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성탄절 상념
성탄절이 저물었습니다.
요즘은 음악도 발전해서 참 다양한 음악성을 가진 멜로디와
더 많은 의미를 담은 가사들이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믿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을 기억합니다.
세상은 예수의 탄생을 내일이면 잊어버릴 것이고
저같은 믿는 사람도 오늘의 감격을 이미 읽어버린 편지 마냥
마음의 어느 호주머니쯤에 넣어둘지 모릅니다.
그렇게 성탄절을 접어두기 전에 오랜 기억의 편린 하나 꺼내봅니다.
어린 시절에 의미 없이 불렀던 성탄절 노래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기억하는 분도 있고 잊어버린 분도 있겠지요.
"탄일 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깊은 산속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탄일 종이 땡땡땡, 멀리멀리 퍼진다.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울린다."
이 캐롤을 눈을 감고 가만히 불러보다 문득 환상처럼 그림이 그려집니다.
깊은 산골 오막살이의 노인이나, 바닷바람에 그을고 주름진 어부의 귓가에 은은하게 퍼질 종소리.
아, 이 캐롤이 이렇게 깊고 고운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저 깊고 깊은 산속 오막살이에 요즘 누가 복음이나 찾아 들고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 그 가장 밑바닥 삶을 사는 어부들에게도
예수님이 탄생하신 소식이 종소리로 전해졌다는군요.
네, 제가 바로 어부의 아들입니다. 그 머나먼 바닷가에 사는 가난한 어부의 아들 말입니다.
예수님 탄생의 소식이 겨우내 아무도 오지 않는 오막살이,
눈덮인 산길을 넘어 살을 에는 겨울 바람을 타고 그곳까지 갔답니다.
또, 요즘처럼 쾌속선이 다니지 않는, 그래서 일주일에 배 한 번 오는 그 바닷가에도
탄일종이 땡땡땡 울렸답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곳, 그 먼 곳에 누가 종소리를 들고 갔을까요?
말이야 소외된 자 가난한 자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정작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잊은 지 오래 되었고
우리의 자녀들 누구에게도 어부나 농부가 되라고 하지도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어부나 농부를 도시 교회가 반기기나 할는지, 솔직히 의심스럽습니다.
<내가 아는 우리>가 아니면 외면하고
낯선 사람 혹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조차 외면하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요?
그러나 지금도 그 누군가 산골의 오막살이와 머나먼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이 있겠지요.
복음을 들고 땅끝을 찾는 그 아름다운 발길 말이지요.
험한 산골짜기, 거친 파도를 넘는 아름다운 사람의 발길 말이지요.
성탄절이 지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먼먼 어느 날도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가기도 힘든 아주 먼먼 곳에 땡땡땡 탄일종이 울리는 날이 쉬지 않아야겠지요.
네, 그래야만 합니다.
그 아름다운 발길들이 결코 끊이지 않기를 기도해 봅니다.
언젠가 저도 그 먼먼 곳에 종소리를 들고 달려가는 발길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저문 성탄절을 제 가슴 가장 소중한 서랍 속에 넣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