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복음서/마태복음

마태복음 1장

강 영 길 2012. 8. 25. 11:07

1장(예수님의 가보를 통해 하나님의 오랜 계획과 준비하심을 보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누가 복음이 남자쪽의 혈통을 중심으로 생물학적 계보를 따진 데 반해 마태는 여자쪽 혈통을 중심으로 영적 계보를 주장했다는 설이 있다. 마태는 하향식 족보를 쓰고 있고 누가는 상향식 족보를 쓴 점도 차이다. 어떻든 마태와 누가는 족보를 다르게 적고 있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예수님의 계통은 요셉이 아니라 유다다)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뜻에 있다. 이방 여인과 바람난 여인에게서 예수님의 혈통을 뽑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이다.)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누가복음은 남자쪽의 생물학적 계보를 마태복음은 여자쪽 혈통을 따름으로써 영적 계보를 보여준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 두 복음서의 족보에는 차이가 있다. 아무튼 야곱의 아들 요셉과 창세기의 야곱의 아들 요셉이 겹치는 것은 흥미롭다.)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기나긴 세월 동안 하나님은 이들을 지켜보시고 하나도 빠트림 없이 역사하고 계신다. 성경속의 인물들을 이렇게 요약하는 것이 단지 정리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지켜보고 계신지를 보여줌으로써 가계의 나열 자체로 감동을 준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지켜보고 그 역사의 증인이 되셨기 때문이다.

한사람 한사람의 면면을 보면 아주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다. 사람 자체가 문제가 있거나 비교적 문제가 있는 출생 과정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하갈에게 먼저 장자를 낳은 후 뒤늦게 이삭을 얻었다. 이삭은 야곱에게 잘못 축복을 전해주었다. 그런가 하면 가계의 흥미로운 사건은 요셉이 상속자가 아니고 유다라는 점이다. 성경 속에서 요셉이 유명하나, 그 요셉을 팔아넘겼던 유다가 오히려 상속자가 되었다. 그 후의 인물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인간의 입장으로 보면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인간의 눈에는 다소 부족하고 뒤틀린 가계도다. 하지만 이 역사에는 사람의 기준보다 하나님의 기준이 적용된다. 주권자도 선택자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42대에 걸친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시키신다. 언약의 완성은 예수님이다. )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님의 탄생은 기적이다. 기적은 논란의 대상이다. 논란이 없으면 기적이 아니다.)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요셉은 사람들의 눈이 두려웠다. 인간은 누구나 사람의 눈을 의식한다. 관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주셨다. 하나님이 직접 땅으로 오신 것이다.)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그 다음 과정이 중요하다. 결국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했고 그 순종의 결과가 전 인류에 축복이 되고 있다. 한 사람의 순종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리아는 관습적으로 볼 때 사형을 당할 만한 상황에 처했다. 처녀가 임신을 한 것이다. 그래서 19절에서 요셉은 파혼을 고려한다. 그러나 마리아가 사람들 앞에서 수치당하지 않도록 남몰래 파혼하려 한다. 요셉이 참 신중한 인물이었음을 알게 한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위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시는 순간이다. 그 순간의 역사를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사형당할 만한 도덕적인 문제, 율법적인 문제를 어기면서 역사하고 있다. 인간의 율법이나 눈은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성령의 말씀을 듣고 요셉은 아무런 갈등이 없었을까? 19절에 보면 요셉은 율법을 잘 지킨 사람이라고(의로운 자) 되어있다. 방금 전에 파혼하려고 했던, 율법적인 한 남자가 환상을 보고서는 아무 갈등없이 마음을 돌렸을까? 아닐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께 몇 번은 여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을 설득하였을 것이다. 요셉이 하나님께 설득당할 때 하나님이 요셉을 더 축복하거나 혹은 두려운 말씀을 했을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요셉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요셉 본인으로서는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을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 아들을 너의 핏줄로 삼는다고 했는데 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 요셉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의 사자는 요셉에게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고 한다. 요셉은 사회적인 관습과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평생 꼬리표처럼 달고 다닐 비난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 데려오기를 꺼렸다. 하지만 요셉은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의 눈보다 하나님의 눈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요셉은 오늘날까지 예수님의 육적인 아버지로 남아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25절에서와 같이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다. 아마도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에 대한 놀라움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마리에게 접근하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을 거룩하게 지켰고 성령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며 마리아를 보호했다.

예수의 탄생의 가장 멋진 의미는 아마도 23절의 말씀일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하늘에만 계시던 하나님이 이땅에서도 나와 함께 하신 것이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언약은 늘 성취된다. 나중에 멀리서 성취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성취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매일의 삶이 곧 천국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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