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심판 선언
3장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의 질문은 교묘하다. 어떤 과일을 먹지 못하게 했느냐고 물은 게 아니라 모든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느냐고 물음으로써 다른 과일과 선악과를 비교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왜 그 열매를 먹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 비교를 함으로써 의문을 증폭시키면서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 인간은 질문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약하다. 뱀은 정곡을 찌른 질문을 하고 있다.)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뱀의 질문은 핵심을 벗어나고 있다. 금기의 핵심은 과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에 순종하느냐 마느냐에 있다. 한데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물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처럼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이 죄를 창조한다.)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1장 17절에서는 먹지 말라고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와는 만지지도 말라고 말하고 있다. 나도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내 목적 달성을 위해 과장할 때가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과장하지 않는 정직함이 중요하다. 금기를 더 과장함으로써 금기를 깨고자 하는 욕망을 더 불태우고 있다.)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뱀에게는 생사를 결정하는 결정권이 없다. 그런데 사단은 늘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것처럼 거짓 메시지를 보낸다. 하와는 하나님에게 생사의 권한이 있다는 분명한 영적 분별력을 갖지 않았기에 죄를 짓게 된다. 만일 그 권한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직시했다면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권위에 순종해야 하는지 영적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죄를 지은 순간 인간의 눈은 욕망에 더 밝아지고 진리에 대해선 더 어두워진다. 인간이 욕망의 대상, 곧 우상을 하나님처럼 높게 보게 된다. 뱀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여자는 우선 보는 것을 통해 죄의 출발점에 선다. 견물생심, 눈으로 보는 것은 욕망의 출발점이다. 또한 먹음직하다는 것도 인간의 육욕을 의미한다. 지혜롭게 한다는 것은 지적 욕구를 의미한다. 감각적 욕구 육체적 욕구 지적 욕구, 모든 것에 우리는 자극 당하고 그 욕심에서 죄는 출발된다. 둘째, 여자는 남자에게 의논을 했어야 한다. 어떤 중대한 문제를 결정할 때 혼자 판단하게 되면 올바른 판단을 못 할 경우가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동역자와 의논하고 그의 말을 듣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대부분 동역자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행동한다. 거기에서 죄는 시작된다. 또한 죄를 자기만 짓는 게 아니라 반드시 옆 사람을 연루시킨다. 아담에게도 죄를 전염시키고 있다. 죄의 전염성은 빠르고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죄를 짓는 순간, 잘못된 선택을 한 순간 모든 것은 과거가 되어 돌이킬 수가 없어진다. 셋째, 죄는 실천에서 나온다. 과일을 딴 순간 죄가 된다. 사랑도 실천에서 나오듯 죄도 그렇다.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때까지는 죄가 아니다./ 하나님은 생명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말을 안 하셨다. 그것은 아예 먹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며 인간의 자유의지 밖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는 데까지는 하나님이 자유를 주셨다. 그러나 생명나무에는 자유의지를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먹지 말라는 명령조차 안 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절대 권한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생명나무는 먹음직했다는 말이 없다. 사람은 당장 보기에 좋고 먹기에 좋은 것에 흥미를 가질 뿐 진정한 생명, 영생에는 관심이 없다. 만일 그들이 생명에 관심이 있었다면 생명나무를 먹으려고 했을 것이다.)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뱀의 예언대로 그들의 눈은 밝아졌다. 눈이 어두워진 게 아니라 밝아졌다. 육체적인 눈은 밝아졌고 영적인 눈은 어두워졌다. 눈이 밝아지니 벗은 것이 보인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죄가 없을 때는 죄를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식되는 그 순간 죄가 이미 생긴 것이다. 눈이 밝아진 것은 죄를 지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양심의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남의 몸을 발견한 게 아니라 자기 몸이 벗은 줄 알고 있다. 내 양심의 소리가 먼저 들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벗은 것이 부끄러웠고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잎을 엮어 몸을 가린 것은 사람들 앞에서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드러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죄가 있는 순간 우리는 내 죄를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가 없다. 치장을 한 순간 진실성을 감추는 것이다. 겉치레와 본질 없는 치장을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씻기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잎으로 몸을 가리고 살아야 한다./아담은 처음엔 부끄러웠으나 반복되고 익숙해졌을 때 부끄러움도 잊었을 것이다. 