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복음서/누가복음

누가복음 22장

강 영 길 2012. 10. 4. 08:45

22장

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그냥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사람들 눈이 두려워서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한 이들의 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한편 이들이 사람들을 두려워할 정도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말이 된다. 오늘날 믿는 자가 두려워 예수를 해하지 못할 만큼 믿는 자들이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그러하지 못해서 예수님이 해를 당한다.)

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5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죄의 뒤에는 항상 돈이 있다. 인간의 기쁨은 돈으로 갚아지고 측정된다. 나도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고 돈 때문에 사람들과 예수님을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하곤 한다. 돈만이 아니라 명예나 다른 인간적 욕심이 예수님을 뒷전에 두게 하는 경우가 바로 유다와 같은 나로 만드는 경우다.)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의미있고 상징적인 적절한 기회를 이용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분이다. 절기의 상징성과 예수님 자신의 의미를 가장 효과적으로 맞출 수 있는 때에 스스로를 희생하신다.)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2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예수님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다 알고 계셨다. 누구를 만나야 할지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알고 있다. 물 한 동이를 지고 갈지 두 동이를 지고 갈지도 알고 있고 그 집에 다락방이 어떠한지도 알고 있다. 그처럼 다 알고 있는 일을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선두를 다투는 수제자였다. 그 둘을 보내신 것도 의도가 있으셨을 것이다. 아무튼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니 스스로 하시면 됐을 것이다. 혹은 그렇게 예고하지 않으셔도 찾아가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일은 사람을 시키신다.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둘째는 예수님은 온유한 분이시다. 막무가내로 무언가를 하신 게 아니라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시는 분이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도 제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시는 사건이다. 그 두가지가 늘 사용하시는 예수님의 방법이다.)

13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듯이 유다의 배신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제거하거나 자리를 피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유다의 생각대로 갈 만한 자리를 마련하셨다. 유다의 배신을 통해 오히려 더 큰 것을 이루셨다. 누군가 나를 해하려 할 때 오히려 그것을 선용하는 자세를 갖는 게 좋다.)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이 고난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는 말이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예수님의 살과 피의 의미를 심어주는 것이다. 또한 섬김의 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마지막 유월절임을 암시하고 있다. 제자들은 이런 암시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성경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여러번 본 영화를 보듯이 내용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누구도 다음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눈치채지 못한다.)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몸을 떼어주고 피를 마시게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죽지 않고 살과 피를 나눠줄 수 없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였으며 이 끝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만찬을 시작한 것이다. 기억하며 생각하는 것이 기념이다. 예수님을 늘 기억하고 늘 생각하기 위해 잔과 떡을 나눈 것이다.)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이 새 언약을 주고 있다. 아브라함에게 준 언약이나 노아에게 준 언약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예수님이 새 언약을 주었기 때문이다. 법을 고치면 과거의 법은 의미가 없어진다. 아무도 과거의 법에 적용받지 않는다. 그러니 새 언약에 따라 살아야 한다. 축복의 의미도 사뭇 달라진다. 구약에서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돈이 많고 권세도 있었다. 구약적 언약의 축복이다. 하지만 신약에서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고난을 받았다. 신약적 언약의 축복이다.)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예수님을 파는 자의 손이 예수님의 밥을 함께 먹고 있다. 영어 성경에는 친구인 것처럼 우리 사이에 앉아있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판다고 되어있다. 친구가 아니면서 친구인 듯이 가장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예수님의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늘 함께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파는 나의 모습이다. 감사와 기쁨과 축복의 성찬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예수님을 파는 자가 아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예수님을 늘 기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예수님을 파는 자에게는 화가 미친다. 예수님을 배신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은전 30에 판다는 뜻보다는 예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가 더 크다. 예수님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그 자체로 예수님을 파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나는 매일 예수님을 파는 자가 될 수 있다.)

