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청년과의 쪽지대화-초대교회와 다른 오늘의 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쪽지 너무 잘 읽었어요^^ 성의있는 답변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궁금한게 성령세례를 받은 목사님은 어떻게 알아볼수 있나요? 정말 많은 교회들과 목사님들과 신학생들이 있는 데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해야만 예수님의 제자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이 아닌가요?? 저는 모태신앙은 아니고 뒤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인데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읽어가면 갈수록 성경에 일어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이 많이 생깁니다 성경대로라면 하나님의 일은 배워서 연구해서 할 수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성령을 충만하게 받 아서 사람이 할수 없는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 님의 영광이 드러났던 것인데 지금의 목사님들은 다들 주의 종이라고는 하는데 말로 예화를 들어서 설교(?)를 하고 돈 걷기에 여념이 없고 진리는 너희 를 자유케 한다고 했는데 교회를 다닐수록 뭔가 더 구속받는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너무 답답합니 다 예수님 앞에 나와왔던 사람들에게 그 믿음에 따라 병든자는 고침받고 귀신들린 자는 나음을 얻 고 심지어 죽은자도 살아났는데...... 이 모든 일을 행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던 분이 예수 님이시고 그랬기 때문에 그들에게 구원이 임했던 것인데....정말 갈수록 의문투성이인 신앙생활에 마음이 답답해옵니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하는것 이 옳은걸까요......ㅠㅠ
청년에게서 다시 쪽지가 왔다. 질문이 매우 방대하고 자칫 신학적인 해석 부분까지 가야할 내용이라 말하기 두려운 면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답을 해 보려고 한다. 청년에게 보낼 글이라 경어체로 쓴다.
이 내용은 매우 복잡하군요. 우선 자매님의 질문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성령세례를 받은 목사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신학생과 목사라면 예수님의 제자이니 예수님이 하신 일 그대로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2.예화 설교와 헌금설교의 문제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3.진리가 나를 자유케 하는 게 아니라 구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사도행전의 기적이 오늘날은 왜 일어나지 않는가? 동시에 이것은 예수님만 했는가? 그로 인해 구원이 임한 것인가?
5.마음에 걸리는 현실을 바라보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지속해야 하는가?
마지막 질문을 끄집어 내고 정리하기 위해 처음의 질문들을 가져왔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대해 걱정하는 분이 참 많습니다.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걱정한다는 말까지도 나옵니다. 하지만 정말로 냉정하게 생각을 해 봅시다. 과연 그럴까요? 한국 교회에 문제 되는 요인들이 분명히 있고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제가 어느날 택시를 타고 교회를 갔습니다. 택시 기사분이 저에게 한국 교회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사회에서 가장 나쁜 사람과 교회에서 가장 나쁜 사람 중 누가 더 나쁠까요?" 대답을 안 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말했지요. "교회의 단점 말고 잘한 점을 한 가지만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래도 답이 없었습니다.
과연 오늘날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의 보통 사람보다 잘못한 게 많을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많은 교회가 구제활동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세계 각처에 도움의 손길을 보냅니다. 어떤 이는 해외 선교를 비난하지만 그런 자신들은 해외 여행을 가면 가지 해외 봉사를 가겠습니까? 사회가 교회에 그만큼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정당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면 "그럴 수도 있지."하는 분위기 입니다. 하지만 진보 정당에서 나쁜 짓을 하면 "그 놈들도 똑 같아."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사회는 진보 정당 사람들에게 더 높은 도덕적 자질을 요구한다는 증거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댑니다. 그것은 참 바람직합니다. 교회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의 입장에선 교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해 묵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목사님이 헌금을 요구하는 설교는 더 어렵습니다. 제가 모두에도 말했지만 그게 왜 어려울까요? 병고치는 은사는 달라고 하면서 왜 헌금하는 것은 어려울까요? 우선 믿는 자들이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전체도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갑니다.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싸움을 해서 둘이 헤어집니다. 바울과 싸운 바나바는 사도행전에 더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녀도 싸우기도 하고 갈등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하는 말이 인간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인간을 보지 않고 다니겠습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니 당연히 인간을 봐야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하나하나가 선해져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사람을 보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어떤 분인지 봐야 하고 장로님 집사님이 어떤 분인지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을 보고 인식할 수 있으며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본 우리는 이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자, 그럼 목사님이 잘못했습니다. 장로님이 잘못했습니다. 또 교회 친구가 잘못했습니다. 누구를 바로 잡을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네 형제의 발 앞에 장애물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그 장애물이 무엇일까요? 바로 나의 가치관입니다. 나의 가치관을 그 사람들의 발 앞에 두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내 가치관으로 그들을 보는 게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중 누구를 먼저 고쳐야 할까요? 그게 바로 <나>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목사나 장로나 집사만 그런 게 아닙니다. 신앙은 바로 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나를 대신해서 천국에 가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닮아갈까요? 예수님을 때리고 욕하고 침을 뱉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심지어 그들 때문에 죽으면서도 그들에게 용서와 축복을 내리신 것이 바로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자매님의 문제제기,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모두 정당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자매님이 할 일은 그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매님이 몸소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매님이 속한 공동체와 교회를 반드시 고칠 것입니다. 그리고 자매님이야 말로 최고의 영성의 소유자가 되며 병을 고치고 은혜를 베푸는 분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감사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저 사람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처럼 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한대로 나는 매일 죽는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자매님의 가슴 깊은 곳에 심어지길 축복합니다.
기나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한 번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