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2/사무엘 하

사무엘하 11장

강 영 길 2014. 8. 30. 00:07

11장

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첫째, 전쟁이 나면 직접 나가 싸우던 다윗이 이번에는 참전하지 않고 있다. 일선에서 손을 떼면 반드시 관심이 다른 데에 가게 되어있다. 둘째, 아이러니한 것은 이처럼 그릇된 관심으로 인해 생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성경적 주류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흠없는 자를 원한 게 아니라 회개하는 자, 겸손한 자를 원한 것이다. 셋째, 실제로 밧세바가 아름답다기 보다는 아름다워 보인다고 했다. 달빛 아래 목욕하는 여자가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도 남편은 바빠서 자리에 없는 여자의 쓸쓸함이 달빛에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착시이기도 하다. 이것은 일종의 정서적인 문제다. 넷째, 다윗에게 수많은 여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외로웠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대부분이 정략 결혼이었다. 이런 다윗이 홀로 옥상을 거닌 까닭이 외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6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7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다윗의 단수 높은 화술을 엿볼 수 있다. 짐짓 시세를 물음으로써 자기 문제의 핵심을 피해 가면서 우리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있다.)

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다윗은 우리아에게 휴가를 주어 임신 문제를 잘 해결하려 한다. 우리아가 밧세바와 동침하여 우리아의 아이를 임신한 것처럼 꾸미고자 했다.)

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우리아는 일종의 일중독자였다. 전쟁터에서 돌아와서 왕의 휴가를 얻었으면 당연히 여자를 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집으로 가기는 커녕 부하들과 함께 왕의 문에서 잤다. 그는 아내 밧세바를 전혀 관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밧세바가 달밤에 쓸쓸히 목욕을 한 이유가 있었다. 아무튼 이로 인해 우리아는 자신의 명을 재촉한 셈이다.)

10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1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우리아는 자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충성된 신하였다.)

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우리아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거나 왕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을 했으면 상황은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아는 신중한 태도를 갖지 못 하여 비극을 맞는다. 그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으나 상황에 대한 인지를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다윗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지나치게 행동하고 우리아는 전체를 위해 지나치게 결정한다. 둘 다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다윗은 밧세바의 임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술수를 쓴다. 만일 취하면 제정신을 잃고 아내를 찾아갈까 하여 취하게 만든 것이나 우리아는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강직한 신하였다. 다윗의 입장에선 충성된 장군 하나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하나님은 승승장구한 다윗을 왜 이런 시험에 빠뜨렸을까? 아마도 다윗이 자신의 나약함을 철저히 보게 하려는 뜻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참으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것일 것일까? 27절로 보아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좋은 것만을 갖고 선을 이루는 게 아니라 나쁜 것까지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자신이 임신시킨 사실을 감추어 자신의 도덕성에 흠이 없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인간의 눈을 속였을 뿐 하나님의 눈을 속이진 못한다.)

16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17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18 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

19 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

20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21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15절에서 다윗은 요압에게 우리아가 죽게 하라고 했다. 결국 다윗은 인간조차도 속이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아는 일은 결국 인간도 알게 된다.)

22 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 (정말 억울한 죽음은 우리아를 죽이기 위해 함께 희생당한 병사들이다. 다윗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범죄는 이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다. 게다가 요압이 다윗에게 보고할 때도 다윗이 어떤 말을 할 줄은 요압은 알고 있다. 마치 자신이 우리아를 죽이라고 명령하지 않은 것처럼 발뺌을 하고 정치적인 수사를 하리라고 요압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우리아도 죽었다는 말을 함으로써 다윗의 입장을 세워준다. 자신이 살인교사를 한 다윗의 뻔뻔한 면모다 보인다. 하지만 이런 다윗을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어떤 인간도 다윗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인간이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23 이르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쳐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

24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부하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

25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

26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이 구절로 보아 밧세바는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밧세바를 버린 게 아니라 데려다가 왕비로 삼는다. 술수를 부려 밧세바가 임신을 시킨 것처럼 하려다가 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자기 아내로 삼는 것은 다윗답지 않은 행동이다. 인간으로서의 의리는 보였으나 하나님의 마음에는 합당치 않았다. 다만 밧세바의 핏줄이 예수님의 조상이라는 점이 눈여겨 볼 점이다. 사람인 다윗이 잘못을 저질렀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잘못된 역사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