23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가룟유다가 은전 30으로 팔았으나 제자들도 모두 도망치고 말았다. 도망친 자가 대단히 떳떳할 것도 없다. 이 일을 행할 자가 딱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 해당하고 내 자신에 해당한다.)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님이 죽는다는 말을 하고 있으나 제자들은 그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른다. 다만 자기들이 어떻게 높임을 받을지를 생각하고 있다. 예수님이 어떤 대접을 받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기 명예만 높이려는 게 인간의 모습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세상의 주권은 눈에 보이는 가치가 크지만 하늘나라의 가치는 겸손과 섬김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예수님은 섬김을 받는 게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겠다고 했다. 섬김을 받는 자가 더 큰 자이나 예수님은 큰 자이기를 포기한다는 말씀이다.)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제자들이 모든 시험을 예수님과 함께 받았다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이처럼 모든 시험에 동참하는 것이다. 내가 피하고 싶을 때는 피했다가 내가 동참하고 싶을 때는 동참하는 자는 제자가 될 수 없다.)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상에서 함께 먹는다는 것은 동격이 된다는 것이다.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은 격이 되었음을 뜻한다. 하나님이 나라를 맡긴 것은 27절처럼 섬기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 제자들이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것도 섬기는 다스림을 하라는 것이다. 믿는 자는 섬기는 자여야 한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누가 더 큰지를 다투는 것이 사탄의 요구다. 사탄은 겸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하게 하고 낮아지는 게 아니라 더 큰 힘을 가지게 하려 한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존재다.)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28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두 시험을 함께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기도했으니 회개하라고 하고 있다. 모든 시험을 함께 한 제자도 믿음이 약해질 수 있다. 실족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몬을 위해 중보기도를 했다는 말씀이다. 언제라도 약해지고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자신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면 자신의 믿음이 굳건해진다. 그러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를 굳건하게 세워야 한다.)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가 옥에도 죽는 데에도 함께 가겠노라고 이처럼 각오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부인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각오를 한다. 내가 어떤 다짐을 해도 하나님은 나의 본질을 알고 계신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사랑이며 믿음이다.)

3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예수님은 때로는 버리라 하고 때로는 가지라 한다. 우리가 가지지 않았을 때 부족함이 없었고 가질 때도 부족함이 없다. 그 부족은 하나님이 채워주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제는 고난의 시기가 올 것이므로 고난을 이기기 위한 준비를 하라고 하신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범죄자로 취급을 받는다. 예수믿는 자들도 범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성경의 예언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불법으로 살 것이 아니라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은 검을 준비하라 하였을 것이다.)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 제목을 주고 있다. 그 제목이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주제로 기도하면서 제자들에게는 유혹을 주제로 기도하라고 한다. 어쩌면 십자가는 유혹의 반대말일 수 있다. 유혹에 빠진 자는 결코 십자가를 질 수 없다는 뜻일까. 십자가를 지려면 유혹을 이겨야 한다는 뜻일까. 제자들이 십자가를 질 것은 아니지만 십자가 사건 앞에서 그들은 군중을 두려워하여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고 만다. 예수님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기도하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기도를 하고서도 유혹에 빠지고 마는 것이 인간이다.)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만났을 때 그 일을 정말 피하고 싶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고 그 뜻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나의 욕심과 나의 소망에 따라 가면 안 된다. 다락방에서 이미 떡과 포도주를 떼면서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예수님조차 그 잔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미 충분히 각오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갈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사명은 이처럼 피하고 싶을 때가 많다. 돌아가고 싶을 만큼 힘들다. 그런 때에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천사가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한 것이 이 문제를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에 힘을 준 것이 아니다. 힘을 준 것은 오히려 소명을 감당하라는 힘을 준 것이다. 곧 죽음의 길로 가라는 힘을 주고 있다. 가혹한 하늘의 요구를 이행하라는 요구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 기도와는 반대로 가라고 인도하신다.)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얼마나 힘써 기도했으면 땀의 색깔이 다 변했을까? 난 이처럼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없다. 간절히 구하고 기도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데 기도조차 해 본적이 없으니 응답이 될 리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아도 내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신 적이 많다. 아예 구하지 않을 때도 먼저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제자들이 슬픔으로 인하여 잠들었다고 한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을 들었다는 말이 된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떻게 될 줄을 정확히 모르고 있는 상황인데 왜 슬펐을까? 아마도 예수님의 기도가 슬펐을 것이다. 땀이 피처럼 되도록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울면서 기도했을 것이며 가까운 거리에 있던 제자들에게도 그 슬픔이 전해졌을 것이다. 성인 남자들이 슬픔에 겨워 잠이 들 정도라면 꽤 긴 시간 기도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40절과 같은 말씀이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들이 도망칠 것도 이미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의 배신을 예언하신 것처럼 우리가 죄를 지을 줄 알고 있고 우리의 결말도 어찌 될 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기도하고 노력하라는 말이다. 우리가 배신하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 게을러지는 것을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싫어하시지만 그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47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유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 곳을 미리 알고 있었다. 모든 죄는 길목을 기다린다. 습관처럼 가는 그 길목을 기다리다가 발목을 잡는다. 적들은 어느 곳이 가장 취약한 곳인지 알고 있다. 내가 그곳을 가야만 한다면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

