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창세기

창세기 19장

강 영 길 2013. 12. 4. 09:21

19장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우리가 하나님을 알아보고 구원해 달라고 청하더라도 하나님이 응하지 않으면 구원은 없다. 하나님이 구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때만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 만일 롯이 청했을 때 그냥 지나가 버렸다면 롯도 함께 죽었을 것이다.)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롯도 하나님의 사자를 알아보고 대접을 하고 있다. 영안을 뜨고 있으면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식별하는 분별력이 생긴다.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고서도 알아보지 못하면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다. 천사들은 뒤에 일어날 사건으로부터 롯을 보호하고 싶어서 길에서 자려고 했을 것이다.)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움직이면 하나님의 사람만이 알아보는 게 아니라 악의 무리들이 더 빨리 알아본다. 하나님의 사람은 악의 무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들과 다른 사람은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사탄이 예수님을 가장 빨리 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롯은 하나님의 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아끼는 딸을 내보내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가족까지도 희생시킬 각오가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아픔을 요구하는 분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요구한 게 아니라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해하려 했기에 생긴 일이다. 천사들은 애초에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이 집에 머무르지 않으려 한 것이다. 롯은 눈에 보이는 인간의 무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소수인 하나님의 사자를 보호하려 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의존할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무리들은 롯이 외지인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외지인은 자기 주장을 하면 안 된다는 선입관을 보이고 있다. 무엇이건 자기가 더 권리가 있다고 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권리포기는 선을 이루는 지름길이다.)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롯을 악한 무리들에게서 보호하고 있다. 15절에서 보면 롯에게는 자녀가 두 딸밖에 없었다. 그 딸이 얼마나 사랑스러웠을지는 명약관화다. 그런 딸을 숱한 남자들에게 짓밟히도록 내주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딸까지 희생시킬 각오를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악한 무리들의 눈을 멀게 하신다.)

롯이 소돔을 떠나다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13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하나님은 단지 보호만 하는 게 아니라 믿음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아예 악을 뿌리째 뽑아버리기도 한다. 하평케하시는 하나님이지만 악을 뿌리째 뽑는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사위들에게는 영적 분별력이 없었다. 소돔처럼 거대하고 발달된 도시가 단번에 무너질 거라고 사위들은 상상하지 못했다. 노아의 홍수와 마찬가지 사건이다. 하나님의 사건이 일어난다고 할 때 농담으로 여기거나 가볍게 여기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예민하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게 영적 능력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자들과 롯의 차이는 현실감에 있다. 롯은 현실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했고 그들을 섬겼으며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있었다. 그 가운데서 영적인 목소리를 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예언한다는 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무시하면서 영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섬김도 봉사도 없고 오직 예언만 하려고 하는 데 영적인 문제가 생긴다.)

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천사들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롯은 지체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이 가진 것들과 지금까지 살아온 현실을 버리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우리도 결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천사들은 직접 손을 끌고 나간다. 하나님은 우리를 권면하여 스스로 걸어나오게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우리가 망설일 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강권적으로 끌고 가실 때가 있다. 롯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끌고 가신 것이다. 롯이 미적댄 것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선택의 미련이 남아서라기보다는 시기의 문제를 결단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시기를 선택하신 것이다. 그래서 직접 손목을 끌고 나간 것이다. 길을 막으실 때가 있는가 하면 이처럼 직접 인도하실 때도 있다. 우리가 온전히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 손목을 직접 이끌고 나가실 것이다. 아니 더 명확히는 하나님이 선택하시기만 하면 끌고 가신다.)

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이제 하나님은 이들을 살아날 수 있는 영역까지 데려왔다. 구원의 영역으로 인도하셨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존중하신다. 사망의 영역 밖으로 데려왔으니 이제는 스스로 가되 내 말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구원 받은 후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나님은 멸망하지 않을 조건을 분명히 제시하셨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 늘 금기를 제시하시고 우리의 순종여부를 보신다. 순종 여부를 보시는 게 아니라 순종 여부가 곧 삶과 죽음을 가늠하는 가늠자가 된다.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라는 것은 인간의 소욕에 눈을 돌리지 말라는 것이다. 롯이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이유가 안주했던 현실 때문이었으므로 하나님은 안주한 현실을 잊으라는 것이다. 만일 속히 결단했다면 하나님은 이런 요구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중심을 모두 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약점을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그 약점이 되는 부분에서 가장 강한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18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19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롯은 비록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했으나 아직도 인간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믿음의 반대는 두려움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순간이다.)

