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창세기

창세기 20장

강 영 길 2013. 12. 4. 09:21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20장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아브라함은 12장에서 이미 한 차례 동일한 사건을 만들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책망하지 않고 애굽 왕을 벌했다. 그때의 경험으로 충분한 반성을 했을 것 같지만 아브라함은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고 있다. 인간은 같은 잘못을 반복적으로 저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약과 축복의 통로인 아브라함을 매우 편애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더 아끼고 위한다.)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사라도 적극적으로 이 속임수에 동참했다. 그런 부부에게 하나님이 경고를 하는 게 아니라 아비멜렉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우리의 욕망을 누르고 바로 순종해야 한다. 만일 아비멜렉이 눈 앞에 있는 여인을 바로 탐했다면 아비멜렉은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견물생심, 이처럼 인내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18장에서 사라는 이미 임신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늙은 여인을 일국의 왕이 데려 갔다는 데서 두 가지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첫째는 사라의 미모나 지성이다. 사라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일국의 왕이 젊은 여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를 아내로 맞으려 했을까. 아마도 사라는 매우 아름다웠거나 지혜가 그 지방에 널리 알려졌거나 둘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둘째는 아비멜렉의 태도다. 나이가 있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라를 데려갔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을 보는 미적 기준이 높았을 것이다. 나이를 따지기 보다는 그 사람 자체를 봤을 수 있다. 왕이 노년의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는 것을 보면 아비멜렉은 아마도 품격 있는 왕이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이 금지한 것을 곧바로 순종할 만큼 자신을 잘 다스리고 있다. 아비멜렉은 여러모로 지혜의 왕이었던 것이다.)

8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인간이 갖는 두려움은 중한 범죄의 원인이 된다. 인가에게 최대의 약점은 두려움이다.)

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아브라함이 사라를 동생이라고 한 것조차 하나님은 축복의 통로로 삼았다. 실제로 사라가 누이라고 하고 다른 남자에게 갔을 때마다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의 생업을 늘려주시고 삶의 터전을 공식화시키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매우 당황스러운 방법을 통해서도 축복을 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상상하고 논리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15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인간적으로 볼 때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심하게 책망할 수 있다. 하지만 아비멜렉은 오히려 자신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한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관용을 베풀고 있다. 이로 인해 자신도 또한 축복을 받는다. 만일 그가 관대하지 못했고 과거와 쓴 뿌리에 집착하는 인물이었다면 아브라함과 그 자신까지 모두 큰 상처를 입었을 수 있다. 관대하며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상대의 실수를 용서할 줄 아는 마음이 곧 축복의 통로가 된다.)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아비멜렉이 사라를 만난 순간, 비록 실제로 관계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상황을 설정한 자체로 벌을 주셨다. 우리가 의도를 갖고 있거나 범죄의 환경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축복을 거둬들이신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가장 큰 축복을 주도록 중보기도 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거짓말로 오히려 이득을 얻었고 거짓말 하고도 아비멜렉을 축복했다. 그런 결과에 대한 선택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이다. 따라서 내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방법을 인정하고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 아비멜렉같은 지혜를 구하고 아브라함같은 은혜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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