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창세기 19장 26절)
롯의 아내는 왜 소금기둥이 되었을까를 잠시 묵상했다. 왜 그랬는지를 말하기 전에 우선 전에 했던 이 이야기에 대해 나눔을 한 뒤 그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한다.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
롯의 아내는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첫째는 불순종이 가장 큰 문제다.
둘째는 자신이 누렸던 과거를 돌아보면 안 된다. 아무리 하나님이 기회를 주어도 사람의 의지가 약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 롯의 아내는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소금기둥이 되었다. 나의 과거, 탐욕과 타락으로 점철된 과거를 돌아보는 순간 나의 구원은 무효가 된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땅, 앞만 보고 나가야 한다. 하나님이 롯의 아내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으나 그의 의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말았다. 그것은 선악과 사건과 같은 자유의지의 문제다.
셋째,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인간의 모습을 구경거리로 삼아서도 안 된다. 우리는 때로 남의 아픔을 은근한 즐거움으로 볼 때가 있다. 하나님이 멸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도 똑 같은 하나님의 자녀다. 자신의 자식을 멸망시키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런 자녀들의 멸망을 택함받은 자들이 우월감에 빠진 눈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당신의 모습만을 인간이 누리길 원하신다. 한데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갈 때만이 온전한 모습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예전에 여기까지 묵상을 했다. 그러다 왜 하필이면 소금기둥일까를 묵상하다가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이 도시가 소금으로 돈을 번 도시이다. 인간이 우상으로 삼거나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바로 그것으로 여자가 변한 것이다. 소금을 좋아하면 자신이 소금이 되고 돈을 좋아하면 자신이 돈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그것으로 인해 죽음을 초래한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것이 바로 우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묵상하면 극단적으로 말해 하나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상을 묵상하면 그 우상을 닮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하나님을 묵상할지 우상을 묵상할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자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