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2/사무엘 하

사무엘하 16장

강 영 길 2014. 9. 5. 22:35

16장

1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절름발이 아들이다. 시바는 므비보셋을 다윗에게 안내한 시종이다.)

2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 하니 시바가 이르되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3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4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시바가 이르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내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시바는 다윗을 위해 편의를 제공하나 므비보셋이 말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하여 다윗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리고 다윗이 다 가지라고 한 재산에 대해 넙죽 받는다. 이로 보아 시바에게 사심이 있었던 것같다.)

5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시므이는 몇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사울 족속의 피를 흘린 것은 다윗의 책임이 아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심지어 그럴 듯한 논리를 내세워 다윗을 궁지에 몰고 있다. 시므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옳지 않은 판단으로 누군가를 현혹하게 하는 인물이다.)

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10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다윗은 힘으로는 능히 시므이를 제지할 수 있었으나 그 문제를 하나님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인간의 행위를 분노로 갚지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통로로 사용하였다.)

 

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께로 돌린다. 아들이 자신을 배신한 마당에 사울의 친족이 자신에게 원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윗은 사람이 던지는 저주조차 스스로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는 성숙한 인격체다. 설령 시므이의 저주가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을지라도 다윗은 그것을 스스로 감당하려 한다. 다윗은 상황이 나빠질수록 하나님의 능력에 점점 의지한다.)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다윗은 인간의 저주로 인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길 것으로 믿는다. 인간으로부터 저주 받는 것이 하나님께 더 긍휼을 얻는 길임을 다윗은 이해하고 있었다. 자식을 꾸짖던 어떤 부모도 실제로 자기 자식이 욕을 먹으면 자기 자식을 비호하게 마련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따라서 자신이 욕을 먹으면 그만큼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살필 것이라고 믿는다.)

13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14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15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른지라

16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갈 때에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니

17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르되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8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이다

19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의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 하니라

20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하니

 

21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아버지가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하니라

22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니라(첫째 아히도벨은 가장 비열하고 죄악된 방법을 연구하였다. 또한 인간의 증오심을 자극하여 세력을 키우려 한다. 진정한 힘과 세력은 사랑의 힘이지 증오의 힘이 아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영역이요 증오는 사탄의 영역이다. 아히도벨은 하나님의 의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택했다. 둘째 압살롬은 한걸음 더 나간다. 아히도벨이 아버지의 후궁과 동침하라고 하자 아예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여자와 동침을 한다. 이것은 아버지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며 아비의 여자를 탐내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에도 어긋난다. 셋째, 다윗은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였음을 끝내 기억하고 사울에게 결코 모욕을 주지 않았고 그 죽음까지 진정으로 슬퍼했다. 그것은 인간 사울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름부은 자를 인정했던 것이다. 즉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위를 끝까지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압살롬은 그렇지가 않았다. 압살롬의 반역은 인간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반역이다. 따라서 인간을 사랑하라고 한 예수님의 명령이 있는 한 우리는 죽기까지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령을 어긴 압살롬과 차이가 없어진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모두와 화목하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사랑하되 화목할 수 없는 사람과는 분쟁하지 않는 정도의 거리를 두는 것도 좋다. 다만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것들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

23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이 마치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처럼 보였다. 과거에 다윗이 아히도벨의 말을 들었던 것처럼 압살롬도 그의 말을 따랐다. 아히도벨은 원래 다윗의 모사였으므로 다윗이 그의 말을 따랐던 것이다. 압살롬도 그의 말을 따르고 있으며 아히도벨이 마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생각하고 따랐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는 뜻이 들어있다. 다윗이 아히도벨의 계략이 어리석게 되라고 앞에서 기도했는데 압살롬에게 말한 아히도벨의 계략들은 실로 어리석은 계략들이다.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과정이 생략되어 어리석은 계략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