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11장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10장에서 언어에 따라 나라가 달랐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언어가 하나라는 것은 바벨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 지역 사람들이 연합하여 살았음을 나타낸다.)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역청, 즉 방수재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시 물로 벌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믿지 못한 것이다. 물이 들어올까 봐 방수제를 준비함으로써 하나님이 한 약속이 잘못 된 것 아닐까를 의심한다. 바벨의 건축은 불신앙의 상징이다.)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물에 잠기지 않을 만큼 높게 가자는 것이다. 노아와의 언약을 이들은 믿지 않고 있다. 만일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그 진노를 피하겠다는 뜻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능력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며 판단 착오다. 또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한다. 건물을 지은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한다. 인간을 과시하는 순간, 즉 인간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은 곧 욕망을 상징한다. 그 욕망에 불타는 순간 인간의 파멸은 보증된 것이다. 바벨은 불신과 교만과 불순종의 탑이다. 내가 수도 없이 장벽을 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 또 하나님에게 닿자고 하는 교만의 탑이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세상에 우리를 흩었는데 흩어지지 않겠노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불순종의 탑이다. 나에게 있는 불신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 보다는 반드시 무언가를 내가 계획하려 한다는 점이다.)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하나님은 하늘에도 계시지만 이처럼 친히 내려와서 인간의 상황을 살피기도 하신다. 특히 아담의 때에 그러했듯이 무언가 특이 상황이 벌어졌을 때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려와서 보시고 들으시고 판단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조금의 오류도 범하지 않으려는 뜻이며 인간에 대해 더욱 세심한 관심을 보여주시는 예다.)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인간이 모이면 하나님을 거역한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연합하면 하나님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을 하곤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흩으러놓으시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모든 일은 필연적으로 망한다. 하나님이 그러한 구조를 만들어놓으신 것이다. 언어를 흩으신다. 그것은 각 사람의 마음을 흩어버린다는 뜻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동업을 하나 결국 욕심에 의해 깨진다. 하나님이 언어를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그렇지가 않다. 만일 교회 일에서 분열이 생기면 그 일이 인간의 언어로 하는 건지 하나님의 언어로 하는 건지 생각해 봐야 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여기도 나타나신다. 사탄의 역사로 이뤄지는 일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직접 방해를 하신다. 서로의 마음을 갈라지게 하는 것이다. 같은 한국말을 써도 생각이 통하지 않으면 언어가 혼잡해진 것이다.)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하지 않은 것은 노아와의 언약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흩어지게했을 뿐이다. 여기서는 바벨탑을 ‘도시’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바벨탑은 특정 건물일 수도 있으나 도시일 수도 있다. 도시는 시골과 달리 부가 축적된 곳이다. 부가 축적되지 않으면 건축을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인간이 부를 축적하면서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고자 한 그곳이 바로 바벨인 것이다.)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언어를 다르게 한다는 건 생각을 다르게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실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가진 언어를 쓰고 있다. 하나님은 물리적으로 도시를 파괴하지 않았다. 단지 언어만 혼잡하게 한 것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어로 통일될 때만 온전한 도시가 건설된다. 각자의 언어를 가진 순간 불완전한 도시만 존재할 뿐이다. 하나님은 내 곁에서 나를 관찰하시고 내 삶의 이유가 욕망 때문인지 하나님 때문인지를 보신다. 인간은 욕망의 도시를 짓는다. 내 삶에서 인간과 연합하여 건설하는 바벨탑은 무엇인가? 또 바벨탑이 아닌 하나님의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도시를 짓자. 내 가정의 예배자 됨과 훈련 과정, 내가 헌신하려는 것과 내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
셈의 족보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셈이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덮어준 것이 아무리 많아도 98세였다. 함은 백세가 넘었다는 말이다. 백세 넘은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았다고 해서 징벌을 받은 것이 가혹하게 보인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백세가 넘은 인생을 살고도 함이 사리 분별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다는 점에서 인간은 참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족보를 밝히는 것이 예수님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어떤 자들인지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과 가까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무튼 아브람은 셈의 후손이다.)
데라의 족보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자식을 주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일 때가 있는데 바로 아브람의 경우다. 따라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가나안에 가고자 한 이후 후일 그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이 하나님께는 아주 짧은 시간일 수 있다. 인간의 판단이 어떠하든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에 허락하신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