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창세기

창세기 26장

강 영 길 2013. 12. 6. 17:00

26장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삭이 하나님께 했다는 말이 없다. 예배하거나 찬송하거나 기도한 적이 없음에도 하나님이 나타나서 이삭에게 말씀을 주신다. 하나님이 원하실 때는 일방적으로 말씀을 주신다. 길이 아니면 막아서시기 때문이다.)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삭에게 이유없는 축복을 내린 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 때문이다. 특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말씀을 지킨 것으로 인해 아들과 후손을 축복하겠다고 한다. 부모의 신앙이 자녀와 후손에게 축복으로 전해진다.)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이삭은 비록 자신이 처한 현실이 만만치 않으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온다.)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저질렀던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부전자전, 부모의 태도는 자녀에게도 알게 모르게 전해진다. 이삭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일으킨 아브라함의 문제가 이삭에게서 등장하고 있다. 두려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유전자가 전이된 것이다. 두려움은 인간에게 실제보다 큰 문제를 일으킨다. 두려움은 거짓말과 범죄의 원인이 된다. 그 두려움의 뿌리는 인간의 눈을 의식한 안전 욕구나 물질욕에서 나올 수도 있고 지금처럼 안정욕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물질이건 안정이건 인간이 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 이점을 이해하지 못해서 두려움이 나온다.)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아브라함 때에는 하나님이 선조 아비멜렉에게 깨달음을 줬으나 이번에는 직접 관찰하여 사실을 알아차렸다. 우리가 깨닫는 방법도 이와같이 여러 가지다. 직접 깨닫는 것, 하나님이 알려주는 것, 사람이 알려주는 것 등 다양한 경로가 있다.)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아비멜렉은 왕의 호칭으로 사라를 아내로 삼았던 왕의 후예다.)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보여줬던 관대함을 이삭에게도 보여주고 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은 물론 이삭에게도 은혜를 베푼다. 하지만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잘못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이삭으로 인해 자신이 범죄할 뻔 했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모르는 척 리브가를 취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비멜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것이다. 범죄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분별력을 가진 아비멜렉의 태도가 훌륭하다. 이삭은 두려움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게 할 뻔했다. 아비멜렉의 분별력이 없었더라면 모두가 연루된 범죄의 소용돌이에 들 뻔했다. 한 사람이 원인이 되어 범죄의 소굴이 될 수 있고 아비멜렉처럼 한 사람이 원인이 되어 모두 범죄를 피할 수도 있다.)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백배를 얻는 게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이시다.)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사람이 크게 성공하면 반드시 적이 있게 마련이다. 이삭에게도 적들이 생겼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그 이삭과 전쟁을 치르는 게 아니라 떠나기를 권하고 있다. 아비멜렉의 인간됨을 보여준다. 또 이삭도 그 땅을 순순히 떠난다.)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땅을 들고 이사할 수는 없다. 이삭은 처음에 골짜기로 이사를 했고 두 번이나 우물을 양보했다. 당시에 우물을 파는 것은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다. 우물이 곧 생활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삭은 그 모든 것을 두고 계속 뒤로 물러났다. 소유권 주장을 하지 않고 양보를 한다.)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은 아브라함의 소유에서 우물을 팠으나 그랄 사람들이 소유권을 주장하자 계속 물러난다. 분쟁을 했다면 서로 피를 흘릴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이삭이 양보를 함으로써 문제가 커지지 않았다. 양보로 인해 다툼이 없어질 거라면 양보를 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이삭이 이처럼 물러나고 양보한 원동력이 단지 그의 성품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미 백배 농사의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편 인간은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는 불만이 많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불만도 없다. 이삭에게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수 있다. 따라서 물러나고 물러나는데 그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삭에게 평안한 길을 열어 주셨을 것이다.)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에서는 한 번씩 나타나 용기를 주신다. 지금 그랄 사람들에게 밀려나면서 우물을 거듭 파고 있는 이삭이 매우 지쳐 있을 게 빤한 일이다. 또 언젠가 그들이 다시 양보하기를 요구할 수도 있으므로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나타나 이삭에게 용기를 주신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두 가지 말씀을 하신다. 첫째는 두려워 말라고 한다. 두려움은 믿음을 흔든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두려움이다. 둘째, 두려움 대신에 축복을 약속하신다. 다 잘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위로하시고 복을 주신다.)

이삭과 아비멜렉의 계약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아비멜렉이 화평하러 온 이유는 이삭이 두려워서 온 게 아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보아서’ 온 것이다.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확실히 두고 살 때 사람과 화평케 되고 세상이 믿는 자와 화평하려고 한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믿음만 있으면 세상이 나에게 다가온다.)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하나님이 이삭을 축복한 것을 아비멜렉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이삭을 꾸준히 관찰했기 때문이다. 또 이삭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광야로 나가서 오히려 이삭은 강성해졌으므로 자신들을 해하지 말라고 찾아왔다.)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아비멜렉은 매우 현명한 사람이다. 스스로 범죄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자신도 그 은혜를 입고자 한다. 이렇게 노력한 대가가 ‘평안히 돌아간’ 것이다.)

32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에서의 이방인 아내들

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에서는 부모의 말에 따르지 않고 자기 좋은 것을 택한다.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가문에 근심이 시작된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동족을 아내로 구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들 에서는 이방인을 아내로 구했다. 하나님의 자녀가 가족이 되지 않으면 근심과 갈등이 늘게 된다. 아비멜렉도 그러하고 이삭의 가문도 그러하듯이 하나님을 중심에 두면 평안하되 하나님이 중심에 있지 않으면 평안하지 않다. 이삭과 아비멜렉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하나님이 이삭에게 어떻게 축복하였는지를 기록한 끄트머리에 에서의 결혼 이야기가 살짝 끼어 있다. 축복 뒤에 근심이 붙어 있다. 축복의 이유는 믿음이고 근심의 이유는 이방과의 결혼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두면 축복이고 이방이 중심으로 들어오면 근심이 된다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34절과 35절의 위치가 절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