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창세기

창세기 18장

강 영 길 2013. 12. 2. 13:35

아브라함이 아들을 약속받다

18장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하나님은 밤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낮에도 이처럼 사람에게 나타나신다.)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하나님과 두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을 때 아브라함은 달려 나가서 사자를 맞이한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게 잡는다. 그리고 그들더러 축복을 해 달라는 게 아니라 자기가 대접할 기회를 달라고 한다. ‘은혜를 입었으면’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대접할 수 있는 게 은혜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을 만난다면 미적대지 말고 그들을 마음과 정성을 다해 환대하고 그들의 쉴 공간과 취할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 알고 보면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보내셨다. 따라서 내가 그들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이 은혜다.)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하나님의 사자를 대접할 때 최상은 아니더라도 최선의 것으로 판단되는 것들로 대접해야 한다. 송아지를 잡아서 요리할 정도면 꽤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고 주께서 그 긴 시간을 기다리셨다. 기다리지 않으면 대접할 기회조차 사라진다. 하나님의 발을 씻을 물을 떠오도록 허락한 그 순간부터가 은혜다. 내가 살아있도록 해 주신 것도 은혜요 찬양할 시간을 주신 것도 은혜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접하고자 할 때도 하나님은 이처럼 쉬면서 기다리실 것이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하나님은 사라가 한 말을 그대로 말하고 있다. 사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다. 그러니까 9절에서 사라가 어디 있는지를 물은 것도 현재 사라의 처지가 어떠한가를 확인하는 말이다. 그녀가 이미 나이 들고 활동을 왕성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그러한 여인에게 아이를 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주시면 그것은 은혜라고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사라가 이미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자이기에 아이를 주는 것이 은혜다. 은혜는 아무 노력 없이 받는 것이다. 아무 능력없이 받는 것이 은혜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이 하나님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하나님께 불가능이 있을 수 없다.)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사라가 만일 자신의 실수를 계속 감추고 있으면 계속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지적해 주고 있다. 만일 사라가 거짓말한 것을 묵인해준다면 사라의 마음 속에는 계속 죄책감이 남아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거짓말 했다는 것을 직시하게 해 준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잔인해 보인다.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는 사라를 위로해주는 게 더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라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라가 더 이상 거짓으로 인한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한 것이다. 우리는 정확하게 진단하고 지적한 것을 정죄라고 한다. 분노와 감정이 없고, 사랑의 마음으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정죄는 아니다. 그 안에 교만이 들어있을 때 정죄가 된다. 하나님은 사실을 지적하여 오히려 죄책감을 벗겨주는 것이 더 큰 사랑임을 보여준다. 사라의 거짓말을 그냥 받아주었다면 사라는 평생 죄책감을 지고 살았어야 하지만 하나님이 정확한 지적을 함으로써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당장은 조금 부끄러울지라도 자기의 실수를 빨리 벗어던지는 게 더 나은 일이다.)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하여 빌다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나님은 인간에게만 정직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이 먼저 정직함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침묵하실지언정 의도적으로 속이거나 숨기지 않으신다.)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아브라함을 택한 이유가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함으로써 아브라함을 축복하겠다는 언약을 이루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광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축복하는 데까지 가신다.)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하나님은 인간의 부르짖음을 들으면 멀리서 보는 게 아니라 직접 가서 확인하신다. 이것은 소문만으로 결정해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그 부르짖는 것이 우리의 부르짖음과 일치하는지 직접 확인하신다. 가령 내가 어떤 직위에 오르면 헌신하겠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의 기도가 사실인지를 확인하러 직접 오신다. 듣기만 하고 들은 것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다른 의도가 있는지 직접 진단하신다. 그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시지만 다시 확인함으로써 실수치 않으시는 것이다. 소문이 나면 그 소문의 진상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한다. 그 실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무작정 소문에 휘말리면 결국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특히 이러한 사실관계를 중시하신다. 그래서 소돔의 문제를 들으시고 그냥 듣기만 한 게 아니라 사실이 무엇인지 확인하러 직접 가시겠다고 한다. 하나님이 직접 나에게 왔을 때 내 실체가 어떨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듯 나도 하나님께 숨길 게 없어야 한다. 내가 숨김없이 고백하고 하나님은 직접 나를 관찰하셔도 좋은 관계여야 한다.)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영어역에는 ‘다른 이들은 떠났으나 여호와는 그대로 남았다.’고 되어있다. 그러니 두 천사만 갔고 여호와만 남았다는 것으로 보인다.)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은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께 따지듯이 간구하고 있다. 그것은 의인들을 봐서라도 그 땅을 멸하지 말라는 중보기도다. 그런데 26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들어주신다. 하나님의 뜻과 다를지라도 믿는 자의 간구를 하나님은 들어주신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친밀함이 유지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믿음이 된다.)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아브라함은 자신을 재나 티끌과 같다고 먼저 겸손한 자세로 구하고 있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열대 지방에서 소금의 역할은 상상할 수 없이 중요했다. 하루만 지나도 음식이 썩어버리는 더위 속에서 소금은 금보다 귀한 물건이었다. 소돔과 고모라는 당시에 가장 귀한 물건 중 하나였던 소금 생산지였다고 한다. 그만큼 풍요를 누린 도시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곳에 살았을지 상상이 된다. 수만명의 사람이 족히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큰 도시에서 의인이 열 명이라도 있다면 멸망하지 않겠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사실상 하나님께 떼를 쓰듯이 조르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요구하는 것을 한 마디 거절도 없이 순순히 들어주셨다. 부자가 하늘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말씀은 소돔과 고모라를 보면 알 수 있다. 풍요로운 곳에 의인 열 명 나기가 어렵다. 아브라함은 설마 열 명이 없겠는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열 명도 찾을 수 없음을 알고 계셨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친히 내려오셨을까?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내려오신 이유는 그만큼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절대로 멸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혹시라도 그 열 명을 찾을 수 있을까봐 다시 한 번 샅샅이 뒤지러 내려오신 것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보고 돌다리도 두드리자는 속담과 같이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열 명을 찾기를 기대하셨을 것이다. 요나서에서, 그 타락한 니느웨를 구하고 싶어 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서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