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로마서

로마서 1장

강 영 길 2012. 10. 19. 21:20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예수님으로 인해 내가 은혜를 받고 직분을 받은 것이다. 내 능력으로 받은 것이 아니다.)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택정함을 받음, 사도의 직분을 받음, 순종하게 함, 부르심을 받음, 사랑을 받음" 이 모든 어휘가 모두 능동이나 주동형이 아니다. 나에게는 어떤 선택이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과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택하신 바고 은혜로 주신 것이다. 은혜란 내가 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저 얻은 것이라는 뜻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 한 일이 전혀 없다. 나는 죄를 지었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런 나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다."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의 소유물이라는 뜻이다. 나는 주권자가 아니고 주님의 소유물이다. 소유물이 자신을 주장할 수는 없는 법이다.

로마서 9장 21절 말씀과 같이 주인이 그의 마음에 내키는 대로 그릇을 사용하는 법이다. 나는 그의 소유물일 뿐이니 아무런 주권이 없다. 따라서 나는 가장 낮은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한다.

바울은 모든 성도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 어떤 성도에게는 은혜와 평강이 있고 다른 어떤 성도에게는 은혜와 평강이 없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적이 아니고 내 형제와 가족이다. 내 형제에게 은혜가 없고 평강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는 진정한 가족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지체에게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소망해야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과 능력이 5절처럼 예수님을 통해 온다.

오늘 하루, 질그릇과 같은 겸손함으로 살고 여수까지 나와 동행하는 지체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 또 나를 만나는 모든 이에게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 아울러 나는 과연 은혜와 평강을 주는 자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바울의 감사의 조건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음이다. 그냥 감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한 감사다. 내 모든 조건이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내가 가고자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고자 하는 것이다. 바울의 모든 생각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움직일지를 생각한다.)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바울이 이들을 보고자 한 것은 은사를 나눠주어 믿음이 견고해지게 하려는 의도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한다. 바울은 타인의 믿음을 세우기 위해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원하고 있다.)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군대에 간 병사들이 가장 행복해 하는 때가 누군가 면회올 때다. 면회를 오면 종종 외박이 허락되기도 하지만 굳이 외박이 허락되지 않더라도 잠시 병영 생활의 스트레스를 잊거나 하소연하는 방법으로 그 심정을 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쁜 시간이다.

어떤 부모가 자녀가 근무하는 부대에 총기사고가 났다고 치자. 그 부모는 자녀가 무척 걱정될 것이다. 그러나 자녀에게서 전혀 소식이 없으면 어떨까? 그 부모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녀에게 연락을 취할 것이다. 전화도 하고 편지도 하고 심지어 면회를 신청할 것이다. 자녀와 연락이 될 때까지 무언가를 시도할 것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그 자녀 생각에 골몰할 것이다.

바울은 그런 부모의 심정으로 형제들과 연락 취하기를 원하고 있다. 믿음의 형제들을 생각하는 심정은 부모의 마음과 같아야 한다.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한다.

나는 과연 기도할 때마다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는가? 또한 막힌 길을 뚫고 형제들에게 나가려고 시도한다. 바울이 하는 일은 속된 말로 "월급받는"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가서 오직 은사를 주고 싶은 것이다. 믿음의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얻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오직 그들에게 가서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바랄 것이 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이 은사를 주는 까닭이 형제들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안위함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형제를 돕는 것은 내 스스로를 돕는 것이다. 내가 형제에게 무언가를 베풀면서나도 스스로 안위를 받는 것이다. 바울이 생각하는 신앙 공동체의 원리다.

오늘, 나는 어느 믿음의 형제를 위하여 막힌 길을 뚫으려 노력하며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안위함을 주실 것을 믿고.

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가고자 한 마음을 형제들이 알아주길 바라고 있다. 하나님만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주길 원한다. 그럴 때에 공동체적 믿음이 더욱 성장하기 때문이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나는 어렸을 때 빚진 집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우리 집의 형편은 아주 좋지 않았다. 어머니가 하루벌어 하루 먹여 살렸으나 그나마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야 했다.

그런 우리집에는 늘 빚쟁이들이 몰려왔다. 빚이라야 고작 천원 혹은 이천원, 많으면 삼만원 정도를 갚으라는 빚쟁이었다. 그러나 빚을 진 우리 가족의 마음은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하긴 그래도 그때의 빚쟁이들은 정이라도 있었다. 제발 한 번만 말미를 달라고 통사정을 하면 못이기는 체 돌아가곤 했으니까.

