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작은 공동체에 한 장로님이 계시다.
그 분은 말씀하는 것 자체로 깊은 영성이 느껴진다.
그분은 모임에 와서 늘 마지막에 말을 하는 편이다.
어떤 때는 장로님이 뒤의 약속이 있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조용히 남의 이야기를 듣다가 빙그레 웃고 자리를 뜬다.
거의 두 시간 가량을 남이 하는 이야기만 들어주고는 사라진다.
장로님과는 다른 한 분이 있다.
그 분은 꽤나 겸손한 표정과 겸손한 태도와 겸손한 말투를 쓴다는 점에서
장로님과 똑 같다.
하지만 그 분은 보편적으로 남의 나눔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
아주 점잖고 교양있게 꼬리를 붙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동조와 공감이 아니다.
무언가 상대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드는 이야기를 한다.
혹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나눔의 원리는 공감과 동조에 있지, 실력과시에 있지 않다.
이런 면에서 좀 아쉬움이 있는 분이다.
한데 이 분이 나눔에 참여 했다가 먼저 갈 일이 생겼다.
그러자 이 분은 자기가 오늘은 먼저 일어설 일이 있으니 먼저 나누겠다고 했다.
그래서 모두들 그 분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옳은 말과 꼭 옳지는 않은 말도 했다.
하지만 다들 조용히 나눔을 받아들였다.
그분은 거의 모든 나눔이 끝난 뒤에 자리를 떴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그 분을 비판하고 싶은 의도가 아니라
전자의 장로님을 기리는 의미에서 쓴다.
그 장로님의 태도가 참 성숙하고 본받을 점이 많다.
내가 떠나기 전에 내 발표 내용을 들으라고 요구하는 태도의 그 형제와
묵묵히 두 시간 가까이 듣고만 있다가 자기 나눔은 발표할 시간도 얻지 못한 채
미소만 남긴 채 자리를 일어선 장로님.
아무리 좋은 나눔도 장로님의 겸허한 태도를 능가할 수 없다.
장로님의 태도 하나가 모든 나눔보다 더 큰 은혜가 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장로님만 보면 나도 그분과 같은 큰 그릇이 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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