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창세기

창세기 39장

강 영 길 2013. 12. 12. 09:51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39장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 만사에 형통했고 그것이 보디발에게 발견된 것은 요셉이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움직였다는 말이다. 본문에는 요셉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렸다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으나 그는 정직했을 것이며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런 행위들과 요셉의 진심을 보면서 3절에서 보디발이 판단했을 것이다.)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에게 종들에게 필요한 기술이나 힘이 넘쳤으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당대의 노예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팔렸는지 역사에 잘 보여진다. 요셉은 집에서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청년이 되었으므로 종으로서는 합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요셉이 좋은 주인을 만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은혜다. 그리고 보디발이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알아 차린 것도 하나님께서 보디발에게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주었기 때문이다. 요셉이 결코 노예로서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베푸신다.)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다른 편에서 생각하면 요셉이 종으로 팔려왔으나 강한 근력을 가진 종이 아니어서 노동을 안 시켰을 수도 있다. 보디발이 요셉을 산 뒤 아마도 어떻게 살았는지를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배경을 듣고 적절한 위치에 배정을 했을 수 있다. 귀하게 자랐고 주로 집에서 형제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디발도 그동안 했던 일에 맞는 일을 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요셉이 살아온 그대로를 이용하셔서 그를 지킴을 알 수 있다. 또한 미래의 요셉의 삶을 위해 애초에 집에서도 그런 훈련만 시키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온 경력을 사용하시고 미래의 일을 위해 미리 준비를 시킨다는 점이다.)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요셉이 집사 노릇을 하면서 집안의 경제가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은 자신이 주권적으로 선택한 자는 물론 그 주변까지 복을 주신다. 후일 요셉이 총리가 되는데, 하나님은 작은 제정에서 요셉을 훈련시켜서 국가의 인물로 들어 쓰신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는 자신의 능력을 백분 발휘할 수 있다.)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남자에게 집안 일의 전권을 준 것은 화를 초래하는 지름길이다. 특히 집안일은 안주인과 반드시 상의를 해야 한다. 그런 자리에 있는 남자에게 전권을 준 보디발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 이런 판단력은 나중에 요셉이 모함을 당했을 때도 요셉의 변호를 듣지 않는 데서 드러난다. 그래서 소유주가 자기 물건을 잘 관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책임이 될 수 있다.)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구약의 이야기들은 전개 속도가 매우 빠르다. 따라서 여기에서 눈짓한다는 것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을 수 있다. 영어로 보면 보디발이 요셉에게 권한을 주자, 그의 아내가 soon 즉 곧 시작했다고 되어있다. 요셉이 권한을 갖자마자 바로 요셉에게 눈짓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 눈짓이 육욕에 찬 눈짓이라고 되어있다. 아마도 보디발의 아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요셉에게 육욕을 채우려 하고 있었을 것이다. 요셉이 일을 잘 하는 것을 보디발이 알아챈 것은 단지 결과만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그것도 아마 집안 일의 책임자인 보디발의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고 요셉을 천거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보디발의 아내는 이미 요셉을 찍어두고 전권을 가질 만한 자리로 추천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셉은 오랫동안 이 여인이 자기에게 보내온 눈빛을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착각을 잘 한다. 여자가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해도 곧바로 왕자병에 걸린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 오기까지 보디발의 아내가 보낸 시선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문장에서는 여자가 요셉을 주시했다고 되어 있다. 요셉은 여인의 눈빛을 사방에서 느꼈을 것이다. 더구나 보디발의 아내는 왕의 친위대장의 아내다. 그러니 그의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대단했을까?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경호실장의 아내 아닌가? 그런 여인이 섣불리 몸을 놀릴 리도 없다. 그 여인이 동침을 요구하기까지 요셉의 행동에 충분한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요셉은 그녀의 욕망을 알면서도 미리 차단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요셉이 어려서부터 가졌던 자기중심적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조심성이 없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무대 체질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인기를 먹고 사는 성격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누군가가 자기를 그렇게 욕망에 찬 눈으로 보는 것을 즐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요셉은 성격적인 결함이 있었으나 그가 선을 넘어가지는 않는 지혜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요셉이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지킬 것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요셉에게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보다 큰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직속상관이었다면 그 위의 상관은 보디발이었고 그보다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요셉은 손 위 상관보다 보디발의 권위를 지켰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했다.