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하셨다. 다른 복음서에서 보기 힘든 진술들이 요한복음에는 곳곳에 나온다. 빌립을 시험하고자 했으면 예수님은 훨씬 인간적이고 어떻게 보면 해학적인 측면도 있다. 그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는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빈 들이요 해가 이미 저물었다. 들판에서 해가 지면 어둠이 급속도로 찾아온다. 불과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어두워져 버린다. 하늘에 달이 있다는 이야기도 없고 이어지는 물 위를 걷는 사건에서도 달이 떴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어두운 밤이었음에 틀림없다. 날은 어둡고 먹을 것은 없으니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었을 것이다.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것이 우리가 구원받기 전의 모습이다. 이 구원 받기 전의 불쌍한 사람들이 전혀 추위를 느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이 오병이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만 5천명을 먹인 사건이다.
가족을 포함하면 적어도 3만명은 되지 않았을까? 어디에든 종교적인 모임에는 여성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음에 틀림없다. 당시로선 다산 풍속이 있었으니 엄마들은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아이를 데리고 나왔으리라 추측이 된다. 그러면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하면 최소한 2만명, 많게는 4만명의 인구까지 추측해 볼 수 있다. 그 중간인 3만명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우선 예수님은 축복만 했다.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빵을 더 만들어달라는 말도 않았고 오천명을 먹게 해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축복하고 떼어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축복의 힘이다. 축복은 능력이요 축복은 기적을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축복의 말을 반복적으로 할 이유가 있다.
예수님이 축복하기 전에 먹을 것을 찾으니 아이가 들고온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다. 아이가 들고온 음식이라면 결코 큰 빵이나 물고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빵은 아이의 한 끼 음식 정도에 해당하는 작은 빵 다섯 개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 어촌에도 있는 것처럼 말린 물고기를 쪄서 가져왔을 것 같다. 젖은 물고기를 들고오긴 어려웠을 테니까.
기적은 놀랍게도 아이가 자기 먹을 것을 예수님께 드린 데서 시작된다.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자기 먹을 것을 내 놓지 않겠노라고 떼를 쓰고 응석을 부리지 않았을까? 심지어는 제자들이 가져가기 전에 얼른 먹어버렸을 수도 있다. 만일 아이가 먹어버렸다면 그 빵은 아무런 기적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것은 그냥 한 사람이 먹을 빵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이 그렇다. 혼자 먹으면 혼자 배부르고 끝나되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한데 그 어린 아이가 그 먹을 것을 내 놓았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내 놓았을 것이다. 아이는 기적을 바라고 내놓지 않았다. 예수님이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하리라고 내놓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내 놓자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먹을 권리를 포기할 때 하나님의 기적은 시작된다. 기적을 바랐을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에 순순히 응할 때 기적은 시작된다.
예수님이 축복을 하고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서 주셨다. 다섯개의 빵을 왜 쪼개서 주었을까? 제자는 열둘이고 빵을 받을 사람은 삼만명이다. 일일이 나눠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손도 부족하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분배를 해 준다. 그런데 제자들 앞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분명히 예수님이 빵을 나눠주셨는데 똑 같은 빵이 열개로 늘어난 것이다. 제자들은 눈위 휘둥그레졌다.
그 다음 제자들은 빵을 떼서 나눠주기 시작한다. 원래도 작은 빵이었는데 그 빵을 제자들이 큼직하게 잘라서 나눠줬을리는 없다. 처음에는 조금씩 나눠줬을 것이다. 이것으로 도저히 3만명을 먹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의심을 하면서, 예수님은 왜 이런 허무맹랑한 짓을 시킬까 고민하면서 나눠줬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나눠줬다. 그런데 웬일인가? 빵이 작아지질 않는다. 다섯 번 여섯 번 반복해서 빵을 나눠주면서 관찰하던 제자들에게 자신감이 생기고 믿음이 생긴다. 그래서 제자들은 빵을 점점 크게 떼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인간의 믿음의 성장을 상징한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시작한 어떤 일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점점 큰 믿음을 갖고 과감한 실천을 하기 시작한다.
