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복음서/누가복음

누가복음 23장

강 영 길 2012. 10. 4. 08:46

23장

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한 적이 없다. 그러나 죄를 짓는 자는 이처럼 자기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거짓 위에 거짓을 더한다.)

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은 여전히 자신의 죽음을 불러올 질문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말한다.)

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5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6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빌라도는 이성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이 문제에서 발을 빼려고 여러 모로 애쓰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석방을 시킨 게 아니라 어물쩍 자기 책임을 피하고 있다. 군중들의 항의에 대해 자신의 과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가 빌라도는 종국에 동의를 하고 만다. 죄를 지을 때 우리가 죄라는 사실을 몰라서 짓는 게 아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동의하면서도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8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헤롯이 기뻐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자 함이 아니다. 마치 서커스를 보듯이 예수님의 이적을 보려고 한 것이다. 예수님을 구경거리로 생각한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만날 때도 예수님이 행한 일들을 보려고 만나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삶의 주인으로 만나야 한다.)

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어디서든 할 말을 하신 예수님이 이제는 묵비권을 지키고 있다. 모든 일을 끝낼 때가 되었음을 예수님 스스로 정하신 것이다. 이들과의 관계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으며 오신 일도 마무리 하시려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께 물어도 예수님이 더 이상 말하지 않을 때가 올 수도 있다. 나와의 관계를 원치 않으신다면 그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더욱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은 특별한 죄목을 달지 못하고 빌라도에게 보낸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조롱하는 것이었다. 많은 경우 자신의 논리에 문제가 있으면 이처럼 감정적으로 일을 해결하고 만다. 사실인가 아닌가를 볼 수 있는 눈만으로도 진리에 훨씬 가까이 갈 수 있다. 헤롯도 빌라도와 마찬가지로 죄목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석방시키지 않은 채 돌려보냈다.)

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두 사람은 식민지 상황의 적대관계였다. 하지만 적대관계인 자들이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면서 친구가 된다. 악은 서로 친구 맺기를 좋아한다. 내가 죄와 적이 되었다가도 예수님의 존재를 잊거나 조롱하는 순간 죄와 친구가 된다.)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때려서 놓겠다고 한 것은 군중을 만족시키겠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라 사람의 눈치를 보는 판단이다.)

