 반대편 무리와 함께 할 것이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예수님이 대답하는 것 자체로 관리들과 병정들이 뒤로 밀려나 땅에 엎어지고 있다. 이는 예수님 음성만으로도 능히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잡혀가는 게 아니라 잡혀 주는 것임을 다시 확인시키고 있다. 예수님이 내가 그니라고 한 말 한 마디에 사람들이 엎드러질 정도이면 만일 예수님이 다른 말씀을 더 했다면 그들 모두의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예수님이 먼저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의도가 여기에 있다. 제자들 모두 살리려고 일종의 위력 시위를 하셨다. 그냥 능력을 보여준 게 아니라 예수님에게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만일 보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를 예고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였다.)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다른 복음서에는 베드로라는 직접적 언급이 없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요한은 베드로에 대해서 좀 더 냉정한 평가를 하고 있다. 다른 복음서는 베드로의 잘못을 감추어 주고 싶어서 이름을 뺀 게 아닌가 한다. 그러나 요한과 베드로의 사이가 비교적 냉담했다고 하는데 그런 영향일 수도 있을 것같다.)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반복적인 말이지만 예수님은 끌려간 게 아니라 잡혀준 것이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 귀를 붙여주신다. 예수님은 이 상황에서도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신다. 특히 적의 상처조차 치유하신다. 예수님은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셨으며 예외는 없다.)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선을 행하는 집안이 있듯이 악을 행하는 집안도 있다. 안나스와 가야바의 집안이 바로 그런 집안인 셈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이행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을 결박하고선 하나님의 일을 행한다고 자부했던 것이다.)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와 함께 간 제자는 아마도 무덤을 산 아리마대 요셉이 아니었을까? 그는 부자였으므로 권력자들과의 관계를 형성했을 것이다. 모든 제자들이 도망간 상황에서 두 사람만 예수님의 동향을 살피고 있다.)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밤이 깊었다. 이 깊은 밤에 사람들이 불을 쬐면서까지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거룩한 사건은 세상의 주의를 받는다. 그것도 요란하게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거룩한 사건을 정죄하기 위해 파리 떼처럼 모여든다. 사람들이 의로운 일에는 모여들지 않으나 악한 일에는 이처럼 어둠을 뚫고라도 모여든다. 잘못된 열정은 이처럼 사람들을 망치고 사망의 길에 이르게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열정에 사로잡힐 때 더욱 열정적이 된다.)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자잘못을 따지기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근거없는 주장이요 뿌리없는 소문이다. 이런 것들은 근거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옳지 않음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예수님의 잘못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고초를 당한다. 잘못이 있으면 오히려 적당한 벌을 받고 끝난다. 예수님은 인간의 시종에게 직접 구타를 당하시면서도 고스란히 참아내시고 희생의 길로 가신다.)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세 번 부인을 했다. 요한은 이후 베드로가 크게 후회하고 회개했던 태도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이처럼 세 번 부인했다. 도망치지도 못하면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또 정작 질문을 받으면 진실을 부정하는 모습이 참으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게 또한 내 모습이다. 베드로가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 그곳에 아예 가지도 못했을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 베드로는 부인할 기회라도 있었으되 나는 아예 도망을 쳐버려서 부인할 기회조차 없었을지 모른다.-베드로는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뻔뻔하게 있지 않았다. 베드로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울었다. 울면서 회개했을 것이다. 제자되는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즉각적으로 인정하고 깨닫는데 있다. 실수가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이들은 이 순간에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 유월절 율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관정에 안 들어간다.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하는 자체로 율법의 창조자를 괴롭히면서 율법은 지키려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인간은 자신이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죄를 짓지 않는 자라는 자긍심을 가지려 한다. 겉으로는 죄를 짓지 않고 남의 눈에서는 죄를 짓지 않으나 본질적으로 더 큰 죄를 짓고 있다.)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예수님은 최고 권력자인 빌라도에게 전혀 굴하지 않고 있다. 빌라도가 묻는 말에 비굴하게 응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 나를 대적하는 자들을 향해 나도 당당하고 자신있는 응대를 해야 한다.)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세상의 권력에 집착했다면 그것을 능히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원한 것은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고 하신다.)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자마자 빌라도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는 진리가 무엇인지 듣지 않는다. 그는 진리에 속한 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결국 놓아주지 못한다. 인간이 어떤 사실을 알았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죄가 된다. 실천하지 않은 양심은 죽은 양심인 것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처벌에 소극적이었으나 궁극적으로 그의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영어성경에 바라바는 혁명가라고 되어있다. 정치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죽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추종하던 인물들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믿는 자들은 어디로 숨었는가? 그들은 이 사건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 많은 믿는 자들은 지하로 숨어버린다. 위기의 순간에 믿는 자가 숨으면 이처럼 예수님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예수님을 지키고 싶으면 위기의 순간에 용기있는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믿는 자가 비겁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지키고 비겁하면 예수님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