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복음서/마가복음

마가복음 11장

강 영 길 2014. 10. 7. 11:15

11장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의 말씀은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되고 예외없이 실현된다.)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군중들 중 어떤 이는 겉옷을 어떤 이는 벤 나뭇가지를 펴고 있다. 예수님이 오시는 길에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손수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예수님을 맞는 믿는 자의 모습이어야 한다.)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여태 조용히 남몰래 다니기를 원했던 예수님이 이제는 공공연히 찬송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들어섰다. 전쟁으로 치자면 살기등등한 적진에 들어가면서 요란스레 들어간 것이다. 이처럼 엉뚱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죽을 곳으로 가면서 숨어들어도 두려울 판에 아예 공공연한 소란을 피우며 들어간다. 예수님은 이제 모든 역사를 이룰 각오를 하고 오신 것이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무화과의 때가 아니므로 열매 맺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무슨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 이것도 또한 예수님의 비유다. 적절한 때란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그 때가 바로 적절한 때다. 그 때를 위해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게 이미 미움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인들에게까지 미움받을 행동을 하고 있다. 예수님은 인간의 누군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진리의 편에 섰을 뿐이다. 성전에 들어가는 자들의 마음이 ‘아무나’에 해당해선 안 된다. 성전에 들어올 때는 무화과나무처럼 어느 때든지 준비된 마음으로 와야 한다.)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이들은 강도가 아니다. 그러나 강도라고 한 이유는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성전에 모였기 때문이다. 정치적이나 경제적인 이익 혹은 명예의 이익을 얻기 위해 교회를 찾는 모든 이가 강도에 해당한다. 이런 이익 추구를 안 하는 곳이 아니라 그것이 기도와 예배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 문제다. 기도하러 모이고 예배하러 모이는 것이 교회의 가장 우선되는 목적이다. 그 목적이 바뀌는 순간 누구라도 강도가 된다.

뿐만 아니라 성전에 들어오는 자의 마음의 중심이 어디 있는지도 중요하다. 그 중심이 하나님이 아닐 때 곧 장사치들과 같은 존재가 된다.

주목할 점은 예수님이 성전을 예배하는 곳이라고 하지 않고 기도하는 곳이라고 했다. 각자가 성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자신도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두려움은 죄를 낫는다. 인간이 우상을 만드는 것도 사실은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들, 소유한 것들을 의지할 때 우상이 된다. 장사를 허락한 자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곧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장본인들이다.)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믿는 이의 삶의 태도가 ‘아무나’에 해당하지 않아야겠다. 그 ‘아무나’가 곧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다. 교회에서 바른 삶을 주장하고 사회적 불의에 대해 침묵하고 눈감으며 악에 동조하고 타협하는 삶을 살지 말아야겠다. 침묵하고 동조하는 것이 마치 제대로 사는 것인 양 나를 위로하며 살지 말아야겠다. 비록 메아리조차 없을지라도 침묵하며 살지는 말기로 한다.)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님이 의심 없는 기도를 강조하고 용서를 강조하기 위한 전제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을 먼저 하고 있다. 무화과 나무처럼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된다. 하나님을 믿으면 믿음의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용서도 한다. 베드로가 무화과나무 마른 것에 대해 질문하자 예수님은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께 집중하라는 것이다.)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이 다 이뤄지는 전제조건은 믿음이다. 그런데 인간은 온전하게 믿질 않는다. 본인이 믿고 싶은 만큼만 믿는다. 그래서 이런 저런 방책들을 세운다. 때로는 그 믿음이 자신에 대한 믿음인 경우도 있다. 정말로 하나님이 이루실 줄 믿는다면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려야 한다. 또한 이미 받은 응답에 대하여 더 기도를 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이 이미 응답하셨기 때문이다.)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간과 거래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내가 이웃을 용서할 때 하나님이 나를 용서한다는 것은 최소의 법칙으로 봐야 한다. 용서할지 안 할지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나마도 용서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영생의 언약이 없어지는 셈이다. 따라서 반드시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용서가 안 될 때는 아무 이유 없이 주먹으로 맞고 얼굴에 침까지 맞은 예수님을 생각해야 한다. 아니, 이유가 있는 바 나를 위해 죽어서 나를 살리려고 그렇게 되신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래도 용서가 안 되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 사건이 실제 내 앞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니 목격했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죄 때문에 내 앞에서 죽은 사람을 봤다면 어떻게 내가 다시 죄를 지을 수 있겠는가? 인간은 그러나 순간순간 그것들을 잊어버린다. 용서하기 위하여 내가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마치 난 이미 미워하는 게 없는 것처럼 가장한다. 난 어떤 사람에게 사실 자체에 대해 따질 뿐이지 미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한다.)

26 (없음)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예수님은 아예 죽음을 작정한 분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처럼 버젓이 돌아다닐 수가 없다. 나에게 사명이 있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그것을 행해야 한다. 그렇게 버젓이 행해야 그 사명의 하나라도 이룰 수 있다.)

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이들은 진실을 대답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판단으로 진실을 규정지으려 한다. 인간의 가장 큰 오류가 바로 이것이다.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식 속에 진실을 담아내려고 한다. 이들은 진실보다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고 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기에 도전하는데 이들은 사람들의 인기에 짓눌리고 있다. 이래서 진실 편에 서지 못한다. 모든 죄는 인간을 두려워하는 데서 출발한다.)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예수님이 하신 권위와 요한이 세례를 준 권위가 같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다. 그러나 그들이 그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굳이 진실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 것이다. 진실을 듣고 싶으면 먼저 진실해지라는 뜻이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는 말씀과 통하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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