인간은 죄를 짓되 그 죄가 반복되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된다. 죄가 반복되면 부끄러움을 잊는다.)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하나님이 바람소리를 내며 동산에 거니시는 중이다. 그 소리를 듣고 이들은 나무 뒤로 숨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운행을 늘 느끼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사는 공간이 동산이다. 하나님은 늘 우리가 사는 그 공간에 동행하신다. 하나님은 왜 동산을 거니실까?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보며 흐뭇해하시며 그 상황들을 감상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는 지, 우리의 공간에 와서 늘 감찰하신다. 죄를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잘 다스리는지를 보려고 하신다. 죄를 보려는 부모의 사랑은 왜곡된 사랑이다. 아이가 잘 자라는지를 보려는 부모의 사랑이 제대로 된 사랑이다. 하지만 아이가 죄를 짓고 나면 그 때부턴 부모가 아이를 감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잘못이 반복될수록 부모는 아이를 더 감시한다. 그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그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잘 다스리도록 감시하신다. 어떻든 그 운행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죄를 부끄러워한다. 우리가 죄를 부끄러워하는 순간 하나님은 바로 우리 옆에 계신 것이다. 따라서 그 순간 우리는 엎드려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곧바로 회개하는 모든 인물을 용서하셨다. 죄를 느낀 그 순간, 즉 나무 사이에 숨고 싶은 그 순간이 회개의 절호의 찬스며 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다. 찾아 나선 게 아니다. 부른다는 것은 우리가 들리는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늘 우리를 부른다. 그리고 묻는다. 만일 우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묻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있다면 대답해라.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있는 곳을 이미 알고 계신 것이다. 그러니 나와서 나를 대면하라는 일종의 간접 명령인 것이다.)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아담은 비밀번호 만들기 시작하고 있다. 통장 비밀 번호나 메일 비밀 번호를 만들고 있다. 물론 하나님이 마스터키를 갖고 있음을 간과한 행동이다. 중요한 것은 아담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다. 옷을 벗은 것이 인간에겐 부끄러웠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것이다. 그것이 죄의 속성이다. 부모를 속이고 죄를 지은 아이가 부모를 피하는 것과 같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벗었음을 알린 것은 자기 자신이다. 누가 알려서가 아니다. 죄를 지으면 스스로 깨닫는다. 불순종하는 순간 우리는 불순종에 대한 강력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벗었음을 누가 알렸느냐고 물은 뒤 곧장 불순종 여부를 묻는다. 불순종과 부끄러움이 동일 선상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죄의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전가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하나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책임의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이 함께 있도록 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 책임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 모든 책임의 근원인 듯이 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하나님을 다 알고 있는 듯이 말하면서 온통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몰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이 분별력 없고 영적 책임을 회피하는 자들의 모습이다. 또 여자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웃을 탓하여 자기 책임을 벗어나려는 사람이다. 설령 아담이 모르고 과일을 먹었다고 해도 확인하지 않은 죄가 있다. 반드시 확인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물었을 때 아담이 솔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했으면 하나님은 용서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담은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았다. 과일을 먹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출 뿐 불순종에 초점을 맞추지 않음으로써 자기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하나님은 아담의 말을 듣고 곧장 책망하지 않는다. 아담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준 것이다. 아담이 책임을 전가한 하와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 하였느냐고. 그러자 여자도 마찬가지로 회개하지 않고 뱀의 책임으로 돌린다. 유혹에 넘어간 사람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하와라도 회개했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와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하나님은 하와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먼저 뱀에게 책임을 묻는다. 인간에게만 책임을 물은 게 아니라 근원이 된 자를 먼저 처벌한다. 인간에게 납득될만한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신 것이다. 하나님은 분노하지 않고 그 죄에 합당한 벌을 내렸다. 