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복음서/마가복음

마가복음 14장

강 영 길 2014. 10. 15. 22:22

14장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예수님을 잡으려 하는데 혹 민란이 날까 두려워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을 지지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사실이며 기득권자들은 하나님보다 인간의 눈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잡혀갈 때 그저 하나님 뜻대로 되겠지, 이렇게 쳐다보고만 있는 것은 허무주의에 가깝다. 인간이 나서지 않더라도 언젠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다고 생각할 거면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적극적으로 예수님 편이 되어 민란이라도 일으키려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한 절에 여러 이야기가 들어있다. 우선 예수님이 나병환자의 집에 있다. 그리고 식사를 하신다. 한 여자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께 붓는다. 첫째 예수님은 권력자의 집에 있지 않았다. 나병환자의 집에 있었다. 나병환자는 구약시대에 격리시켜야 하는 자이며 죄로 인해 저주를 받은 자다. 예수님이 찾아간 곳이 이런 곳이었으며 예수님을 환영한 곳도 이런 곳이었다. 권력자나 부자는 예수님을 거의 환영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공모했다. 그러나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은 예수님을 환영했고 예수님도 그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예수님이 단지 가난해서 찾아간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믿음이 있었다. 가난하다는 건 현실의 고통을 의미하는데 고통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킨 자들을 예수님은 위로하시기 원한다. 둘째 식사를 하셨다. 누가 감히 나병환자와 식사를 하겠는가? 혹시라도 전염이 될까봐 두려워서 안 먹을 것이다. 나병환자는 누군가 친한 척 하면 음식을 나눠준다고 한다. 얼굴에 고름 덩이가 있는 삶이 주는 음식을 먹을 배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상대가 음식을 거침없이 받아먹으면 그때는 절친한 친구가 된다고 한다. 예수님은 아예 그의 집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예수님을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여인은 옥합을 깨뜨려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드렸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드려야 한다.)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나병환자를 찾고 가난한 자를 위로하는 예수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여인을 꾸짖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의외의 반응을 한다. 가난한 자와 친구가 된다고 해서 가난한 자의 공경심까지 빼앗지는 않았다. 만일 넌 가난하므로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면 가난한 자들의 자존감은 극히 낮아질 것이다. 따라서 가난한 자들을 세워줄 때는 값비싼 것도 받으셨다.)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을 싫어해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마음을 높이 산 것이다.)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여인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마음을 그렇게 받아주었다. 예수님이기뻐하는 것을 드리는 내가 되어야 한다.)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내가 전심으로 예수님을 섬겼을 때 예수님은 그것을 잊지 않고 온 천하에 그 일을 알리신다. 여인의 행위가 예수님을 감동시켰듯이 내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일 한 가지로도 크게 기뻐하신다.)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 이뤄진다. 예수님은 어림잡아 말 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일을 다 내다보고 계신다. 그래서 일어날 일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물 한 양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고 두 양동이 가져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또 여러 명이 갈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말한 것은 틀림없는 예측을 한 것이다. 그가 어느 집으로 갈 줄도 알고 있으며 그 집에 객실과 다락방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17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배신자는 늘 가까이 있다. 모두를 의심하라는 말은 아니나 내가 가까이 하는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만이 아니라 물질이나 자동차 등이 될 수도 있다. 한 그릇에 손을 넣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척 하면서 실제론 배신을 하는 모습이 제대로 믿지 않는 자의 모습이다.)

 