제자들도 이제는 부족할 것인가를 더이상 걱정하지 않으면서 빵을 떼기 시작한다.
그러나 열 두 명이 3만명에게 빵을 나눠주기에는 시간도 일손도 부족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때 일꾼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듯이 빵을 나눠주는 사람의 숫자도 늘어났을 것이다. 제자들이 빵이 줄지 않는 역사를 경험했듯이 빵을 하나 받은 엄마가 아이에게 빵을 나눠주었는데 자기 빵이 줄지 않는 것을 경험했을 테고 아이가 아버지에게 빵을 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빵이 줄지 않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기적에 대한 놀람과 찬양과 기도가 저절로 나왔을 것이다. 놀라서 소리를 지른 사람, 감격해서 우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감격에 겨워 그 빵만 바라보고 눈물짓고 있었을 것이며 그 빵을 본 순간 병이 나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모세의 70인이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밥상을 받았던 그 감격이 회중들 가운데 일어났을 것이다.
자기 빵을 나눠줘도 줄어들지 않자 그 경험이 너무나 신기해서 빵을 나눠누고 나눠준다. 여기 저기서 빵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만일 받은 사람이 먹어버리면 먹은 순간 그 빵은 더 이상 효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빵을 나눠주는 사람은 계속적인 기적을 체험한다. 이것도 하나님 나라의 논리다. 빵을 나눠주는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예수님이 했던 것처럼 축복의 기도를 했을 것이다. 나눠주는 사람에게 축복하고 빵에게 축복하고.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빵을 떼어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처음에 빵을 조금 받았던 사람들은 그 빵을 먹어버렸겠지만 이웃들의 빵이 줄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자기들도 다시 달라고 하여 그 빵을 남에게 나눠주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빵이 다시 기적을 일으킨다. 이것은 신앙의 파급효과다. 처음에는 자기 배만 채우던 사람들이 주변에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따라하면서 다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나무 둥치같다. 빵을 나눠주는 과정이 처음에는 하나의 빵을 쪼개면 두개가 되고 두개가 네개가 되는것이 마치 나무 기둥에서 두 가지로 뻗고 다시 두 가지가 되고 다시 두 가지로 뻗어나는 것 같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의 원리같다. 하나의 소문이 두개의 소문이 되고 두개의 소문이 네개의 소문이 되고 네개의 소문이 여덟개, 여덟개가 열여섯 개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같다. 예수님은 벌써 소셜 네트워크의 힘을 알았던 것일까?
처음에 빵을 나눠줄 때는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서로 빵을 받고 싶어했을 것이다. 은혜가 적을 때는 이렇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목도한 다음 차츰 질서를 찾아간다. 자기에게도 반드시 빵이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먹는 것보다 빵에 일어나는 기적에 더 흥이 나게되면 먹는 것보다 나눠주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신앙이 성숙하면 자기만 먹으려고 아수라장이 되지 않는다. 질서가 생긴다. 그리고 내가 갖는 것보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데 더 큰 감격을 느끼게 된다.
빵은 원래 크기보다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 가져왔던 그 빵보다 큰 빵이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결코 우리가 드린 것을 과장해서 일어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것 그것을 갖고 계속 역사하신다. 작은 것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신다. 빵 하나를 엄청나게 크게 만드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빵이 늘어나는 하나님의 원리를 보여줄 수는 없다. 작은 빵일 때면 눈에 띄게 하나님의 역사가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빵이 커지면 사람이 들고 다닐 수가 없고 나눠주는 사람이 힘이 들 수 있다. 하나님은 나눠주는 사람에게 적당한 크기, 일을 해도 감당할 수 있는 크기 안에서 역사하신다.
결국 빵은 열 두 바구니가 남았다. 어쩌면 개인적으로 더 챙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다양해서 은혜를 체험하고도 온전히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욕심을 더 내는 사람도 있다. 혹시나 밤이 되면 먹을 게 없을까봐, 기적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날까봐 빵을 챙긴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회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한 번 준 축복과 은사를 거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빵을 챙겼을 것이다. 그런 다음 남은 빵이 열두 광주리다.