17 (없음)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예수님이 고난당한 순간 예수님을 따르던 그 많은 무리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온 성중에 병 고침을 받고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기록은 없다.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군중들은 어디론가 숨은 것이다. 예수님 혼자서 추종한 자들과 함께 질 고난을 모두 짊어진 것이다. 책임질 상황이 되면 나도 이렇게 숨어버리고 예수님이 책임지도록 만들 때가 많다.)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빌라도가 반복적으로 물으나 사람들은 죄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못 박으라고만 한다. 논리적인 것도 없다. 그냥 죽이라는 말밖에 하지 않는다. 십자가에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 말은 생명도 주고 죽음도 준다. 정죄하는 세력들은 죽음을 준다.)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예수님 옆에 추종자들이 따르다가 위기가 닥칠 때는 적대세력만 남아있고 그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추종자의 세력이 있는 만큼 적대세력도 존재한다. 결정적일 때는 적대세력의 힘이 더 무섭게 작용한다.)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빌라도는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결정권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을 군중에게 묻고 있다. 마침내 군중의 뜻대로 한다.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빌라도가 옳고 그름을 안 것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가 행동으로 옮겼을 때 책임에서 벗어난다.)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인간은 진리를 민란과 살인보다 더 무섭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리를 거부한다. 자신이 가진 욕망들을 버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인지 모른다. 진리는 죽일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살인자보다 진리의 예수님을 죽이길 원했던 것 아닐까. 나도 예외가 아니다. 진리를 피해 죽음으로 가는 죄를 선택할 때가 얼마든지 있다.)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예수님의 짐을 대신 짊어진 것으로 우연의 일치로 십자가를 진 청년이다. 그러나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믿는 자가 예수님의 짐을 대신 질 수 있다는 것만한 영광이 없다. 3년간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제자들도 못한 일을 이 짧은 순간에 청년이 하고 있다. 신앙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중요하다. 예수님이 하실 일을 이처럼 전적으로 맡긴다는 것, 그것이 신앙인이 바랄 일이 아닌가 싶다. 청년은 영문도 모른 채 그 짐을 지었다. 그런데 그것은 고통의 자리였다. 영광은 고통이다. 이런 역설이 성립되는 부분이다.)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현실의 일은 관계하지 않으면서 오직 하나님의 일이라고 쫓아만 다닌다. 인간과의 관계는 의미 없고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런 때에 예수님이 하실 말씀이 나와의 관계를 생각지 말고 인간과의 관계를 더 잘 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건지도 모른다. 자기 가족의 문제에는 진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매일 자기 신앙을 점검한다며 교회를 걱정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닐 수 있다. 한편 예수님이 가는 길은 슬픈 길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슬픈 길을 가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을 위해서는 울 일이 아니요 인간을 위해서는 울어야 한다.)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사람은 결국 심판에 이른다. 그럴 때에 그들을 위해 울어야 할 일이 크다. 따라서 차라리 낫지 않으면 울어야 할 일이 적으므로 복이 있다는 것이다.)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산이 덮기를 바랄까. 그럴 만큼 심판의 고통이 크다는 것이다.)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좋은 나무, 좋은 신앙인에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데 마른 나무, 믿지 않는 자는 더 큰 재앙이 온다. 더 건강하고 푸른 나무여야 심판의 날에 고통을 피한다. 건강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착하고 사람에게 잘 대하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에게 잘 대해서 악에 동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옳은 일에 동조하고 옳지 않은 일을 거부하는 신앙 안에서 굳건하게 서는 게 중요하다.)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십자가를 진 자는 예수님 외에 두 명이 있다. 예수님은 진리로 인해 십자가에 박히지만 두 사람은 악을 행해서 십자가에 박힌다. 같은 십자가라도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를 질 수 있고 내 욕망으로 인해 질 수도 있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다. 부활을 위해 가는가? 영원한 사망을 위해 가는가? 내가 내 십자가를 지는 것이 나의 욕심과 죄로 인해 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 외에 십자가를 진 사람이 세 사람이다. 그들 중 하나는 영문도 모른 채 영광의 문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둘은 범죄로 인해 죽음으로 들어간다.)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예수님의 좌우에 악한 자들이 있다. 진리가 있는 그 주변에는 늘 악이 있다. 죄지은 자들이 에워싸고 있고 예수님은 그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진다.)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자신을 못 박고 죽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예수님은 그들 행위의 원인을 말하고 있다. 기도한 초점은 그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알지 못하고 죄를 짓고 예수님을 모욕한다. 그런데 알고도 예수님을 모욕하는 나를 위해서 예수님은 무어라고 기도를 하실까?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타인이 의도하지 않은 잘못, 곧 알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내가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사람들이 구경하고 비웃고 있다.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이처럼 구경하고 비웃는 자들인 경우가 많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너무나 안타까워하는데 예수님을 바로 앞에 두고도 구경꾼과 조롱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다. 내려오지 못한 게 아니라 내려오지 않았다. 내려오면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을 구하고 인류를 구원할 수 없으므로 십자가를 지셨다. 나를 구하기 위해 십자가를 박차고 나오는 나와는 반대이시다.)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조롱하기 위해 쓴 패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글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은 진리였다. 때로 진리는 이처럼 우스꽝스런 의도로 만든 것 속에도 존재한다. 사람들이 무심코 저지른 일이 사실은 진리일 때가 있다.)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죄를 지은 자는 자기가 곧 죽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비방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죄로 인해 죽을 상황에서도 남을 탓하기에 급급하다. 내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회개하는 게 우선이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전도한 게 아니라 가만히 두었다. 또 그 사람을 꾸짖거나 정죄하지도 않았다.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동안 말씀을 전했으나 모든 사람이 전도되지는 않았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내 죄로 인해 사망하면서도 예수님을 탓하고 남을 탓하는 행위는 하지 않아야 한다.)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이 죄인을 구원하는 데 대단한 조건이 있지는 않다. 예수님을 향해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자기가 구원받기 원함을 말씀드렸을 때 예수님은 구원을 약속하셨다. 이 죄인은 죽음을 앞에 둔 자다. 그러므로 모든 진심이 들어있을 것이다. 꾸며서 말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고백한 것이며 진정으로 구원을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내 죄를 고백하고 구원을 구하면 용서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이 죄인은 마지막 짧은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았다.)

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한 장의 장막이 사라진다.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직접적인 만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은 인간을 탓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베푼 긍휼은 인간을 향했으나 인간의 문제들을 보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고통의 극복도 하나님께 기도로 올려드렸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라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백부장은 물론 구경꾼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고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했다. 믿는 자는 말로 믿음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행함으로 증명해야 한다. 끝까지 오직 선으로 갚을 때 사람들은 그 행함을 보고 변화되며 전도도 된다. 내 어려움을 호소하고 내가 찾을 권리를 주장하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내가 받을 축복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에 더 집중할 때 사람들이 나를 보고 변하게 된다.)

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예수님의 사체를 버려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관리하고 있다. 예수님이 침묵할 때 당장 죽은 것 같아도 그 예수님을 따르고 충성을 다 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