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와 버섯
자연물에 대한 이름 중 참 정겨운 이름이 많다. 까마귀는 까악까악 울고 소쩍새는 솥적다고 울고 기러기는 기럭기럭 울어서 한 여류작가는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고도 하였다.
식물의 이름은 대다수가 꽃이나 열매, 잎사귀의 모양이나 이름을 따서 짓는다. 동백이 열리면 동백나무 잎사귀가 일곱개면 칠엽수, 밤이 열리면 밤나무 등등 구구히 예를 들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런데 아주 독특하게도 그 나무가 희생될 때의 이름이 나무 이름이 된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나무가 자작나무다. 자작나무의 이름은 그 나무가 불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타기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다른 식물이 생명과 관계된 꽃이나 열매에 이름을 붙인 것과 달리 불타서 없어질 때 지은 이름이라는 점이 참 독특하다.
자작 나무 중 겨울의 평균 기온이 영하 18도 이하로 내려가는 곳에서 자라는 자작 나무에는 드물지 않게 귀한 버섯이 매달린다. 말굽 버섯과 같은 비교적 헐한 버섯도 열리지만 차가버섯같은 고급 약재에도 들어가는 버섯도 열린다. 차가버섯은 생김새는 마치 검은 찰흙을 나무에 발라둔 것같은 모양이다.
이 버섯이 자라서 성인 남자 주먹 두 개 정도의 크기가 되면 자작나무는 서서히 늙기 시작한다. 나무의 가장 기둥 줄기에 자리를 잡은 차가버섯이 자작나무의 양분을 심하게 빨아먹으며 성장하므로 키가 큰 자작나무는 양분을 저 하늘 위의 가지끝까지 다 보내지 못한 채 시들기 시작한다. 버섯이 자랄수록 나무는 점점 더 병이 들어 마침내 나무는 생명을 잃고 만다.
거대한 자작 나무를 죽이면서까지 버섯은 자기 생명을 키웠으므로 나무가 죽으면 그 버섯은 왕성한 생명력으로 삶을 영위해야 한다. 그러나 나무가 죽으면 그 버섯도 얼마 가지 않아 죽고 만다. 버섯은 자생력이 없으므로 숙주인 나무가 죽으면 자신도 죽고 마는 것이다.
한편 차가버섯이 자작나무의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기생을 하는 동안 자작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나무의 씨앗은 주변 땅에 떨어져 홀로 자라기 시작한다. 버섯이 왕성하게 자랄 동안에는 아주 연약하기만 한 작은 나무는 어미 나무가 죽고 버섯도 다 죽을 무렵에 청년 나무로 자란다. 어미 나무와 차가버섯이 죽어서 땅에 쓰러질 무렵에는 이 나무는 어느새 하늘을 찌르는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 있다.
오늘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차가버섯처럼 키운다.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밀착되기도 했지만 부모들도 자녀들을 땅에 떨어뜨려 키우지 않고 버섯 덩어리처럼 키워나간다. 이 덩어리는 이른바 암적 존재로 성장한다. 암처럼 세포들을 하나둘 정복하여 죽이면서 퍼져 나가고 마침내는 그 부모를 모두 빨아먹고 만다. 부모가 더 이상 능력을 상실했을 때 그 자녀는 차가버섯처럼 자신도 자립하지 못한 채 생명을 잃고 만다. 연약하지만 땅에 홀로 선 나무는 자라는 반면 부모에게 기생한 자녀는 결코 홀로 설 수 없다.
오늘날 부모가 모든 것을 제공하며 금지옥엽 키운 자녀들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그 아이들의 의지에도 책임이 있겠으나 그 아이들을 독립시키지않은 부모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부모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이유로 자녀를 독립시키지 않는다. 무엇보다 부모 자신의 열등감과 고독으로 인해 자녀에게 강한 애착을 느끼면서 자녀를 자신에게 기생시키는 부모가 문제다.
자기의 고독과 자기의 열등감을 자녀에게 무언가를 제공함으로써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자녀들이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와 동반자살을 한다. 실제로 동반자살을 한다는 뜻은 아니나 동반자살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행태를 보인다는 말이다.
건강한 부모일수록 자녀를 건강하게 독립시킨다. 이것 하나만 더 해주고 그만 하겠다고 말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 못 해줬으니 이것으로 보상한 뒤에 그만둔다는 말도 옳지 않다. 스스로 하게 해 주는 게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를 잘 돌보지 않아서 아이의 그릇이 성장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이럴 때 부모가 뒤늦게 후회를 하면서 아이에게 반대급부로 엄청난 공급을 하면 아이는 그 공급으로 인해 오히려 질식사할 수도 있다.
어려운 말이지만 때가 늦었을 때 더 잘 대처해야 한다. 운전중 자동차가 빙판에 미끄러지면 운전자는 반사적으로 운전대를 반대로 빨리 꺾는다. 이때 지나치게 핸들을 꺾어서 차가 완전히 회전을 하며 큰 사고로 이어진다. 자동차가 미끄러졌다고 해서 핸들을 지나치게 많이 꺾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정리하자면, 첫째, 아이는 독립시키며 키워야 한다. 그게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은 상대가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독립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둘째, 때가 늦었을지라도 지나친 보상을 하려고 하면 더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부모는 이 균형자를 잘 잡아 나가야 하는 외줄타기 선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