20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롯은 두려움으로 인해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선택한다. 그곳은 가깝고 안전해 보이는 곳이다. 내가 선택하는 것도 늘 가깝고 안전한 곳을 원한다. 하나님은 모험으로 살기를 원하나 인간은 안일로 살기를 원한다.) 

 

21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소알은 징계의 대상이었다. 그곳에 의인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롯 하나가 의인이라고 해서 도시 전체를 멸하지 않겠다고 한다. 단 한 명의 의인이 도시 전체를 살릴 수 있다. 나 하나의 변화가 내 주변 세계를 바꿀 수 있다.)

22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하나님의 사자들은 롯의 나약함을 책망하지 않는다. 사자가 새끼들을 벼랑에서 떨어뜨려 강하게 키운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자새끼처럼 키우는 게 아니다. 나약한 롯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그리고 롯이 완전히 도망갈 때까지 하나님은 아무 일도 안 하겠다고 하신다. 나약한 자의 소원을 하나님은 결코 무시하지 않고 책망하지도 않는다. 왜 그렇게 약해 빠졌냐고 호통 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그냥 기다리신다. 그동안 소돔에서는 악인 한두 명이 눈치를 채고 도망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멸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빗나간다. 설령 하나님의 계획이 빗나가는 위험이 있을지라도-당신의 계획이 뒤틀리면 그 절대성에 흠이 간다. 절대성에 흠이 가는 것은 하나님으로서는 완전성을 해하는 일이므로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살리기 위해 당신의 계획과 실행을 미루고 계신다. 그만큼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갖고 계신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다

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는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첫째는 불순종이 가장 큰 문제다. 둘째는 자신이 누렸던 과거를 돌아보면 안 된다. 아무리 하나님이 기회를 주어도 사람의 의지가 약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 롯의 아내는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소금기둥이 되었다. 나의 과거, 탐욕과 타락으로 점철된 과거를 돌아보는 순간 나의 구원은 무효가 된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땅, 앞만 보고 나가야 한다. 하나님이 롯의 아내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으나 그의 의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말았다. 그것은 선악과 사건과 같은 자유의지의 문제다. 셋째,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인간의 모습을 구경거리로 삼아서도 안 된다. 우리는 때로 남의 아픔을 은근한 즐거움으로 볼 때가 있다. 하나님이 멸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도 똑 같은 하나님의 자녀다. 자신의 자식을 멸망시키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런 자녀들의 멸망을 택함받은 자들이 우월감에 빠진 눈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당신의 모습만을 인간이 누리길 원하신다. 한데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갈 때만이 온전한 모습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믿음의 조상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나님은 한 집안의 믿음의 뿌리를 보고 그 후손들까지 지켜주신다. 후손만이 아니라 그 이웃들까지 구원을 받았다. 그런 역사는 다윗에게서도 나타난다. 내가 믿음의 뿌리가 깊으면 내 후손들까지 축복을 받는다.)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조상

