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동행/세상과 교회를 향해

차별금지법에 대한 보수 기독교인의 논리에 대하여

강 영 길 2013. 4. 10. 17:23

요즘 기독교인인 동료들의 카톡에는 예외없이 다음 내용의 글이 뜬다.

 

★★큰 일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입니다★★★★★

 

*반대의견도,써야겠고,다른분들에게도,전해주어야겠습니다.

*차별금지법이 다음주 화요일(4.9)까지 국민의견 수렴한다고 하네요. 얼마전에 못 막아냈는데 이번에 안되면 다음엔 너무나 어렵다고 하네요.

*거룩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시간과 마음을 조금 내 셨으면 합니다. 꼭~~^^!!

[긴급공지]

*아래와 같이 차별금지법 반대 의견을

*국회에 꼭 제출해 주세요

[1] 홈페이지http://pal.assembly.go.kr/law/mainView.do

1.‘차별금지법안’으로 검색

2.‘차별금지법안’을 클릭

3. 의견등록 클릭

4. 로그인 혹은 주민등록번호 실명인증 후 반대의견쓰기

*[2] 이메일 mansu2678@assembly.go.kr : 장만수 조사관

*전화 02) 788-2959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 동성애를 죄나 비윤리적이라고 말할 경우,
*특별히 동성애를 성경대로 죄라고 가르칠 경우,
*김일성 주체사상을 선전하고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교육과 영상과 각종 선동 등에 반대하는 말을 할 경우,
*이슬람 등 타종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처벌 후에도 계속 하면 5배의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해야 하며,
*국가인권위원회는 3000만원의 이행 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외국에서는 성교육시간에 동성애동영상을 보여주고 항문성교까지 가르칩니다.
*동성애를 죄라고 하거나 타종교에 구원이 없다는 등 *부정적인 설교하는 목사님들은 감옥에 가시게 되고,
*한국 교회는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종북세력에 대한 비판조차도 할수 없게 되어 나라가 정치적으로도 어렵게 됩니다.
*이 문자를 100명 이상의 성도님들께 전달해주세요.

*행동하는 양심과 기도가 이 사회를 거룩하게 지킵니다.

 

온갖 종류의 글들이 인터넷을 도배하는 세상에서 때론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낯 부끄러운 글들을 보게 된다.

선거철만 되면 거의 불법에 가까운 보수 기독교 사회의 선거 운동 문자들도 보게 되고, 성경에는 거짓말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이름으로 사실까지 왜곡해가면서 날라다니는 글들을 보면 대체 이 정보의 생산 주체는 어떤 사람들인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번 차별 금지법안 반대 운동을 하는 분들이 초기에는 민주당에 항의하라는 글들을 돌렸다. 그때 내가 일갈했던 것은 새누리당에 항의하라는 것이었다. 만일 정치적인 목적 없이 차별금지법 통과만을 금하고 싶으면 새누리당이 과반수이니 새누리당 의원들이 반대하면 사태는 조용히 끝난다. 민주당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법안 하나 통과시킬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 민주당에서 반대시위를 하라니, 차별 금지법 무효화가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요즘 나도는 글에는 민주당에 항의하라는 대목은 쏙 빠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법안 반대라는 본연의 목적으로 갔으니 말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기독교 운동이 정말 기독교 운동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조목조목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제목을 보자,  ★★큰 일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기도란 사랑과 공의로 이 세상이 다스려지기를 원하는 기도여야 할 것같다. 물론 때로는 하나님의 전권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도 해야겠으나 가능하면 세상을 아름답게 다스리고 사랑할 줄 아는 기도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걸맞는 기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빙자하는, 예수님을 선동의 도구로 삼는 감이 없지 않다.

 

차별 금지법이란 무엇인가? 소수자에게 불이익을 주어선 안 된다는 법이다. 이 법에는 여성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는 법도 있고 인종 차별을 하지 말라는 법도 있다. 포괄적으로 보면 모든 인간, 예외없이 모두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그렇게 보면 이 법은 참 좋은 법이다.