문제가 있을 때 문제에 합당한 대응을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반응 이상의 감정을 실을 때 나쁜 일이 된다.)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다. 인간은 유혹을 뿌리치려 하나 결국 유혹에 물리게 된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인간은 죄를 싫어하여 뿌리치면서도 정작 유혹에 물리고 만다. 죄와 인간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한다는 것으로 보아 에덴 동산은 두 사람만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애초의 하나님 계획 안에 후손의 생산이 계획되었던 것이다. 대신 고통 없는 출산을 계획하셨던 것이다. 즉 고통 없는 축복을 주시려 했다. 하지만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 이제는 모든 축복의 근원에 고통이 따르게 한 것이다. 가장 큰 축복인 자녀의 축복에조차 고통을 더한 것이다. 인간이 나머지 축복을 얻기 위해서도 이제는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하신 것이다. 둘째, 영어 성경의 해석을 눈여겨 봐야 한다. “And you will desire to control your husband, but he will rule over you 네가 너의 남편을 조종하고자 애쓸 것이나 그는 너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무서운 문장이다. 원래 아담과 하와는 서로 살과 뼈를 나눈 존재였다. 하지만 죄로 인하여 둘은 대립적인 관계이며 대결적인 관계가 된다. 이제 인간은 근원적으로 부부간의 갈등을 갖게 된다. 아내는 남편을 조종하려고 할 것이지만 남편은 아내의 그런 열망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통치하려고 하는 관계라니. 둘은 필연적인 갈등의 관계이다. 에덴의 회복,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이 관계는 회복될 수가 없다. 하나님이 그렇게 벌을 주었기 때문이다.)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하나님은 아담이 아내의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강조한다. 그것은 죄의 원인이 어디에 있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하나님이 준 피조물로 인해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죄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하는 것이다. 불순종의 순간 어떤 이유도 용납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아담이 먹은 열매로 인해 그 열매를 소출한 땅까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다. 인간만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먹고살 수 있는 근거와 터전까지 함께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불순종의 결과는 매우 치명적이다. 하나님을 떠난 순간 우리가 사는 땅은 더 이상 축복의 땅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만 진정한 축복의 땅이다.)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인간은 흙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이 없는 한은 흙으로 간다는 것이다. 흙으로 간다는 것은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이며 구원없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본래 흙이었으나 하나님이 의미있는 존재로 바꾸어주셨으며 예수님을 믿는 순간 흙이 아닌 생명을 얻는다.)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되었다. 조상이 되었다. 따라서 강씨 집안에 강씨가 태어나듯 죄인의 집안에 죄인이 태어난다. 어머니가 하와이므로 인간은 원죄를 갖는다.)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직접 내려와서 옷을 지어 입히심. 이것은 십자가를 상징하기도 하며 죄를 짓는다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시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여기에도 드러난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을 판별하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 판별하는 능력이 하나님 만큼 안다는 것이다. 인간은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하나님만큼 판별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아예 선과 악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결정적으로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막아 나섰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인간이 마음대로 하게 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생명 나무는 곧 예수그리스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막은 것은 생명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미 불순종한 존재와 함께 산다는 건 그들과 하나님이 동급이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동급이 되면 하나님이 그러하듯 인간도 영생한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권위를 지킨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들을 내 쫓는 것은 하나님과의 질서 속에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으로 일종의 축복이다. 만일 내쫓지 않으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질서가 무너진다. 하나님은 질서를 지키면서 인간을 구원하실 길을 마련한 것이다. 땅은 이미 저주를 받았다. 저주 받은 땅을 갈아서 더 선한 것으로 바꾸어야 했다. 노동은 그래서 신성하다. 저주 받은 것을 축복의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노동이다.)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생명을 인간의 의지로 좌우할 수 없도록 막으셨다. 생명의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