30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롯이 얼마나 두려움을 가진 존재인지를 다시 확인하게 한다. 하나님이 처음에 산에 가라고 할 때도 두려움 때문에 못 가더니 이번엔 또 두려움 때문에 산으로 간다. 결과적으로 산으로 간 건 매일반이나 하나님이 원할 때 가지 않고 두려움 때문에 갔을 때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하나님이 소알에 가기까지 전적으로 기다려줄 만큼 신실하심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도망쳐서 굴로 들어간다. 그 자체로 불순종이다. 하나님이 누리라고 준 것을 누리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누리라고 준 것을 누리지 못한다. 인간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이 준 것을 누릴 수가 없다. 롯은 아브라함과 땅을 나눌 때도 롯은 먼저 땅을 차지했다. 그럴 만큼 욕심이 큰 인물이다. 욕심이 많으면 가진 것을 지키고자 하여 두려움도 많아진다. 또한 피해망상도 있다. 롯은 피해망상이 있다. 그러나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롯은 두 딸을 내줄 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했다.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점을 높게 사서 그를 살리셨다.)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이들에게 세상은 아버지와의 동굴일 뿐이다. 동굴 속에 산다는 것은 자기 안에 갇혀 지낸다는 말이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살면 반드시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만일 세상에 나가서 살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다스리라고 했지 세상을 피하라고 하지 않았다. 세상을 피하고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영적인 문제가 일어난다. 여기서는 근친상간이라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일어난다.)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버지의 두려움과 딸의 두려움이 합해져서 엄청난 역효과를 내고 있다. 두려움이 뭉치면 믿음이 뭉칠 때와 반대 효과가 나타난다.)

34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중요한 원인은 술에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은 세상을 등지고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대를 잇고 싶은 욕망은 있으나 그 욕망의 형태가 병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자기들의 세계에만 갇혀 있으면 자기들의 세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그것은 죄악의 씨앗이다. 따라서 사람은 동굴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35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하나님을 위해 바치려고 했던 두 딸은 결국 자신의 두려움의 씨앗을 잉태한 여인들이 되고 만다. 두려움은 자신에게서 그치지 않고 그 후손들을 생산한다. 그런데 그 후손들은 성경의 역사에서 늘 이스라엘 사람의 적대 세력이 된다. 인간의 두려움은 왜곡된 동굴 생활을 낳았고 왜곡된 생활은 죄의 씨앗을 잉태하여 죄는 종족을 유지하여 후손을 만들고 그 후손은 늘 선에 대항하는 자로 남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동굴 속에 거할 때,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한 가지 기억할 점은 롯이 처음부터 택한 땅이 소돔 곁이어서 죄악의 곁으로 갔다는 것이다. 인간의 물질이 풍요한 죄악의 곁으로 가면 반드시 그 죄악은 전염이 되고 마침내 그 죄악의 결과를 낳게 되어있다.)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하나님은 왜 이런 상황에서 생명을 줬을까. 이미 롯은 불순종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모두 막으시진 않는다. 하나님은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도 보고 계셨고 아담이 죄를 지을 때도 보고 계셨다. 하나님의 기다리심이다.)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롯이 자신과 딸들이 성관계한 것을 당장은 몰랐다 치더라도 나중에 임신한 것을 보고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가 없는 동굴에서 자녀를 임신했다면 당연히 자신의 씨앗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 롯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당장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 씨앗에 대한 죄를 고백하며 무언가 하나님의 조치를 바랐어야 한다. 하지만 성경에는 롯이 그 사실을 회개했단 말이 없다. 이로보아 롯은 이후 두 딸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다. 하나님은 죄를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죄를 회개할 때 그 죄를 용서하신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않거나 죄를 반복할 때 하나님은 그 후손에게 축복을 내리지 않으신다. 롯의 후손은 그래서 축복의 영역에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또 롯이 소돔에 살 때 두 천사를 살리기 위해 두 딸을 내 주려고 했다. 그때 롯은 담대했다. 하나님을 향한 용기가 있을 때 두 딸은 축복의 통로였다. 두 딸을 내주려 했던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천사가 롯의 가문을 구원했다. 하지만 롯이 두려움에 빠지자 두 딸이 죄의 어머니가 된다. 롯은 두 딸이라는 똑같은 대상을 통해 축복을 받기도 하지만 곧 그것이 죄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용기를 가졌느냐 두려움을 가졌느냐에 인간이 너무나 사랑하는 것을 통해 전혀 다른 결과를 얻기도 한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바로 양날의 칼이 된다. 또한 그것은 양날의 칼인 만큼 매우 순식간에 축복이 죄로 변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축복과 죄를 동시에 가져온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롯은 하나님이 소알이라는 안전지대를 허락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두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안전지대를 피해 살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지 않은 결과다.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도 인간의 두려움에 의해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죄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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