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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하는 자녀교육 5

강 영 길 2012. 2. 10. 11:34

5)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성경 속 인물들은 바울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셨다.

요셉은 조기 교육에 실패한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하나님을 통해 바로잡아진 인물이다. 요셉은 잘 알려진 대로 어머니가 죽어서 야곱이 홀로 붉은 옷을 입혀 키웠다. 붉은 옷은 값비싼 옷이다. 염색에 많은 돈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셉은 버릇없는 왕자병의 주인공이었다. 가령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하는 장면은 요셉이 얼마나 분별력이 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형들의 입장은 중요치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은 마음대로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형들이 모두 미워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는 장면도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보디발의 아내는 당대 최고 권력에 있던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종에 불과한 남자에게 먼저 꼬리를 쳤을까? 아마 요셉에게도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려는 것을 알면서도 보디발의 아내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요셉이 찾아가는 장면은 요셉의 판단력을 의심해 볼 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약점을 가진 요셉은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이겨낸다. 특히 감옥 생활이라는 고난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 놓는다. 그는 감옥 생활이라는 긴 고난을 통해 성공한 정치가로 변신한다.

요셉은 이처럼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의 말씀과 시련을 통해 새로운 인물이 된다. 우리도 아이들을 하나님 말씀 안에서 키우되,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아이들이 변화되는 날을 맞게 된다. 비록 내 아이가 문제가 있으나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잘 다스리라고 기도하는 게 우선이 된다.

 

6)비교하지 말자.

요즘 유행어에 엄친아라는 말이 있다. 엄마 친구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엄마 친구의 아들은 잘 생기고 좋은 학교 가고 착하며, 등등 온갖 비교의 대상이 되는 똑똑한 아이를 엄친아라고 한다. 사람은 비교가 되면서 자기 열등감에 빠진다. 그러한 비교를 하면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 따라서 상처주는 비교를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내 아이의 어떤 장점이 있는가를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아이가 어떤 장점이 있는가만 보면 내 아이가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부모는 내 아이만 사랑하면 안 되지만 적어도 내 아이는 사랑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우리가 누군가와 비교할 때는 그 아이의 본질을 보지 않는다. 성경 속에서 다윗을 보자. 사무엘이 왕 후보자를 찾아왔을 때 다윗의 아버지는 다윗은 아예 내놓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윗의 형들은 다윗에게 가서 양이나 치라고 했다. 힘을 쓰는 일도 아니고 머리를 쓰는 일도 아닌, 그 당시로서 가장 낮고 천한 일인 양치는 일을 하라고 한 것이다. 다윗에 골리앗 앞에 섰을 때 적들은 다윗을 어린 아이라고 무시했다. 아무도 다윗의 본질을 보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인간적 기준에 다윗을 비교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다윗을 무시했을 때 다윗은 형제들과 적들에게조차 무시를 당했다. 다윗이 전에 돌팔매로 사자를 잡은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가족은 그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았다. 다윗의 본질을 보지 않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로 타인과 비교를 했던 것이다.

오늘날 왕따 문제가 생기는 것도 부모의 공격적 욕망이 낳은 결과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무시당하고 공격받으며 고통을 당했다. 그래서 고통받을 때의 아픔을 타인에게 전가시킨다. 아이들이 사랑만 받았다면 결코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려면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그 아이를 온전히 그 아이로 봐 줘야 한다.

 

7)기준을 아이들 수준으로 낮춰라.

초등학생 부모들이 찾아와서 우리 아이는 논리적이지가 않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웃고 만다. 초등학생이 논리적이면 대학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 초등학생이 논리적이지 않은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초등학생이 논리적이기만 하다면 그 아이의 정신적인 상태를 점검해 봐야 한다.

적어도 사십년 이상 인생을 산 사람의 기준으로 아이들의 논리성을 평가해선 안 된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사고체계가 있다. 그것은 중고등학생까지도 마찬가지다. 어른의 기준으로 아이를 평가해선 안 된다.

마음을 열어주는 백한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아름다운 말이 있다. “좋은 교사는 아이들이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게 하는 다리다.” 그렇다. 좋은 교사라면 아이가 인생의 강을 건너게 하는 좋은 다리여야 한다.

부모는 가장 훌륭한 교사이며 가장 밀접한 교사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인생의 강을 건너게 하는 다리임에 틀림없다. 좋은 교사가 되는 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두 가지만 생각해 보자.

첫째는 약속을 잘 지키는 교사는 좋은 교사다. 약속에는 긍정적 약속과 부정적 약속이 있다. 긍정적인 약속은 행동심리학에서 정적 강화라고 한다. “오늘 할 일을 잘 하면 햄버거를 사줄게.”같은 보상이다. 부정적인 약속은 부적 강화라고 한다. “오늘 할 일을 잘 못하면 설거지를 해라.” 이처럼 양방향의 약속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약속은 잘 지킨다. 하지만 부정적인 약속에서는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서 상은 잘 주지만 벌은 제대로 주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폭발해서 왕창 벌을 준다. 이런 경우의 벌은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폭력이 된다.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면 좋은 교사가 되기 어렵다. 교사는 긍정적인 약속과 부정적인 약속을 모두 잘 지켜야 한다.

둘째, 좋은 교사는 귀높이를 맞춰야 한다. 흔히 눈높이 교육을 강조한다. 눈높이는 주로 교육 수준을 강조하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귀높이 교육이다. 아이들의 말을 얼마나 진심으로 들어주는가의 문제라는 말이다. 어른의 기준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아픔과 슬픔과 기쁨과 행복을 함께 나눠줘야 좋은 교육이 된다.

어느날 수업에서 아이들이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여러명의 아이가 오늘 수업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가방을 쌌다. “좋아, 오늘 수업 끝.”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놀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교실을 나오려 하자 아이들이 모두 수업을 하자고 했다. 그동안 아이들과 수업을 한 중에서 가장 열심히 수업을 한 날 중 하루였다. 아이들은 자기 심정을 이해해주는 선생님을 원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기 마음을 이해해주는 부모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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