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믿는 자 하나하나가 예수님을 팔 수 있다. 그렇게 팔 거면 차라리 살지 않는 게 낫다고 충고하신다.)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특정한 누구, 특히 가롯유다에게 음식을 안 주지 않았다. 그에게도 축복의 떡을 주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원수에게는 미치지 않는 게 아니라 원수에게도 동일한 사랑과 축복이 미친다.)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식사를 하고 있다. 죽음의 떡을 떼면서 축복하고 죽음의 잔을 마시면서 감사하신 예수님, 믿는 자가 갈 길은 결국 죽음의 길이다. 그 죽음은 자신을 죽임으로 인해 많은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감사와 축복의 대상은 바로 이것이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그 축복과 감사의 길에 동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누구나 이렇게 장담한다. 나는 절대 버리지 않으리라고. 그러나 그렇게 장담한 순간 그가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된다. 성경에서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갈 때 베드로는 근처를 서성이며 예수님의 동향을 살핀다. 그러나 베드로가 가장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으로 기록된다. 그 이유가 베드로가 장담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자리에서건 앞서 나서는 것은 그만한 열정이 있다는 말도 되나 실수할 가능성도 커지고 동시에 다른 이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도 커짐을 뜻한다.)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 놀람은 경탄이다. 여기서의 놀람은 탄식이다)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은 함께 중보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깨어 있으라고 했다.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면 함께 괴로워하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위로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었다. 다만 제자들이 정신을 차리기를 바랐을 뿐이다. 제자들의 정신이 흐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조차 인간은 쉬 지키지 못한다. 죽을 것 같은 예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조차 못한 것이다.)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것은 희생 제물이 안 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 과정이 인간으로서 겪을 최대의 고통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은 심히 고민해서 죽을 만큼 괴로워도 제자들은 자고 있다. 세상과 모든 것에 대한 고민은 예수님이 인간보다 더 큰 것이다. 예수님은 죽을 만큼 괴로운 일도 우리는 편히 자고 있고 예수님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도 우리는 죽을 만큼 괴로워한다. 괴로워하는 내용이 다른 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심히 책망하지 않았다. 다만 그 사실에 대해 안타까운 질문을 던진다.)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사람은 마음만 원하되 육신이 약해서 문제가 된다. 거의 모든 사람이 마음으로는 선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육신으로 실천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결국 실천하는 자만이 깨어있는 자임을 밝히고 있다.)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했다. 그것은 아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모세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질 않았다. 그런 엄청난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예수님은 조용히 하나님과 대화를 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즉각 대답하지 않으셨을까? 예수님과의 대화라면 언제라도 즉답이 가능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순간 하나님조차 깊은 고민을 했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얼마나 대답하기 힘들었으면 한 시간이 넘도록 답이 없고, 그나마 예수님이 잠시 자리를 뜰 기회까지 주었을까? 그만큼 하나님께도 쉬운 결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이 다시 한 번 왔다. 예수님은 아직도 하나님의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큰 고민을 하셨으며 사랑하는 아들의 기도에 대해 얼마나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셨다. 그리고 한 말이 이제는 자고 쉬라고 한다. 이제는 인간이 굳이 깨어있지 않아도 예수님이 모든 책임을 다 진다는 결단의 시간이다. 그리고 한 말이 죄인의 손에 팔린다고 했다. 그 긴 기도 끝에 나온 말이 겨우 그 두마디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물어보고 그 고민 끝에 답을 얻은 것이다. 때가 되었으며 죄인의 손에 팔려야 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것이다. 아니 혹은 하나님은 침묵으로 대신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미 결정 난 일이니 그대로 해야 한다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말을 했을지라도 이제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대화는 끝났다. 대화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결론이 났다는 말이다. 이제는 거칠 것 없이 일이 진행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이 온 것이다. 일의 결론을 내기 전에는 깨어있으라고 했으나 결론을 내었으니 이제는 쉬라고 한다. 하나님의 결정을 들은 후에는 얼마든지 쉴 때가 온다. 그 결정을 듣기 전에는 깨어있어야 한다.)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자고 쉬라고 한 예수님이 함께 가자고 한다. 그러니 자고 쉬라고 했던 말은 상징이요 비유다. 이제는 인간에게는 편안한 선택만 남았을 뿐이니 앞으로는 평안히 살아도 된다는 의미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니 자고 쉴 수 있다는 것이다.)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님을 잡은 자는 예수님의 제자와 제사장과 관리들과 장로들이다. 결국 교회의 가장 우두머리들이 예수님을 잡았다. 교회의 가장 우두머리들이 예수님을 가장 몰라본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교회의 우두머리들 중에 정치적인 사람들, 예수님보다 더 권력에 굴종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팔고 그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처형한다.)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바람을 자게하고 파도를 멈추게 하며 물 위를 걷는 분을 인간의 힘으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의 어리석음을 엿보게 된다. 예수님은 잡힌 것이 아니라 잡혀준 것이다. 예수님은 끌려간 것이 아니라 걸어간 것이며 스스로 죽음의 골짜기로 간 것이다. 그것은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행위다. 예수님 혼자 살고 싶었으면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예수님은 모두를 살리기 위해 자기를 적극적으로 버린 것이다.)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제자는 예수를 팔았고, 나머지는 예수를 버리지 않은 제자가 없다. 그게 제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제자들이 후일 모두 목숨을 바친다. 제자는 때로 실수도 하고 비겁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는 예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한 때다. 비록 예수님을 따라는 다녔고 수많은 이적을 보았으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그분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따라다녔다. 이게 제자의 모습이다. 우리는 늘 잘 알지도 못하고 따라다닌다. 또 따라다닌다 해서 결코 다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부활 사건 이후 제자들은 예수님을 참으로 안다. 그분이 왜 죽는지도 알고 왜 부활했는지도 안다. 그러면서 이들 모두가 성령의 불길에 사로잡힌다. 또 공동체로 살면서 하나가 된다.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는 온전한 성장을 못했던 그들이 예수님이 떠나면서 성장을 한다. 예수님과 떨어져 인간과 살면서, 인간 세계로 파송되었을 때 이들은 성장한다. 그렇게 하여 제자들은 거의 모두 순교한다. 도망쳤던 비겁한 그들이 모두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청년은 제자들보다 나았다. 끝까지 따라간 것이다. 그러나 그도 결국 잡힌다. 그러자 알몸으로 달아나 버린다. 아무것도 없이 예수님만 따르던 자도 결국은 예수님을 버린 것이다. 나는 오직 예수님만 알고 예수님 외에는 가진 것도 없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정작 고난이 닥치면 알몸조차 부끄러워하지 않고, 세상의 눈조차 의식하지 않으면서 도망쳐 버리는 게 인간이다.)

