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복음서/누가복음

누가복음 5장

강 영 길 2012. 9. 27. 08:16

5장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많은 배가 있었을 것이다. 실로 나중에 보듯이 요한과 야고보의 배도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배중에서 베드로의 배를 골랐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선택한 것이다. 그것이 은혜다. 나도 그 많은 자들 중 예수님의 선택받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예수님은 경험하지 않은 것을 아는 전지함을 보이셨고, 어업의 전문가인 베드로는 무경험자의 충고에 두말없이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물을 어디에 던졌느냐가 아니라 순종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결정적이 차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에 올라 먼저 작은 부탁을 한다. 말하자면 베드로의 성품을 시험하신 것이다. 먼저 작은 부탁을 해 봤다. 그러자 베드로는 순순히 순종했다. 예수님이 누구인 줄도 모른 채 배를 띄운 것이다. 그가 순종하자 예수님은 보다 본격적으로 귀찮은 일, 곧 깊은 데로 가게 한다. 몇 시간을 소요할 일을 시켰음에도 베드로는 순종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제자삼은 것이다. 순종이 제자되는 지름길이다.)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깊은 데란 구체적이지 않은 장소다. 그러니 아무데나 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말이다. 그 넓은 호수에 깊은 데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얕은 곳이 아닌 깊은 델 가라고 했다. 가서 잡으라고 했다. 깊은 데로 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말했다기보다 그냥 내가 말한 대로 따라 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밤이 새도록, 오랜 시간을 일을 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해도 안 된 것이다. 평생 어부로 잔뼈가 굵어온 이들은 그 지역을 샅샅이 알고 있으며 물때와 고기가 많이 나는 지역도 잘 안다. 그런데 밤새 허탕을 쳤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부도 아닌 예수님이 충고를 했다. 바로 옆에 그물을 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한 시간은 더 노를 저어야 했을 것이다. 밤새 일한 어부들은 이제 자러 가야 한다. 피곤하고 지쳐 있는데 다시 가운데까지 가서 그물을 놓는 것은 동일한 수고를 반복하는 것이며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 불편한 일을 다시 할 어부는 사실상 없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말에 순종을 했다.)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말씀에 순종하니 그물이 찢어지게 잡힌다. 순종이 최대의 결과를 낳는다. 순종이 가장 큰 열매를 맺는다.)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전도의 원리다. 나에게 아무 열매 없이 전도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많은 열매가 있을 때 그것을 나 혼자 갖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불러 내 일의 동역자로 삼는 것이 전도다. 나의 열매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동참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보고 제자가 되는 것이다.)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많은 물고기를 잡은 베드로의 모습이 참 독특하다. 무릎을 꿇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으면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보다 자기를 내세운다. 그런데 베드로는 축복을 받자 예수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했다. 자기가 죄인이므로 이제 더 이상 축복을 하지 말라고 한다. 보통은 떠나지 말고 나에게 더 축복을 달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은 죄인이니 이제 축복을 그만하고 자신을 떠나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높이 샀을 것이다. )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을 보았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믿음의 반대는 두려움과 염려다. 두려움의 반대는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두려워하지 않으면 곧 믿음을 가지면 하게 되는 일이 사람을 취하는 일이다. 믿음을 가지면 먼저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한다.)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만 말을 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까지 예수님을 따라갔다. 베드로를 도우러 온 자들까지 덩달아서 예수님을 따라간 것이다. 오직 한 사람, 그에게 말했는데 정작은 그들 모두가 제자가 된 것이다. 그물을 던져서 여러 마리의 물고기가 올라온 것과 같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리 어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원한 성경에 기록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들이 베드로 곁에 있다가 예수님을 따라 나섰기 때문이다. 이처럼 곁에서 듣고도 스스로 따라나서는 것은 복이 있다. 자발적으로 움직인 자가 복이 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나가는 자만이 제자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 이것은 현실 속에서 자기 일을 안 하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다. 자기 삶의 중심 전부를 자기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옮긴다는 의미다.)

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나병 환자가 바로 나의 모습이다. 나의 온갖 문제를 예수님이 원하시면 치유하실 수 있고 고치실 수 있다. 치유받길 원하면 내가 예수님께 나아가 구해야 한다.)

