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다림, 하나님의 기다림(애찬간증)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가장 하기 싫은 일을 시키신다고 하죠. 저는 간증 자리에 서기 정말 싫었는데 애찬 위원회에서 간증자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선택은 받았으나 간증할 거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4월 2일 어머니께서 생선 상자와 함께 간증 거리를 보냈습니다.
저는 고향을 떠난 이래 평생 신선한 생선 상자를 선물로 받고 있습니다. 생선만이 아니라 미역이며 김 홍합 등을 채취해서 보냅니다. 어머니께서 농사지으신 무공해 유기농 농산물도 평생 받아왔습니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발가락을 자르고 절름발이가 되신 어머니, 그 어머니께서 농사지은 것과 채취한 해산물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생선을 보내실 때 과하게 많이 보내십니다.
“어머니, 도대체 왜 그러세요. 제발 조금만 보내세요.” 이렇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많이 보내시죠. 어떤 땐 백 마리가 넘은 생선도 보내십니다. 생선을 보관할 방법도 없고 언제 다 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저희는 사실 그 모든 게 귀찮습니다. 필요할 때 사다 먹으면 좋겠는데 한꺼번에 보내시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죠. 그러니 차라리 안 보내면 더 좋습니다. 어머니가 보낸 생선 상자나 야채 상자를 보며 한두 마디 불평한 게 원인이 되어 부부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어머니께서 보내신 것이 저희에겐 고통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 어머니께서 보낸 것들은 상상 이상의 노동의 결과물입니다. 어머니는 섬 여자임에도 수영을 못합니다.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이 해산물을 채취하는 건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입니다. 요즘은 김이 풍부해졌으나 아직도 자연산 돌김은 풍부하지가 않습니다. 자연산 돌김은 한 겨울 가장 추운 한 철에만 납니다. 바위에 엉겨붙어 자라므로 사람이 숟가락으로 누룽지 긁듯 일일이 바위를 긁어야 합니다. 한겨울 그 차가운 바다에 하루 종일 몸을 담그고 바위에 엎드려서 긁어야 김 100장 정도를 만들까 말까합니다.
도대체 왜, 불과 만원도 안 되는 김 백장을 긁으려고 하루 종일 손가락이 꼬부라지게 일을 하실까요? 어머니는 그 김을 당신이 드시지 않고 서울에 사는 자식들에게 다 보냅니다. 아무도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 보잘것없는 김을 보내려고 그 추위에 넘실대는 겨울 파도를 맞으며 작업을 하신 겁니다.
어머니는 집에서 제법 떨어진 밭에서 농사를 지으십니다. 그 농산물도 마찬가지죠. 서울에서 사다 먹으면 다 다듬어져있죠. 어머니께서 보내시면 저희가 다 다듬어야 하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연로하시고 다리에 장애도 있으신 분이 하루 종일 앉아서 호미질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그 무거운 것을 머리에 이고지고 가져 오셔서 여객선에 끌고 가서 화물을 부치는 그 일을 대체 왜 하시는 건지.
어머니는 고생대로 하시고 저희도 불편하니 제발 그만 두었으면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서 마치 죄인 다루듯 어머니께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아이들 주라고 초콜릿도 사서 보내십니다. 서울에 오는 동안 초콜릿은 다 녹아버리기도 합니다.
“서울에 없는 것 없고, 생선이며 야채 사먹을 돈 다 있으니 제발 좀 그만 보내세요. 그리고 그런 초콜릿은 서울에 너무 많으니 제발 그만 좀 보내세요. 내가 어머니 때문에 미치겠다니까요.”
어머니가 보낸 물건들이 어찌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들이겠습니까? 하지만 어느날부터 생선 상자는 어머니의 노동과 사랑을 가득 담은 선물이 아니라 냉장고와 아내와 제가 갈등해야 하는 지긋지긋한 괴물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언어를 몰랐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오직 저의 편리만 중요했습니다.
부족함이 없어질수록 저는 점점 하나님을 떠났고 언어도 거칠어졌으며 영혼도 황폐해졌습니다. 감사가 줄었고 어머니께 따뜻한 전화를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전화하시면 늘 귀찮다는 듯이 끊었습니다. 바쁘니 다음에 걸게요. 그러고선 다시 전화를 드리지 않은 게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무언가 말씀하시면 무뚝뚝하게 “알았어요, 끊어도 돼요?” 이게 전부였죠. 전화가 끊길 때마다 어머니 가슴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야말로 형식적으로 어디 아프지 않느냐고 묻고 약을 사 보냅니다. 그런 다음 혼자 만족합니다. “약 보냈으니 알아서 하시겠지.” 그게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정말로 필요한 게 약이었을까요? 나중에 전화 드리겠다고 하고선 다시 전화를 드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평생 어머니는 얼마나 많이 제 전화를 기다렸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고통,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형벌이겠습니까? 저는 그 형벌을 어머니께 반평생 드린 셈입니다.