53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베드로는 그래도 완전히 도망가지 않고 멀찍이 앉아있다. 어쩌면 그는 심한 갈등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을까, 아니면 그냥 있을까, 예수님을 치는 자들을 가서 두들겨 줄까, 이런 고민을 했을지 모른다. 베드로는 분명히 서성이면서 깊이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따라주지 않음과 같이 사람들의 손가락질 앞에서 곧 무너지고 만다.)

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인류 역사상 지어진 모든 성전의 의미는 이제 사라지고 사흘만에 예수님이 부활한 그 순간 성전의 의미가 달라질 것을 뜻한다.)

59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분명한 사실에 대해 결코 거침이 없고 주저함 없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과의 겟세마네 대화에서 결론을 짓고 온 것이다. 그러니 일말의 주저가 있을 수 없다.)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침과 주먹질을 당하고 있는 예수님의 사랑, 그것에 비하면 오늘 사람들 사이에서 겪는 갈등이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님이 맞는 장면을 직접 코 앞에서 보고 있다면 그 분의 아픔 앞에서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66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누구의 종인가가 정말 중요하다. 예수님의 종은 예수님을 따르고 대제사장의 여종은 제사장을 따른다. 그 여종은 주인에게 충성을 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충성이 예수님의 길을 방해하는 충성이 된다. 그 여종은 결코 그렇게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악은 충성스런 자에 의해 범해진다. 그 여종은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의 생각에 합당한 그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를 엿볼 수 있다.)

67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베드로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기가 만일 거짓말이라면 저주를 당할 것이라는 맹세까지 한다. 단지 상황만 모면해도 되는 상황인데 그 거짓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하지 않아도 되는 맹세까지 한다. 그것이 거짓말의 속성이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 인간이다. 베드로는 결국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다.)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베드로는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뻔뻔하게 있지 않았다. 베드로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울었다. 울면서 회개했을 것이다. 제자되는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즉각적으로 인정하고 깨닫는데 있다. 실수가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세 번 부인을 했다. 요한은 이후 베드로가 크게 후회하고 회개했던 태도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이처럼 세 번 부인했다. 도망치지도 못하면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또 정작 질문을 받으면 진실을 부정하는 모습이 참으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게 또한 내 모습이다. 베드로가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 그곳에 아예 가지도 못했을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 베드로는 부인할 기회라도 있었으되 나는 아예 도망을 쳐버려서 부인할 기회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우는 베드로가 사실은 자신이 예수의 제자라고 나서야 하는 장면이다. 단지 눈물 흘리며 후회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때라도 나서야 했다. 그러나 베드로도 끝내 그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나서진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국 그를 들어 쓰셨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할 가장 적절한 때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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