그 빵은 누가 가져갔을까? 아마도 소년이 가져갔을 것이다. 소년은 처음에 다섯 개의 빵을 내 놓았는데 자기에게 다시 돌아온 빵은 열두 바구니가 되어버렸다. 한끼 먹을 빵이 이제는 한 달은 족히 먹을 빵으로 부풀었다. 열두 바구니의 빵을 혼자서 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소년은 함께 온 가족과 친지에게 들어달라고 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빵만이 아니라 바구니도 늘었다는 사실이다. 하나씩 떼어주던 빵이 이제는 바구니까지 덤으로 왔다. 처음 빵을 내어 놓은 소년의 믿음을 예수님은 결코 헛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소년에게 상급으로 그 열두바구니를 챙겨주셨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다른 소년도 빵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소년은 빵을 내놓지 않았을 지 모른다. 그 소년은 빵을 내놓지 않은 대신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또 이 기적의 주인공이 아니라 구경꾼으로 남아야 했다.
소년은 이 때 무엇을 배웠을까? 믿고 떼어주니 줄어든 것이 아니라 열두 바구니가 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것이 믿음의 원리요 나눔의 원리다. 믿음은 기적을 낳고 나눔은 풍요를 낳는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다.
그 춥고 어두운 공간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이 기적을 체험한 그날 밤, 아무도 춥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훈훈한 밤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신앙은 나 하나의 권리포기로 기적이 일어나고 내가 축복받으며 내가 받은 축복으로 타인들도 함께 행복해지는 원리를 갖고 있다. 오병이어의 진정한 기적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이다.)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의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 부분이다. 정치적인 인물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라도 온 인류를 구원하게 하지 못한다. 물론 예수님이 오신 목적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뒤로 물러섰던 것이다.)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예수님이 걸어온 바다는 잔잔한 바다가 아니었다.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배를 저은 속도가 있었을 텐데 예수님이 걸어온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배보다 빠른 속도로 오신 것이다.)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영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제적인 문제에만 집착해 있음을 꼬집었다. 예수님을 따라올 때 표적을 보고 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현실에서 물질적인 이익만을 쫓아온 것이다.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 예수님을 따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 중 하나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잘 믿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지도 않으면서 분주하게 교회일을 하는 것은 어쩌면 떡을 보고 달려드는 자와 같다.)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먹을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가치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한 생명이라도 잃지 않게 하는 데 있다. 그렇게 되도록 예수님이 오셨고 그렇게 되도록 믿는 자가 살아가야 한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4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사람은 사람의 경험과 과거, 또 선입관으로 인해 진리와 진실을 못 볼 수 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하나님이 인도해야만 예수님의 구속의 역사에 들어갈 수 있다. 인간의 노력, 인간의 혈육으로 되는 게 아니다.)
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준 양식을 먹었다 해서 다 구원받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고 해서 다 구원받는 게 아니다. 만나의 은혜와 더불어 반드시 예수님 곧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한다. 하나님은 안 믿는 자에게도 만나를 주신다. 그러니 만나만 먹어서는 구원이 없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성찬식에서 떡과 피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며 흰 천은 예수님의 옷을 뜻한다. 그래서 모든 성찬식에는 이러한 감동이 있어야 한다.)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과 내가 일체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찬에 참석하는 그 순간 예수님과의 일체감을 가져야 하고 그 일체가 삶에서 지속되어야 한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다 이해하지 못하고서도 끝까지 따랐다.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끝까지 따라가는 것이다.)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이 이와같이 말하자 떠나갔다. 이들은 구경꾼이었던 것이다. 믿음이 없어도 추종자는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상황이 허락되지 않으면 떠난다. 그러나 믿는 자는 상황을 불문하고 함께 한다.)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예수님의 제자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가 떠나서 다시는 오지 않았다고 했다. 예수님이 양육한 제자들조차 떠나고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예수님이 말씀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예수님은 이미 열두 제자를 특별하게 선택했다. 따라서 이 제자들이 안 떠날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믿음은 반복적인 확인과 선포를 요구한다.)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베드로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도록 살아야 한다. 주의 말씀이 영생이 말씀이온데 내가 누구에게 가리까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