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14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예수님은 치유 받은 사실에 대해 율법에 따라 입증하라고 했다. 내가 병을 고침 받은 후 사회적, 공동체적인 입증이 필요하다. 공동체가 나를 인정하고 인식하는 과정을 무시하지 말고 그 질서를 따르라는 뜻이다. 성령 충만하면 인간 사회를 무시하고 오직 하늘만 생각하는 문제를 보이곤 하는데 이는 옳은 게 아니다.)

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방금 나병 환자를 고치셨던 예수님이 이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기도를 받고자 하나 조용히 물러나 한적한 곳에 있다. 다소 모순된 상황인 것 같으나 예수님은 때를 판단하여 치유를 하셨다. 모든 일에 덤빈 게 아니라 예수님이 나설 상황에서 나섰다. 교회 일을 할 때에도 모든 것을 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기도할 때가 있고 일할 때가 있다.)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구원을 받을 때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믿음이 장성한 사람들은 부족한 자를 구원하는 데 도우미가 되어야 한다. 침상을 메고 나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수많은 환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풍병자 한 명을 고치려고 기와를 뜯었다는 것은 그만큼 간절히 바랐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마당으로 오고 대문으로 왔으나 이들은 뒤뜰로 갔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인파를 뚫을 수 없었을 테니까. 지붕에 올라가느라 시끌벅적 했을 것이다. 그 상황을 예수님도 고스란히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보면 반칙을 했다. 모두 줄 서서 기다리는데 뒤로 올라온 것이다. 새치기와 기물 파손이 이들의 반칙이다. 반칙을 해서라도 고치고 싶은 그 마음을 본 것이다. 예수님 앞에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은 반칙을 하건 무엇을 하건 믿음의 길은 더 악착같이 가야 한다.)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병은 죄때문임을 보여준다.)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죄를 사하는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으니 예수님은 본인이 하나님임을 나타내신 것이다. 일어나 걸으라고 할 수 있었으나 먼저 죄를 사해주셨다. 이를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가 아니었다. 그들은 정치적인 구원을 꿈꾸었는데 예수님은 영적인 구원을 하신 분이고 그들은 메시아가 오는 날 세상이 바뀐다고 기대했으나 예수님은 세상을 바꾸지 않으셨다. 물론 실제론 바꾼 것이지만 인간이 그것을 인식할 수 없었다.)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치유 곧 구원을 받고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지 않는 내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중풍 환자는 자기 짐을 가져갔다. 다른 사람이 들어줬던 짐을 이제는 자신이 지고 간다. 믿음이 장성하면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건강하게 걸어가는 것이다. 자기 짐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걸어야 한다.)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나는 매일 놀라운 일을 보고 산다. 내 삶에서 매일매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그는 전후를 따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버렸다는 세리는 자기 집으로 가서 잔치를 한다.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 어떻게 집으로 초대를 할까? 이는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기존의 삶의 기득권을 버렸으며 마음의 중심을 이동시켰다는 말일 것이다. 기존의 세계관과 다른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맞아들인 자체로 모든 관습을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자체를 즐긴다.)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세리는 당시에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는 계층으로 율법주의자들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으로서 그들과 함께 먹고 있으니 이는 사회적 관습을 여지없이 깨뜨린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사회적 관습이 하나님의 질서보다 높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질서를 존중하지만 그 질서도 사랑 위에 있을 때 존중하신다. 증오나 정죄를 위한 질서는 하나님이 원하는 질서가 아니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은 죄인들을 오히려 친구로 삼으셨다. 나는 의인이라고 하는 자들 즉 교만한 자들을 친구 삼지 않고 죄인들 즉 겸손한 자들을 친구 삼으셨다.)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이들은 결코 요한의 동조자가 아니다. 이들은 요한을 잡아 죽인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상황 논리에 따라 마치 요한의 제자들이 의로운 것처럼 말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진정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정죄하고 흠을 잡기 위해 따지기만 하므로 문제가 된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이 함께 하실 때에 굳이 금식 기도를 하며 지내지 말고 즐겁게 먹고 마시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의 마음에 가득하면 굳이 금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나에게 예수님이 없으면 금식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나의 나날을 즐겨야 한다.)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예수님의 복음은 새 포도주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낡은 율법의 부대에 넣으려 하면 결국 율법은 무너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선이지 율법이 우선이 아니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또 율법에 취한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알아왔던 율법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