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요셉은 하나님의 은총받는 자가 된 것이다.)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전화도 없는 시대에 함께 있지도 않은데 매일 요셉에게 청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요셉은 어떻게든 보디발의 아내와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결정적일 때 단호했다. 요셉이 좀 더 일찍 이런 단호한 태도를 보였더라면 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까지도 이용하셔서 은혜를 더하신다. 참으로 신실하고 실수가 없으시며 치밀하신 분이시다.)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대천덕 신부님이 연세가 드셨을 때까지 여자를 만날 때는 일대일로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을 지킬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걸려 넘어질까봐 그러하신 것이다. 그런데 요셉은 지금 또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이미 요셉은 이 집에서 상당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종들 중 누군가를 데리고 갔거나 아무도 없다면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요셉은 들어간 것이다. 보디발의 아내가 집 마당에서 동침하자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내실 어딘가에서 그러했을 텐데 요셉이 혼자 내실까지 갔다는 것 자체로 요셉의 행동거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과 동침하기를 날마다 요구하는 여인의 방에 혼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말이다. 여인은 충분히 착각을 할 만한 상황이다. 날마다 함께 동침하자고 졸랐는데 그 남자가 아무도 없는 틈에 자기 방에 왔다면 정욕에 타오르는 여자로서 오해하지 않을 여인이 몇이나 될까? 요셉에 행동과 판단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요셉에게는 결단력이 있었다. 약점이 많으면서 결단력조차 없으면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요셉에게 가장 큰 강점이 이와같은 결단력이었다. 그것은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보여줬다. 형들의 따돌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찾아갔고 처음 찾아간 곳에서 찾지 못하자 다른 도시로까지 형들을 찾아나선 행동파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결점을 가진 존재들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의 결점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결단력을 보시고 평가하실 수 있다. 모두가 결점은 있으므로 결단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하면 부끄러움의 원인을 상대에게 돌린다.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고, 자기 욕망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 책임조차 요셉에게 돌리고 있다. 또 요셉을 고용한 남편에게도 연대책임을 묻고 있다. 자기가 요셉에게서 욕망을 채우지 못하자 요셉을 모함한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전가하여 자기 체면을 세우려고 한다. 상대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운다.)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이 일로만 보면 요셉의 인생을 참혹하다. 그러나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 그것조차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앞에서도 말했듯이 보디발은 아내의 말만 듣고 판단하고 있다. 만일 요셉이 정말로 그러했다면 힘으로라도 옷을 빼앗아서 달아났을 것이다. 증거를 일부러 남길 이유가 없다. 그러하니 보디발의 판단에도 문제가 있다. 이 사건을 보면 결국 보디발의 단점과 그의 아내의 단점, 그리고 요셉의 단점까지 다 이용해서 하나님이 요셉의 삶을 인도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보디발이 요셉에 대한 애정이 꽤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기 부인을 강간한 종을 살려두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당대에는 강간한 자는 바로 죽이는 시대였다. 그런데 동료도 아닌 종이 주인의 여자를 강간하려 했으니 정말 대단한 사건이다. 그런데 보디발은 요셉을 죽이지 않는다. 또한 요셉은 이 어려움을 통해 축복의 길로 나간다.)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하나님은 요셉에게 인자를 더 하셨다. 요셉에게 있는 문제를 더 감싸시고 더 많은 은혜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다시 베풀어진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요셉이 사무 처리에 능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셉은 자기 집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처럼 앉아서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이용해 축복하신다.)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이 흥미로운 사건의 중심은 바로 이 한 절에 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 범사에 형통했다는 것이다. 그 나머지 이야기는 다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이 한 마디 말로 나머지 사건 모두가 덮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이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