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창세기

창세기 22장

강 영 길 2013. 12. 5. 19:31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시다

22장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이 부를 때 내가 여기 있다고 답했던 아브라함이 정작 하나님이 내용을 명령하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명령이 그만큼 아브라함의 마음에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명령은 들었지만 그 명령은 흔쾌히 답을 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침묵으로 답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아브라함이 얼마나 내키지 않았는지를 보여준다. 차마 거부할 수 없지만 결코 내키지 않은 명령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갈등을 읽을 수 있다. 갈등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하는 대신 아브라함은 행동으로 순종을 보여주고 있다.)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은 제사를 하러 무려 사흘이나 걸었다. 하나님이 굳이 그 먼 곳을 택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아브라함이 걸어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이 있었을까? 그리고 아들과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까? 아마도 인간적인 갈등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중간에 얼마든지 돌아설 기회가 있었다. 그 순종을 포기할 인간적인 생각이 들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순종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했다고 했는데, 바로 이러한 순종의 과정 전체를 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하나님이 명하셨지만 차마 종들에게 자기 자식을 죽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종들에게 흠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아들을 죽일 때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그러한 모습도 또한 종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아픔과 슬픔을 모두 혼자 감당하고 싶어서 종들을 멀리 떼어놓은 것이다.)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나귀에게 짐을 지우지도 않고 이삭이 직접 짐을 지고 간다. 만일 나귀에 태우고 간다면 아들 대신 나귀를 죽이고 싶었을 수 있다.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아브라함은 아들에게 직접 짐을 지게 한다. 이 모습은 후일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 갈 때에 직접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자신 스스로 희생양이 되면서 십자가를 지고 갔듯이 이삭도 희생양이 되기 위해 자기 짐을 지고 올라간다. 이삭이 번제 나무를 가져갔다는 것은 이삭의 힘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뜻한다. 아버지는 노년이고 아들은 청년이 되었다. 사람 하나 태울 나무가 얼마나 많은 양인지 능히 짐작이 간다. 그 짐을 이삭이 진 것이다.)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내 아들아’라고 대답한다. 아버지가 되어보면 ‘아들’이라고 부를 때의 마음이 이해된다. 그것은 사랑으로 똘똘 뭉친 단어다. 이름을 부를 때와 아들이라고 부를 때의 아비의 마음이 다르다. 아브라함이 이 순간에 아들이라고 부른 것은 그만큼 이삭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깊었음을 나타낸다. 백세에 얻은 아들이니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에게 네가 곧 희생양이라고 차마 말하지 못한다. 그냥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거라고 말한 것은 즉답을 피한 것도 되지만 모든 것을 잃게 될 자신에 대한 위로도 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도 된다. 어차피 없던 아들을 선물로 주셨으니 그 것을 가져가시더라도 하나님께 원망이 없다는 마음이 깔려 있다.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은 순종이다. 사람이 보기에 미친 것 같은 순종을 할 때 믿음이 커지고 하나님의 축복도 커진다.)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이삭의 순종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삭은 이미 청년이 되었고 백세가 넘은 아버지보다 힘이 강했을 텐데 결박당해주고 있다. 10절에서는 칼로 아들을 잡으려고 해도 반항했다는 말이 없다. 제단 위에 올려 놓을 힘이 없는 아브라함, 그래서 이삭은 스스로 제단에 올라간다. 이삭이 얼마나 훌륭한 아들이었나 보게 된다.)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아브라함은 끝내 이삭에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말없이 모든 것을 결행하고 있다. 이별의 말도 하지 않고 상황 설명도 하지 않는다. 단지 묵묵히 실행을 하고 있다. 극단적인 하나님의 명령,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저런 인간적인 마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다. 믿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행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한 마디 답이 없던 아브라함이 이번에는 내가 여기 있다고 얼른 답한다. 천사의 부름이 참으로 반가웠을 것이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하나님의 사자는 아브라함에게 그 양을 잡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스스로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린다. 아브라함은 그 무엇으로든지 하나님께 제사할 준비가 되어있던 자다. 예배는 자발적인 것이다. 그 양 한 마리를 자기 소유로 만들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제사로 드린다.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요구를 했던 하나님이 이번에는 아들을 죽이지 말라고 하자, 그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아브라함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한 사람이다.)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순종만 한다면.)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하나님이 하나님을 두고 맹세한다는 말을 사용한 예는 극히 드물다. 아브라함은 이때 하나님을 감동시켰고 하나님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을 두고 맹세하고 있다.)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하나님은 거래하는 분이 아니다. 원래 아브라함을 축복하겠다고 이미 언약하셨다. 그 언약을 한 번 더 다짐했으며 그 언약의 강도를 더 높이신 것이다.)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함은 물론 그 자손에게 축복할 것을 언약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자는 세상의 축복의 통로가 된다. 혼자 복을 받는 게 아니라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을 통해 축복을 받는다. 사람은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산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것을 혼자 갖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주며 산다. 따라서 축복의 통로가 된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는 축복의 원리다.)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나홀의 후예

20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21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삭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다고 하고선 갑자기 나홀의 자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를 점찍어두신것이다. 그래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부모인 나홀의 자손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보다 앞서 내 일을 계획하고 내 삶을 꿈꾸는 분이다.)

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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