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동행/세상과 교회를 향해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

강 영 길 2014. 8. 5. 16:58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고민해야 했던 것은 사회적 책임을 어디까지 져야 하느냐였다. 내가 50대가 되면서 주변의 많은 믿는 자들이 기독교인은 당연히 사회와 격리된 자기 신앙에 전념해야 한다는 시각을 보인다. 그런 태도는 사실 현실도피적인 태도다. 그러나 기독교는 현실 도피의 종교가 아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전체를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꼬리라도 생각해 보자.

 

개인의 신앙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한국의 대형 교회 목사들의 극보수 성향의 이념에 맞닿아있다. 이들은 진보적인 의사결정을 극도로 회피하고 오직 기득권을 위한 주장만을 한다. 그래서 가령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킬 때는 엄청난 목소리를 냈다. 그 전까지 기독 청년들이 사회적 이슈를 주장할 때는 기독교는 정치 참여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가 이명박 대통령을 밀 때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 당시에 했던 4대강 사업은 재앙 수준으로 돌아오고 있고 당시의 부정부패는 기승을 부렸으며(7월 말경 박근혜 정부가 자료로 제시했다.) 국가의 경쟁력과 삶의 질은 급전직하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밀었던 정권이 실패하자 국민들은 실망을 했고 한편 기독교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 사실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서 실패한 정권에 대해 반성하기는 커녕 이제는 다시 정치와 종교는 분리하라고 한다. 책임은 지지않고 비겁한 도피를 선택한 것이다. 이러니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도가 될 수가 없다.

 

이들은 예수님이 정치적인 면에서 선을 그었다는 것을 자신들의 태도의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잘 다스리라고 하였다. 만일 정치가 정치에서 끝난다면 우리는 정치에서 한 걸음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는 사회 문화 경제는 물론 양심의 문제에까지 닿아있다. 그러면 한국 교인들은 양심과도 선을 그어야 하는 걸까?

 

기독교 역사와 성경은 개인의 신앙 때문에 사회를 징벌하거나 개혁하진 않았다. 가깝게는 루터의 종교개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해 터졌다. 그것도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해 터진 것이다.

성경에서 본다면 소돔과 고모라, 바벨탑, 출애굽 등 거의 모든 사건이 개인의 죄악보다 사회적 문제로 발생한 것이다. 개인의 죄는 개인이 책임을 지게 했고 사회의 타락에는 사회가 책임을 지게했다. 하나님은 개인의 믿음만을 다스리는 분이 아니라 인간 세계를 다스리는 분이다. 그런데한국의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이 자꾸만 전능한 하나님을 무능한 하나님으로 바꾸려고 한다.

 

조선시대에 불교가 산으로 도망갔던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이제 자꾸 혼자 도망가겠다고 한다. 기독교는 숨는 종교가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는 종교다. 정치가가 되라는 게 아니라 이 사회의 횃불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정치를 멀리 한 것은 정치가 예수님보다 작기 때문이었지 정치를 외면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더이상 도망다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