친구들이나 사업상 오는 전화를 받을 때 저는 아마 천사보다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전화에는 냉담하기만 했습니다.
어머니 마음을 몰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머리로는 어머니께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린 저는 사망의 골짜기를 헤매는 지치고 곤고한 영혼이었습니다. 세상과 마귀의 손아귀에 사로잡혀있었기에 상처 주는 말, 메마른 말만 했고 저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어머니를 저를 괴롭히는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평생 몇 번이나 뵐까요. 일 년에 한 두 번 만나니 길게 살아야 이제 서른 번이나 뵐까요? 그 소중한 어머니께 저는 너무 오랫동안 사랑을 담은 전화 한 통 하지 않은 겁니다.
4월 2일, 받은 생선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했습니다. 모든 생선이 아주 잘 손질되어서 왔습니다. 혹시라도 서울에서 생선 손질하기 힘들까봐 다 다듬어 보냈지요. 그 일은 누가 했겠습니까? 저와 제 아내 편하라고 다 어머니께서 다듬어 보내신 겁니다.
그중 낙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낙지는 낮은 바다에서 나는지라 제 고향에선 낙지가 안 납니다. 고향에서 낙지는 수십 년에 한 마리 볼까말까지요. 두 마리도 아니고 딱 한 마리. 그 낙지를 생선 틈에 보내셨습니다. 몇 십 년 만에 발견한 낙지 한 마리, 이건 그냥 낙지 한 마리가 아닙니다. 왜 어머니께서 드시지 않고 저에게 보냈을까요?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시렸습니다.
사실 저는 이곳, 이 교실에 와서 하나님을 만난 후 이전보다 훨씬 자주 어머니께 전화를 드립니다. 전화를 건 횟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화벨이 울릴 때 어머니가 전화를 받기까지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사실입니다. 어머니와 통화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깊은 사랑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던 게 언제였을까요? 어머니와 통화가 끝나면 피곤하기만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전화를 끊지 않고 수다를 떨기 일쑤입니다. 얼마 전 전화를 드리니 진지를 드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반찬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인지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질 못하십니다. 세상에 어머니가 지금 밥상에서 무엇을 드시는지 수십 년간 물어보지도 않은 자식이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연애할 땐 여자 친구가 무얼 먹는지 무얼 입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손톱을 씹는지 세수는 했는지 꼬치꼬치 물으면서 어머니 밥반찬은 왜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을까요? 전화상으로 평생 처음 어머니의 반찬을 물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소녀처럼 부끄러워하시며 대답을 하셨습니다.
최근 이사하면서 저희 집은 냉장고 하나를 줄였습니다. 따라서 생선을 저장할 공간이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기쁨으로 어머니의 사랑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하나님의 언어와 하나님의 생각이 돌아온 것입니다. 오래전 잃어버린 하나님이 저를 다시 붙드셨습니다.
4월 5일 아침 찬양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찬양할 때 손을 들어 찬양하는 게 낯섭니다. 내가 손을 들어 찬양할 만큼 하나님 앞에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는 정죄감 때문입니다.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는 분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아, 저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들인가? 반면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날은 나도 망설임 끝에 손을 들어 찬양했습니다. 정말이지 용기를 내어 힘들게 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내 팔을 이끌고 더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손을 들어 나를 찬양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저는 그 분이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온몸이 뜨거워져서 되물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그러셨어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그 순간 제 온몸이 공중에 붙들려 올라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혼잣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이렇게 나를 사랑하고 기다려주셨군요.”
제 눈에 감격의 눈물이 넘쳐났습니다. 아, 나를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
어머니께서 오랜 세월 제 전화를 기다렸듯이 하나님께서도 오랜 세월 제가 손을 들어 주님께 영광 돌리길 기다리셨던 겁니다.
생선을 정리하는 건 늘 제몫입니다. 그래서 낙지를 보물처럼 비닐에 담아 냉장고에 넣는데 제 입에서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 많은 자매님들 속에 딱 하나 있는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형제님이 늘었지만.
어쨌든 지금 너무나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났던 동안 세상 어디에서도 결코 깊고 그윽한 평화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지금 저는 바다처럼 깊은 평화를 되찾았고 가족 간에 깨졌던 관계가 다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애찬의 주제대로 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고 제 슬픔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의 띠를 둘러주신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