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고려대 경영학과 학생의 대자보로 인해 온 사회가 안녕하십니까 신드롬에 빠져있다. 우리 나라는 유독 신드롬에 잘 빠지는 나라인데 어떤 때는 의류회사들의 신드롬 어떤 때는 패션, 어떤 때는 유행어 등의 신드롬에 빠진다. 그 모든 것들이 그다지 감동적인 신드롬이 아닌데 반하여 이번 '안녕하십니까' 신드롬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것은 이 신드롬이 가볍지도 않거니와 우리의 삶의 고통을 대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짧지 않은 평생에 크리스찬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나를 대신해서 약관의 대학생이 질문을 해 주었다.
"크리스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이 땅에서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천군 천사들이 말하길 하늘엔 영광이요 땅엔 평화로다, 라고 노래했다. 하나님은 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땅에 평화를 주기 위해 예수님을 보냈다.
평화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 않다. 평화는 단지 평화일 뿐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안녕한 삶이다. 그러나 평화를 위장한 평화가 있다. 그 평화는 폭력적이거나 강요된 평화다. 혹은 방관적이거나 외면한 평화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다. 혹은 어떤 보수주의 자들은 하나님은 독재를 좋아한다고까지 하나님을 호도하면서 위장된 평화를 주장한다.
한국의 기독교도 이미 기득권 세력이 장악했다. 그래서 기득권 세력인 기독교인들은 고통받는 삶을 살아가는 소수들의 삶을 외면하고 싶은 건지 모른다. 부정한 방법이 동원되어도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파렴치한 논리에 편승할 지도 모른다. 기독교인 자신이 이런 논리의 수혜자들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 후서 8장에서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만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기독교인은 현실을 외면하고 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삶을 살면서 "나는 안녕해."라고 말하면 안 된다. 혼자만 안녕한 것은 기독교적 진리가 아니다.
만일 혼자만 안녕할 것 같으면 예수님은 세상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이땅에 온 것은 가난한 자 병든자 소외된 자들도 함께 안녕하라고 이 땅에 오셨다. 기독교는 현실을 외면하고 하늘만을 바라보는 도피적인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가 그런 종교라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주인이시요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한다. 크리스찬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데 세상의 아픔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진정한 안녕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지금만이 아니라 영원히 반복적,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안녕"하시냐고. 이 사회가 안녕하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안녕하며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계가 안녕한지를 물어야 한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우리가 안녕한지를 물어야 한다.
세상은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해외 선교만을 줄기차게 외치는 건 아닌지, 진실이 무엇이건 오직 교회만을 생각하느라 하나님이 다스리라고 한 세상은 외면하는 건 아닌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크리스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