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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루병 여인을 고친 예수님(막5:25-34)-평안한 삶은 예수님의 명령

강 영 길 2011. 11. 25. 11:42

혈류병을 고친 예수님-평안한 삶은 예수님의 명령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다.

 

25절, 우선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았다는 여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여인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게 장한 일이다. 끊임없이 하혈을 하면서 어떻게 12년을 살았을까?

그리고 그 여인의 몰골이 어떠했을까?

아마도 뼈만 남았고 처참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파리한 얼굴에 말라빠진 몸으로 흰 옷을 입은 여인,

그리고 그 흰 옷에는 붉은 혈흔이 있는 여인

그 여인은 지금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사람이다.

그 여인의 모습은 곧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니

가장 적나라한 나의 모습이다.

 

26절, 많은 의사에게 괴로움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의사에게 갔으면 고쳐져야 한다. 하지만 세상적인 방법으로 고치려 해 봐야 괴로움만 늘었다고 말하고 있다.

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재산은 다 탕진했으나 오히려 증세는 심해졌다고 한다.

허무하고 고독해서 외롭고 쓸쓸해서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소해 보려고 수많은 세상적인 것들을 찾는다.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여행을 다니고 취미생활을 하고

음란을 저지르고 동호회를 만들고 친구 모임을 찾고 운동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공부를 더 하고 돈을 더 벌고....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의 병이 나아질 줄 알고 쫓아다닌다.

그렇게 해 봐야 고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증세는 심해지고 재산은 탕진하며

괴로움만 느는 것이다.

내가 심한 우울과 불면의 밤을 보낼 때 나도 친구를 찾아다니고 술을 찾고

여행과 골프에 빠졌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결코 나를 구원하지 못했고

나의 마음을 치료하지 못했다.

 

27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여자가 찾아온다.

여인은 멀리서 예수님을 만나면 병이 고쳐질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몸을 이끌고 왔다.

그것도 흰 옷에 피가 흐르는 그 부끄러운 모습을 그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예수님을 찾아왔다.

여기서 네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우리는 세상 앞에 부끄러운 나를 다 드러낼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내 죄를 드러내어 내가 이런 사람임을, 내가 병자임을 보여줘야 한다.

둘째, 내가 병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가진 문제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선 세상과 하나님 앞에

나설 용기가 있을 수 없다.

셋째, 그 여인이 죽음도 불사하고 왔듯이 목숨을 걸고 와야 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나아갈 용기가 있어야 온전한 치유가 가능하다.

나에게 다른 가능성과 욕심이 있다면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주님께 맡기고 이 길 아니면 살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넷째, 우리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이제는 우리가 소문을 낼 차례다.

소문에는 나쁜 소문과 좋은 소문이 있다.

내가 예수님을 소문 내는 자리에 있으면서 나쁜 소문을 낼 것인가

아니면 좋은 소문을 낼 것인가는 순전히 나의 영적 태도에 달려 있다.

좋은 소문을 내고자 하면 오직 온전한 겸손과 섬김만이 그 길이다.

 

28절, 여인은 예수의 옷깃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인은 예수님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분이라고 알아차리는 눈을 가졌다.

대부분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서 그 사실조차 모른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 구원을 찾는 것이다.

 

29절, 30절

여인은 자신의 병이 나은 줄 알았고 예수님은 누군가가 자신의 옷자락을 만진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구원받으면 나도 알고 하나님도 안다.

구원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역사가 아니라

양방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역사다.

내 안에 구원의 확신이 들어온다.

구원을 받으면 우리 안에서 그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함을 알게 된다.

가슴 속에 예수님으로 인한 소망이 있는가?

그분으로 인한 설렘과 기쁨이 있는가?

그분으로 인한 사랑이 있는가를 느끼게 된다.

 

30절, 예수님은 옷자락 만진 자가 누구인지 묻는다.

예수님이 누가 만졌는지를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다.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물었다.

그것은 믿음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선포할 수 없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옷자락을 만진 것은 너무나 소극적인 행위이다.

우리의 믿음은 이렇게 소극적인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수천의 군중 앞에서 자신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음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

담대한 선포를 요구하신 것이다.

믿음을 선포하지 않은 자는 언젠가 다시 죄의 세상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선포가 중요하다.

만인 앞에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선포할 때 우리는 다시 죄악으로 돌아갈 많은 길을 차단하는 법이다.

 

32절, 예수님이 이 일을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신다.

예수님은 무관심하게 다른 곳을 쳐다 보면서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둘러보신다.

그것도 우리가 행할 때, 우리의 행한 일을 보려고 둘러보신다.

우리의 상황이 어떠한지 예수님은 항상 귀를 기울이신다.

 

33절에서 여인은 두려워 떨며 자신이 만졌다고 한다. 우리가 믿음을 선포하는 건 그만큼 두려운 일이다.

앞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받은 자로서 당당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앞으로 이 여인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오늘의 이 사건을 말할 것이다.

여인이 대중 앞에서 선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찾아다니며 치유받고자 했던 그 행위들을 끊겠다는 선언이고

오직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또한 여인이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 모든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첫째는 병이 있었던 사실, 그동안 살아온 과정, 소문을 들은 것,

그리고 용기를 내어 가까이 와서 만진 것, 마침내 병고침을 받은 것까지 "모든 것"을 고백해야 한다.

모든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이런 순간까지 우리는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존재다.

나에게 일어난 감사의 순간까지 고백해야 한다.

 

34절, 이 사건의 결정판 34절, 예수님의 선포다.

첫째, 예수님은 믿음이 너를 구했다고 한다.

우리가 구원받는 핵심적 요인은 믿음이다.

네가 옷자락을 만졌으므로 그 행위 때문에 고쳐졌다고 하지 않는다.

너의 그 믿음, 즉 마음의 본질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심에 오직 예수님만을 추구하는 간절함이 있는가를 보고 계신 것이다.

우리 몸에 있는 죄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의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는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병에서 놓였다고 말씀하신다.

병은 물론 몸과 마음의 병을 다 의미한다.

그런데 병은 누군가가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병으로부터 놓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플 수밖에 없는 어떤 요인이 있고 그 요인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순간 우리는 그 요인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믿음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극복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불안해 하고 아직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평안히 가라, 네가 건강할 지어다.

이것은 예수님의 선포의 결정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언은 우리가 일어나서 걸어갈 용기를 준다.

그동안 떨고 두려워했던 자아를 벗어버리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 수 있도록 예수님이 명령을 내려주신 것이다.

 

혈루병 앓은 여인과 같은 내 삶은 이제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이 당당히 살라고 명령하셨으니

나는 평안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평안하고 건강하게 살지 않는 것은 또 한 번 예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살라고 당부하지 않으시고 명령을 내리셨다.

그리스도인은 평안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날 구원하신 주께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