 

그러나 차별을 금지하다보니 동성애자도 차별하지 말고 다른 종교주의자도 차별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기독교인의 마음이 걸린다. 그래서 이 운동에 앞장선 분들이 이렇게 말한다.

 *거룩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시간과 마음을 조금 내 셨으면 합니다. 꼭~~^^!!

그럼 우선 대한민국이 거룩한 나라인가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전 세계에서 성범죄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이고 사기 범죄율 1위라는 우리 나라가 그렇게 거룩한 나라일까? 우리는 이미 거룩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거룩해지면 정말 좋겠다. 나도 거룩한 나라가 되길 원한다.

 

기도 요청 문에 중구난방으로 적힌 글을 항목별로 좀 묶어보기로 한다.

 

첫번째 묶음은 성문제에 관한 항목이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 동성애를 죄나 비윤리적이라고 말할 경우,

*특별히 동성애를 성경대로 죄라고 가르칠 경우,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외국에서는 성교육시간에 동성애동영상을 보여주고 항문성교까지 가르칩니다.

 

이렇게 한다고 하는데 헌법에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된다. 만일 내가 동성애는 죄라고 말했을 때 내가 벌금을 받으면 나는 헌법 소원을 해야 한다. 헌법은 내 양심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회적 차별, 곧 인신공격을 당하거나 채용과정에서 차별을 당하거나 계약 관계에서 불이익을 줄 때는 법적 처벌을 받을 것이다.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죄이기 때문에 그들을 차별해야 하는가? 무단횡단은 죄다. 그러니까 무단횡단을 하면 비난하고 사회적으로 취업을 방해해야 하는가? 마음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도 사회적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자.

동성애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라 비록 그들이 죄를 지었을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법이다. 우리의 현실 법에는 성경이 요구하는 질서와 다른 법이 얼마든지 있다. 땅은 소유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는 부동산을 소유하도록 법이 만들어져 있다. 그러면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들을 모두 처벌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 아닐까?

 

또 성교육 시간 문제를 언급했는데 성교육 시간이 아니라도 구약성경에 이미 동성애와 심지어 동물과의 성교에 대해서까지 나와있다. 기독교인으로서 그 성경 구절을 어떻게 해야 할까? 성교육이 성행위를 장려하는 교육인가? 그렇지 않다. 건강한 성을 배우라는 교육이다. 만일 동성애 교육이 동성애를 장려하는 교육이라면 성교육도 성생활을 장려하는 교육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성교육은 성행위 장려 교육이 아님은 물론이다. 이처럼 터무니 없고 논리력조차 떨어진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면 결국 기독교인 욕먹이는 결과만 초래한다.

게다가 차별 금지법이 통과된 나라에서 그런 교육을 한다는 말이 마치 그런 것들을 장려한다는 말로 꾸며져 있는 것도 문제려니와 실제로 그런 일이 어느 나라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두번째 묶음은 타 종교에 대한 태도다.

*이슬람 등 타종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 경우,

*동성애를 죄라고 하거나 타종교에 구원이 없다는 등

*부정적인 설교하는 목사님들은 감옥에 가시게 되고,

 

이 논리에는 우리가 심판자가 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인을 참혹하게 죽이는 일을 보면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불교도 마찬가지고 어떤 종교라도 기독교인에게 차별을 가하면 기독교인들은 그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기독교인에게 직업도 주지 않고 유대교에서도 기독교를 차별한다. 심지어 사회 공동체에서 철저하고 응분한 대가를 치르게까지 한다. 그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사회에서도 그런 소수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 특히 직업을 안 준다든지 불이익을 당하게 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역지 사지의 논리이기도 하거니와 예수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죽었기 때문이다. 심판자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목사님이 그런 설교 하면 감옥에 갈까? 이것은 일종의 극단적인 경우이고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선동이다. 어떤 나라도 종교집단의 설교로 감옥에 넣진 않는다. 이번 선거기간에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설교를 많은 교회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정 후보를 암시하는 설교를 한 교회도 있고 공공연한 밀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교회 목사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잡혀가진 않았다. 실제로 다른 종교에 구원이 없다는 설교를 했다 해서 감옥에 간다면 모든 목사가 다 감옥에 가야 할 텐데 그런 법은 만들 수도 없다.