48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예수님께 입을 맞추며 예수님을 팔려고 하는 유다의 모습은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서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나랑 별 차이가 없다.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경건하다는 것을 내세우며 오히려 정죄하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또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 입맞출 정도의 친밀함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죄를 짓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입맞춤으로 나를 파느냐고.)

49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

50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36절에서 검을 사라고 하신 예수님은 검을 왜 사라고 했을까? 그런데 38절에서 검이 둘이 있다고 하니 족하다고 했다. 칼 없는 자는 옷을 팔아서 사라고 하셨는데 정작 열 명이 넘는 사람에게 두 개의 칼밖에 없는 것을 보고 족하다고 했다. 이럴 때 방어를 위해 사라고 하신 게 아님이 틀림없다. 적의 귀를 치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고 참으라고 했다. 그렇게 참을 거면 무기가 필요가 없다. 그러면 예수님이 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상징적인 말이었다. 예수님은 때로 사실적인 것을 때로 비유적인 것을 말씀하신다. 칼을 사라는 것은 매우 사실적으로 말씀을 했지만 그 결과를 두고 보면 비유적인 말씀이었던 것이다. 두 개로 족하다고 한 것은 칼을 사겠다고 할 때 사지 말라고 한 말과 같다. 따라서 예수님은 마음의 칼을 준비하라, 위기를 맞을 각오를 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이 대제사장과 성전의 경비대장과 장로들이다. 이들이 손에 잡은 것이 검과 몽치다. 하나님 말씀을 준행하고 하나님 나라를 지키고 하나님을 섬겨야 할 자들이 하나님을 때려잡으러 왔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들은 누가 하나님인지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바로 내가 저들같아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내가 하나님을 때려잡는 행위를 하며 산다.)

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예수님이 성전에 있을 때는 잡지 않았다. 그때는 밝은 낮이었고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죄는 밝은 곳에서 저질러지지 않는다. 죄는 어둠 속에서 저질러진다. 남의 눈을 피해 저질러진다. 그래서 어둠 속에 행하지 않는 것이 좋고 남몰래 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33절에서 베드로는 주와 함께 옥에도 가고 죽기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채 12시간도 지나지 않아 함께 잡혀 간 게 아니라 군중들 사이에 숨어있다. 그러나 완전히 도망하지 않고 군중들 틈에라도 끼어있는 베드로가 오히려 낫다. 만일 내가 베드로의 상황이면 아예 도망을 갔을 것이다.)

