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창세기

창세기 37장

강 영 길 2013. 12. 12. 09:48

요셉의 형제들

37장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요셉은 가장 막내축인데 형들을 고자질하는 아이였다. 나이가 열일곱, 우리 나이로 거의 스물이 되었다. 그런 청년이면 형들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릴 나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중심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 정도 자라면 형들과의 관계를 위해 앉을 자리 설 자리를 구분했어야 한다. 그러나 요셉은 사회적 관계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고대에 채색옷을 입는 것은 대단한 부를 자랑하는 것이다. 채색옷은 구하기가 더 힘들었다. 그런데 요셉이 더욱 사랑받아서 채색옷을 입혔다는 것을 보면 야곱이 요셉을 편애했다는 것이다. 특히 요셉이 입은 채색옷은 왕족이 입은 채색옷이었다고 한다. 야곱은 요셉을 왕처럼 대우했던 것이다. 더구나 르우벤은 이미 어른이 되어서 아비의 첩과 동침을 하기까지 했으므로 아버지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런 장년의 형들이 볼 때 채색옷을 입고, 걸핏하면 아버지에게 자기들의 잘못을 고발하는 어린 요셉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요셉은 이른바 실패한 조기교육의 표본 같은 존재였다. 후일 요셉이 감옥에 가면서 그의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어떻든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으로 인해 쓴 뿌리가 생겼다.)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영어성경에 보면 형제들이 한 마디도 친절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마디도 친절하게 대하지 않은 형제들에게 요셉은 얼마나 미운 녀석이었으며 요셉 입장에서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였을까? 그러나 요셉은 자신이 외롭다는 것에 대해 불편함도 못 느꼈던 것같다. 아버지 덕에 수많은 하인들이 그를 떠받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형제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그런 따돌림의 상황에서도 전혀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할 말을 다 한다.)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하나님은 들어 쓰고자 하는 자에게 미리 그 뜻을 보이신다. 그것이 사람의 소명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자신의 미래를 꿈꾸게 된다. 하나님이 선택한 자는 비전을 갖는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역동적으로 산다. 요셉이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눈치를 보기보다 자기 할 일을 서슴없이 한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8절에서 이미 더욱 미워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또 자기 꿈을 이야기 한다. 형들이 모두 자기 앞에서 절하리라고 반복적으로 말함은 물론 자신이 왕이 되리라고 예언하고 있다. 요셉은 정말로 상황 파악을 못하는 자기 중심적인 철부지였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하나님이 요셉을 들어 사용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영역이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야곱조차 요셉을 꾸짖을 정도이니 그 형제들이 요셉에 대해 얼마나 분을 냈을지 불보듯 빤하다.)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원어로 보면 이스라엘은 아들의 꿈을 곰곰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기록되었다. 야곱은 요셉의 꿈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눈치 채고 있는 것이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다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아주 적은 눈치만 있었더라도 요셉은 가지 않겠다고 했을 것이다. 형들 모두가 나를 미워하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아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요셉은 선뜻 가겠다고 한다. 특히 요셉은 지금 양떼를 치는 일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다윗이 어린 나이부터 양떼를 쳤다는 것을 생각할 때 17세나 된 요셉은 이미 양을 칠 나이를 지났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의 품 속에만 지내고 있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상황으로 보면 요셉은 평소엔 형들에게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가 보내겠다는 말을 굳이 한 것이다. 특히 후일 일어난 사건을 보면 더욱 그렇다. 만일 요셉이 늘 나타났으면 요셉을 버리거나 팔지 않았을 것이다.)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형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갖고 요셉이 왔다. 하지만 형들은 아버지에게 말한 장소에서 이미 벗어나 아버지와의 약속을 깨고 있다. 자녀가 성장하면 아버지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아들들이 이미 규칙을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규칙을 벗어나기에 요셉을 팔아버릴 마음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질서와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후일 문제를 만든다.)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꿈꾸는 자라고 한 것은 비웃음이기도 하거니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나 꿈꾸는 자만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요셉의 인생이 보여주고 있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죽이고선 꿈이 어떻게 되는 지를 보겠다고 하는 말을 통해 그들이 요셉의 꿈을 얼마나 불쾌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채색옷을 벗긴 순간 그의 신분은 달라졌다. 귀한 아들에서 천한 자가 되었다. 인간에 의해 천한 자로 낙인찍힌 요셉, 그러나 그 신분을 더 높여 준 분이 하나님이다. 인간이 나를 괴롭게 할 때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아무 생각없이 형들을 찾아갔던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진다. 이때에 요셉이 느낄 공포감은 대단했을 것이다. 어둡고 좁은 우물에서 괴롭고 답답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이 가족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슬픔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시련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외로움으로 시작된다. 요셉은 구덩이에 버려졌으나 하나님을 찾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건져내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라면 반드시 건져내신다.)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아우를 구덩이에 버려두고 자기들끼리 음식을 먹는 형제들의 천연덕스러움, 많은 경우 이웃의 아픔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아예 이웃을 아프게 하고 자신은 배를 불리며 산다.)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유다가 예수님의 혈통으로 선택받는다. 예수님의 혈통은 요셉이 아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 중 하나인 요셉을 상속자로 택한 것이 아니라 유다를 상속자로 택하신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르우벤은 장자이면서도 장자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우선 자기보다 십여 세 많은 아버지의 첩과 동침을 하고 또 죽이려고 할 때도 명령을 하기보다 의논을 했다. 이 장면에서도 르우벤은 사건을 뒤늦게 안다. 그가 태생적으로 사랑받지 못한 아내, 레아의 아들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야곱은 요셉을 장자 다루듯 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장자로서의 권위를 얻지 못한다.)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나머지 형제들이 아버지 야곱만이 아니라 르우벤까지 속이고 있다. 르우벤은 장자로서의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다.)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관습적 표현일 수도 있으나 형들은 요셉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함으로써 거리감을 두고 있다. 우리 동생이라는 표현도 없다. 그만큼 요셉에 대해 사랑이 없었던 것이다.)

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악한 짐승은 인간이요 형제들이다. 형제들이 그를 팔아버렸다. 인간이 가장 무섭고 잔인하며 그것도 가까운 자들이 더 그러하다.)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를 했다. 요셉을 팔아버린 형제들도 위로를 한 것이다. 반성하거나 고백한 자녀는 없고 위로한 자녀만 있다. 인간은 자기 잘못을 고백하기 보다는 자기 잘못에는 모르쇠한다. 그 아버지가 그토록 괴로워해도 진실을 말하는 자녀가 없다. 하나님이 괴로워해도 자기 고백을 하지 않는 인간과 같은 모습이다.)

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하고 많은 주인 중에 이처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종으로 팔리게 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 자리에 팔리지 않았으면 어떻게 될까? 그런 전제는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 자리에 넣으셨을 것이다. 따라서 팔리지 않았다면?이라는 전제는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고자 한 적재적소에 넣으시고 그곳에서 훈련시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