다시 말해서 구조적 차별을 하지 말라는 입법에 초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묶음이 걸작이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선전하고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교육과 영상과 각종 선동 등에 반대하는 말을 할 경우,
*또한 종북세력에 대한 비판조차도 할수 없게 되어 나라가 정치적으로도 어렵게 됩니다.

 

종북 세력이라니. 대체 이 용어는 누가 만든 용어인가? 우리 사회 안에서 이념으로 편가르기를 하고자 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용어다. 이 용어만큼 사랑없는 용어도 없다. 북한은 무조건 악이고 남한은 선이며, 북한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모든 이는 적이라는 생각이 깔린 용어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로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멀어진 용어다. 그러면 북한 선교사들은 모두 종북세력이다. 북한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면서 종북 세력 타령을 하는 자들의 진심은 무엇일까? 그들은 북한을 사랑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북한의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걸까? 북한을 멸망시키라고 기도하는 걸까? 북한을 사랑하자고 하면 종북세력이면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자도 종북이다. 그런데 한국의 극우 세력들이나 보수 기독교는 종북 타령을 하면서 북한을 위해 기도하자고 한다. 도대체 무얼 기도한다는 말인가?

 

사실 이 반대의 핵심 개념은 마지막 주장에 있는 것 같다. 동성애니 이슬람이니 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직 종북 세력을 막기 위해 이 법안을 반대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은 나의 안목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주체사상을 반대하면 감옥에 간다는 것은 현재 국가 보안법이라는 실정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충돌 되는 법이 존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유아적인 논리를 펴는 데는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이렇게 확대 해석하고 왜곡하는 분들의 생각의 끝에는 한국 교회의 몰락에 있다. 정말로 한국 교회가 그런 문제들로 몰락할까? 이것은 하나님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닐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시고 천지의 주재권을 가진 분이시다. 그 분이 도대체 인간들의 법 따위에 지신다는 말인가?

차별을 금지하고 소수자를 사랑하면 한국의 기독교가 몰락한다면 한국 기독교는 사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않으며 누군가를 미워할 때 성장한다는 말인가? 한국 기독교는 일제시대에서 성장했고 한국 전쟁의 시퍼런 총칼 앞에서도 성장했으며 가난과 절망 속에서도 성장했다. 그런 한국의 교회가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는 법 때문에 몰락할 것인가?

 

이 문자의 선동자들이 마지막으로 던진 한 문장이 나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행동하는 양심과 기도가 이 사회를 거룩하게 지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거룩한 존재가 아니다. 더구나 이처럼 사랑과 용서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면서 어떻게 거룩해지겠는가?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은 김대중 대통령이 만든 말이다. 이런 운동을 하는 자들은 김대중 대통령을 종북 대통령이라고 한다. 그러니 행동하는 양심이란 말하자면 종북 대통령이 만든 말이다. 종북을 싫어하는 자들이 종북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코메디다.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 한국의 기독교는 할 말이 없다. 한국의 기독교는 그동안 정의와 소수자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편에 서지 않았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 가진 것을 더 많이 가지려 한 자들의 편에 서 있었다. 피를 흘리며 정의를 위해 싸운 자들을 향해 얼굴을 돌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비난했다. 그런 한국의 기독교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을 쓰기가 좀 낯 부끄러울 것같다. 사람이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더구나 낯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는 소수자들을 보호하라고 그렇게도 반복되어있다. 그런데 그동안 소수자를 철저히 억합한 자들의 편에 서 있던 한국의 기독교가, 다시 소수자들을 차별하지 말자는데에서 행동하는 양심 운운하는 것은 철면피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말이다.

 

모든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하는 게 아님을 비기독교인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로 행동하는 양심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아주면 좋겠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차별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세상이 알아보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