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나눔/하나님 음성 듣기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삶 4

강 영 길 2011. 12. 15. 15:12

4.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준비

 

무작정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달라고 조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실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또 내가 들려달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먼저 다가와 음성을 들려주실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대화가 그렇듯이 주제가 있으면 쉽게 대화가 풀린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갖고 음성 듣기를 하면 더 쉽게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내가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여쭈어 보면 하나님이 더욱 쉽게 답을 내려주실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교회의 사모님은 교회 수리라는 문제를 두고 기도를 했다.

“교회 수리를 하고 싶은데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기다려라. 내가 사람을 보내주겠다.”

교회 수리라는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물었기에 하나님께서 보다 쉽게 답을 줄 수 있었다. 또 구체적인 문제를 묻는다는 건 그만큼 본인에게 절박한 문제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인간에게도 시급성이 있듯이 하나님께도 시급성이 있다. 물론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우리의 시급성에 맞추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아직 생각 중이다.”이런 답을 주실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형태로든 답을 주신다.

그러면 음성을 듣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정리해보자.

 

 

1)하나님의 음성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듣는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와 전화 통화를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는 통화를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숨소리라도 들려주신다. 하나님은 당장 내가 원하는 답을 말씀하지 않더라도 살아계시다는 증거라도 보이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때는 나와 통화중인 지금이다. 공중전화를 사용할 때는 우리가 전화기를 찾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휴대전화 시대다. 하나님은 가장 성능 좋은 휴대전화를 갖고 계시므로 아무 곳에서나 전화를 걸면, 그곳에서 받아주신다. 그러니까 일정한 장소에서만 응답하시는 게 아니다.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지하철이나 교실이나 회사 식당이나 그 어디에서건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2)하나님 음성을 듣기 위해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필요하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어쩌다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게 아니다. 반드시 믿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 주신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이런 믿음 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는 어렵다. 우리에겐 많은 음성이 들려온다. 하나님의 음성이나 사탄의 음성, 혹은 내 내면의 음성 등이 들려온다. 그중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위해선 하나님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올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하는 분별력이 있어야 하지만 분별력보다 우선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물론 모든 원칙은 하나님 우선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믿음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원할때는 음성을 들려주신다. 그 대표적 인물이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이 믿지 않을 때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사건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것은 절대권한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자면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전제될 때 하나님 음성을 쉽게 들을 수 있다.

 

 

3)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기 위해 깨끗한 마음이 필요하다.

시편 66편 8절에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시편 51편 10절에서 11절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노래하고 있다.

나의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할 때 주님 앞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과 마음이 깨끗해지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야 하나님이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4)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으려면 순종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부모와 갈등이 심한 아이는 부모가 어떤 말을 해도 잘 순종하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을 아예 기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부모의 말에 집중하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다. 눈은 열심히 강사를 따라다니지만 머리는 백지 상태여서 강의 내용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은 경험을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먼저 그 말에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말도 알아듣지 못한다. 먼저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온전히 그 음성에 집중할 수 있다.

 

 

5)대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야고보서 4장 7절을 보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자 하는 모든 경우에 사탄의 방해가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온전히 하나님의 음성만이 들리도록 대적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나라.”고 소리 내어 선언해야 한다. 강한 어조로 선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기도할 때 늘 이렇게 대적하는 기도를 하는 게 좋다. 병을 고칠 때도 감사기도를 할 때도 성령을 초청할 때도 늘 대적 기도를 해야 한다.

 

 

6)모든 것을 내려놓는 마음이 필요하다. 인간의 뇌는 기억하도록 만들어졌고 신체는 경험에 의존하도록 되어있다. 인간이 가장 신뢰하는 것은 자신이 체험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가장 방해되는 요소가 과거의 경험일 수 있다. 특히 과거에 음성 듣기를 경험했다면 하나님이 동일한 방법으로 주실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 음성듣기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신앙에서도 가장 안 좋은 것이 과거의 경험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방법이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역에서 모든 경우에 과거의 경험을 중시하되 절대적 신뢰를 하면 안 된다. 과거를 신뢰해서 아픔을 당한 가장 안타까운 예가 모세에게 있다.

출애굽기 17장에서 모세는 지팡이를 두드려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로 바위를 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수기 20장에 가면 모세에게 하나님이 바위에 물이 나오라고 명령하게 하신다. 그러자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을 내 준다. 모세는 출애굽기 17장에서의 자기 경험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세에게 가장 큰 실수였다. 이 사건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자기 경험을 의지한 좋은 예다. 너무나 똑 같은 사건에 대해 하나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으나 모세는 자기 의지를 믿어버렸다.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저지른 실수였다. 결국 모세는 이 사건, 즉 불순종으로 인해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으면 이처럼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7)마지막으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요한복음 15장 26절을 보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사도행전의 많은 역사가 성령을 통해 일어난다. 성령세례를 받은 순간 방언을 하고 병고침을 하고 예언을 한다. 성령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증언자가 되며 다리가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1)부터 7)까지의 항목을 새겨야 한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가 되면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앞으로도 말하겠지만 정말 조심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음성들었다는 자들의 태도다. 그들의 교만에 빠져 음성을 강조해선 안 된다.

최근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하나님이 몇 주 동안 잠을 안 재우신다고. 정말로 하나님이 안 재우신 걸까? 아니면 자기가 못 자는 걸까? 혹은 자기 안에 있는 분노나 사탄의 역사에 의해 못 자는 걸까?

음성을 듣는다는 자들의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면 음성만 강조하고 섬김이 없다. 하지만 모든 신앙적인 사역의 중심은 섬김에 있다. 먼저 겸손하게 낮아져 섬기는 도를 보이지 않으면서 음성만 강조하면 공동체의 화합을 위협한다. 성경적으로 맞지도 않는 원리까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 상대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대화를 해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닌지 대부분 금방 들통이 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라면 상대가 그 음성에 대해 비판이나 판단을 하더라도 분노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자들은 상대방이 던진 의견을 곧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곧바로 분노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듣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꼬리가 길어졌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데 사용하지 않으려는 겸손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음성 듣기가 분쟁이나 분열의 씨가 된다. 하나님은 결코 분열의 하나님이 아님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