요즘은 주로 빚을 은행권에서 진다. 카드빚이며 대출 빚을 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이들은 만일 연체가 늘고 일정한 상황이 되면 차압이 들어오고 온 가족이 거리로 나앉게 되기도 한다. 심지어 빚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빚을 진 자는 가슴 속에 늘 거대한 추를 달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빚을 진 자에게 하늘은 그렇게 파랗지가 않고 태양도 밝지가 아니하며 별빛조차도 자신을 감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바람만 불어도 그 바람 소리가 자신을 쫓아다니거나 혹은 자신을 조롱하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바울은 자신을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자라고 표현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바로 빚진 자들이다. 모두에게 복음을 전할 때까지는 나는 복음에 빚진 자인 것이다. 그러하므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떳떳하게 세상을 살 수 없다.

바울이 형제들에게 주고자 한 것은 물질이 아니었다. 지식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믿음을 전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멀리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직접 찾아가서 전하고자 했다.

빚진 자가 멀리서 말로만 빚을 갚을 순 없다. 갚을 물질을 들고 직접 찾아가야만 한다. 또한 그 빚을 갚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바울은 복음들고 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빚을 졌을 때 얼마나 부끄러운지 빚진 자가 되어 보면 안다. 하지만 빚을 갚을 때 마음의 얼마나 편안해 지는지 모른다.

믿음을 전하는 것은 빚을 갚는 행위이므로 부끄러운 게 아니라 떳떳하고 자랑스런 일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권능을 행하시기 때문이다. 빚진 자로서 믿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나에 대한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다.)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다. 복음을 주는 것이 곧 하나님의 능력을 주는 것이요 받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이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이 되는 것도 믿음이요 그가 사는 것도 믿음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된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의 경건하지 않음에 대해 나타난다고 했다. 일단 진리를 막는 것이 문제이며 그들의 경건하지 않음이 문제다. 나의 모습 중 진리를 막는 모습을 먼저 찾아내어 그것들을 없애야 한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내 신앙의 척도에 대한 많은 질문이 들어있는 본문이다.

전쟁 영화에서 보면 한 성을 무너뜨릴 때 엄청난 집중 공격이 이뤄진다. 날아가는 포탄의 수를 셀 수도 없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심각하다. 다리가 잘리고 팔이 잘리고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창자가 튀어 나오고......

내 영적인 문제는 악한 영으로부터 이와같은 공격을 당한다. 하지만 내가 영적인 무장을 하지 못하면 이런 공격에 너무나 쉽게 노출되고 만다. 그래서 내 영혼의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내 신앙의 창자가 터져 배 밖으로 나오고 눈을 잃고 귀를 잃게 된다. 이런 모습을 만신창이라 한다.

나는 영적으로 만신창이가 아닌가?

이번에는 바울이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마치 아침부터 내 영적인 상태에 대하여 집중 포화를 맞은 것 같다.

-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감사하는가?

-지혜있는 자처럼 행동하여 교만하지 않는가?

-썩어질 것을 위해 우상 숭배하지 않는가?

-정욕에 휩싸여 살지 않는가?

이 질문들 중 어느 하나도 피해 갈 수가 없다.

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하며 교만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버리지 못하여 우상을 만들고 정욕에 휘말려 살고 있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런 나에게 던진 가장 무서운 질문이 다음 질문이다.-이 모든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나를 부끄러운 욕심 즉 죄 가운데 놓아두시지 않는가? 주께서 나를 이런 죄들 가운데 그냥 내팽개쳐 버린다면 나는 결국 사망의 골짜기에 있을 수밖에 없다. 무시무시한 무기를 들고 십자 포화를 퍼붓는 적들 앞에서 홀로 서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주여 나의 죄를 회개합니다. 주님의 자비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여 나를 홀로 두지 마소서 눈물로 주님 앞에 엎드리오니 죄 가운데 홀로 있음이 두려우니 나를 홀로두지 마소서.)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내버려 둔다. 하나님이 선택하고자 하는 자가 아니면 그들을 죄악 가운데 둔다. 나를 그렇게 버려둔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나는 악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도모하는 자다. 악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악한 생각을 만들어내는 자다. 그것은 나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는 말이다.)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 악한 일에 마음으로라도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이 없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무정함은 물론 무자비하기까지 한 자가 바로 내 자신이다.)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러한 죄들을 알면서도 행하고 또 계속적으로 행한다. 아울러 나는 죄악의 동조자까지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선시되면 결코 사람의 죄에 동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