56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3년 따라 다닌 사람을 모른다는 건 사실 말이 되질 않는다. 베드로도 예수님 못지 않게 유명했을 것이다. 이 깊은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을 잡았다고 오밤중에 동네방네 떠들진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추종하는 세력이 밤이 되도록 있었듯이 예수님을 잡으려는 세력도 밤이 깊도록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잡혀온 것을 보면 예수님의 추종자보다는 잡으려는 자들이 그 욕망이 더 강했음을 엿볼 수 있다. 추종자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잡지 못했으니 추종자들이 없을 때 잡았다는 것이다. 추종자들은 사라졌어도 잡으려는 자들은 밤을 새고 있다. 죄를 짓도록 하는 것들이 선을 행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존재한다.)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베드로는 여자의 지적을 받고, 또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고도 한 시간 동안 도망가지 않았다. 이 시간에 한 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베드로를 의심한 사람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상황을 정리하고 베드로가 추종자인지 아닌지 여러 사람들을 통해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베드로가 추종자라는 확신을 갖게 될 때까지 한 시간쯤 걸린 것 아닐까. 확신이 서자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질문을 한다. 한편 베드로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도망가지 않고 있다. 베드로의 부인이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베드로의 이와같은 끈질김이 초점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는 이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특히 두 번의 질문을 받은 뒤에도 내가 과연 인정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 깊은 갈등을 겪으면서 있었던 베드로임에도 불구하고 불시의 질문에 부인을 하고 말았다. 질문에 이렇게 답한 이유는 아마도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만일 이 상황이 상이라도 받는 상황이라면 자신이 믿는 자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을 것이다. 분명히 어젯저녁 밥상머리에서 서로 높아지려고 했기 때문에 상을 준다고 했으면 얼마나 선뜻 나섰을까? 그러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두려움이 그로하여금 부인을 하게 한다. 그래서 믿음의 반대는 염려요 믿음의 반대는 두려움이다. 베드로는 차라리 강한 자였으나 나는 결코 그 베드로를 따라갈 수도 없다.)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돌아봤다. 그러면 예수님과 베드로는 매우 지척간에 있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눈동자를 느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이니 베드로가 얼마나 가까이 따랐다는 말인가? 베드로는 결코 배신자가 아니다. 베드로가 그곳에 있을 때 차라리 묻지 않았고 잡아갔으면 베드로는 시인했을지 모른다. 차라리 잡아가서 예수의 제자냐고 족쳤으면 베드로는 답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선택의 절묘한 기로에 있었기에 베드로는 부인을 했다. 미묘한 갈등의 끝자락에 삶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가장 잘 부인할 수 있는 때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을 때가 아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예수님의 고난과 안락을 따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가장 쉽게 배신을 할 것이다. 인간은 첨예한 갈등에서 절묘하게 자신의 이익을 찾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은 오히려 예수님과 가까이 있다고 생각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는 결국 부인을 했다. 그리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수를 한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서 울었다. 회개하는 장면도 안전한 곳으로 피해서 회개를 했다. 그러니 예수님을 부인한 것보다 밖에 나와서 통곡한 것이 어쩌면 더 비겁한 것이다. 깨닫고도 자수하지 않았고 부인했음을 알고도 숨어서 회개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눈을 가려두고 때리며 하는 말이 누가 때렸는지를 맞춰보라는 것이다. 눈을 가리고 조롱하는 것은 가장 유치한 수준의 놀이다. 그런 정도로 형편없이 예수님을 대하고 있다. 내가 죄를 지을 때 모습이 꼭 이런 것 같다. 죄를 짓는 그 순간 예수님은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죄를 짓는다. 마치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맞춰보세요, 하는 것 같다. 예수님이 그 답을 능히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나의 죄를 알고도 침묵하며 지켜보는 모습같다.)

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66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67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말해도 그들이 믿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세상이 예수님을 증명해보라고 할 때 거기에 반드시 응대하기보다는 침묵을 할 때가 나은 경우도 있다. 그런 때에 단지 침묵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예수님이 그 본을 보이고 있다. 한편 예수님을 믿고도 그리스도의 말대로 행하지 않는 내가 더 큰 문제다.)

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70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한 예수님처럼 나의 신앙도 누군가 네가 그리스도의 가족이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내가 바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그 말이 죽음을 초래할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진리를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나도 말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그렇게 보여줘야 한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온전히 베풀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고 사는 것을 볼 때 그리스도인임을 사람들이 안다.)

 

71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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