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장
17장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어딜 가나 유대인이 앞장 서서 탄압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탄압을 한다.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하나님 뜻을 따른다는 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하나님 뜻을 거스리기도 한다. 또 그런 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이와같이 하는 이유는 우선 기득권 때문이다. 그들에게 메시아가 나타난다면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권위가 무너져야 한다. 또 그들이 그리스도를 탄압했기 때문이다. 만일 메시아라면 자신들은 멸망의 길을 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바라던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적인 독립을 원했으나 예수님은 정치적 독립을 주지도 않았거니와 오히려 이방인과 평등함을 선언해 버린다. 따라서 자신들만 선민이길 바랐던 그 메시아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그려놓는다. 그리고선 그 모양에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맞추려 한다. 그것이 또한 우상이다. 즉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변형된 우상이 된 것이다.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자신들이 원하는 하나님, 자신들이 원하는 예수님은 우상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체로 하나님이고 그분 자체로 예수님임을 인정할 때 온전한 하나님이 된다.)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천하를 어지럽힌 자들이 사도들이다. 옳은 일을 할 때 천하가 어지러워질 수도 있다. 무브먼트가 일어날 때는 꼭 천하가 어지럽다. 갈등 없이 새 일이 진행되는 예가 없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사람들은 결국 다른 자들까지 연루시켜 문제를 삼고 있다. 탄압의 범위는 점점 넓어진다. 범위가 넓어질수록 복음도 널리 퍼진다. 고난이 클수록 복음도 널리 퍼진다.)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신약성경에 이름이 있는 도시들은 대체로 선한 도시가 아니라 악한 도시였다. 빌립보나 데살로니가나 고린도나 모두 잘 살면서 악한 영이 있는 도시였다. 그런 곳에서 복음은 더 탄압받았으나 결과적으로는 더 꽃을 피웠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리다. 구할 죄인이 더 많았던 것이다.)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악한 자들은 목숨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만큼 끈질기다. 그런데 사도들은 목숨을 걸고 생명을 전하지만 그들은 목숨을 빼앗아 죽음을 전하려 하고 있다. 생명을 주느냐 죽음을 주느냐가 둘 사이의 차이다. 사도들은 이처럼 당하면서도 결코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늘었으므로 얼마든지 폭력으로 응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져주는 것이다.)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바울은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철학자들이라고 하는 쟁쟁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어떤 사상이나 철학보다 우위에 있으므로 바울은 이들과 논쟁할 수 있다. 모든 가치보다 뛰어난 가치가 하나님의 가치임을 알고 담대히 말씀을 전해야 한다.)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아테네 사람들은 새로운 이론에 대해 귀를 열었다. 내가 가진 것이 전부가 아니라 나의 귀를 열 수 있을 때 진리도 전해질 수 있다. 내 고집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 때 진리가 들릴 기회가 온다.)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아덴 사람들은 주로 하는 일이 탁상공론이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고 이론 속에서 사는 자들이었다. 바울이 이들에게 논리적인 설득만 가능하다면 전도를 할 절호의 기회다. 모든 기회는 위기에서 온다. 바울도 이들과 논쟁하며 복음을 전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어려운 기회가 왔을 때 용기를 갖고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하나님이 우리를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 또 모든 땅에서 살게 하시고 우리가 살아갈 연대와 거주지까지 정해주셨다.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하나님이 정한 경계에 속한 것이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그 거주가 공간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포함한 거주이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내가 살아갈 말하자면 ‘팔자’를 다 정해주셨다.)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사람은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아 발견하려 하나 하나님은 가까이 계신다고 한다. 더듬어 찾는 하나님을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일부만 아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눈만 제대로 뜨고 듣기만 제대로 하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눈과 귀를 닫으면 발견하기가 어렵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복음을 들어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들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뜻을 뿌리치거나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모든 사람이 믿지 않더라도 복음은 이처럼 씨앗을 남겨두고 떠난다. 그러면 그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어 또다른 씨앗을 뿌린다. 따라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오기만 하면 담대히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