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복음서/마가복음

마가복음 15장

강 영 길 2014. 10. 24. 23:17

15장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의 태도에는 특별한 선이 있다. 인간적인 고발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의 왕이냐고 묻는 말에는 당당히 대답을 한다. 그 대답은 죽음으로 갈 수 있는 대답이다. 다른 온갖 잡다한 고발에는 침묵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에만 대답을 하신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이런 모험적이고 도발적인 태도에 놀라고 있다. 자기 변호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바라바는 정치범이다. 그가 반란을 일으킨 혁명세력이니 그를 풀어주면 앞으로도 나라가 시끄러울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정치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인간들이 따라갈 수 없는 명성과 권위가 있었다. 이들이 마음에 갖고 있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움 때문에 바라바가 아닌 예수님을 처형하고자 한 것이다.)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빌라도는 여러 모로 예수님을 처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결단력 있는 행동이다.)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의 잘못은 무리에게 만족을 주려 한 점이다. 하나님께 만족을 준 게 아니라 무리가 만족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빌라도의 최대의 문제다. 빌라도도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넘겨주고 만다. 두려움을 쫓아내면 바른 눈으로 판단하게 된다.)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자색옷은 임금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시관은 왕관을 갈대는 권위를 나타내는 지팡이다. 예수님을 완전한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유대의 왕이라고 한 사람에게 왕대접을 하고 있다. 갈대와 가시관을 쓰게 하여 네가 왕인가를 묻고 너는 왕이 아니라 이처럼 버림받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놀린다고 해서 예수님의 정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놀림을 받아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어떤 대우를 받느냐보다 그 자체로 어떤 존재인가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사람들의 대우보다 우선한다.)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예수님은 주먹으로 맞고 뺨을 맞고 침을 맞고 채찍에 맞고 발로도 차였을 것이며 갖은 욕도 먹었다. 그 모든 것이 자진해서 한 것임이 중요하다. 어쩔 수 없이 했거나 힘이 없어서 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가능했기에 한 것이다. 예수님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육체적 고통보다 이들이 결국 저주의 잔을 마셔야 하는 것 때문에 안타까워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 (없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지나가는 자들조차 예수님을 모욕하고 있다. 구경꾼도 아니고 집행자도 아닌 자들까지 예수님을 모욕한다. 그 많은 추종자들은 이제 어디로 사라지고 오직 조롱자들만 남았다. 십자가란 그런 것이다. 조롱하는 자들과 미워하는 자들과 때리는 자들을 끌어안고 피를 흘리며 사랑하는 곳이 십자가다.)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반대로 자기를 구원하고 남을 구원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 예수님이 남을 구원하지 않고 자신만 구원했다면 그 분이 예수님일 수는 없다. 나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그 뜻을 예수님은 이룬 것이다. 나와 내 집단만의 이익을 위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증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증오를 먹고 살면서 행복하다고 말하지 말고 사랑한다고 왜곡하지도 말자. 너와 너희들의 이익을 위해 나와 내 집단의 이익을 기꺼이 버리는 것이 사랑이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죄인들조차 예수님을 욕했다. 사실 그 죄인이나 아래 있는 죄인이나 다 마찬가지다. 어떤 자는 십자가에 있고 어떤 자는 십자가에 못박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인간에게는 죄인과 권력자의 구분이 될 수 있으나 하나님에게는 똑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들 모두가 죄인이다. 예수님이 만일 이 상황에서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면 그 모든 일은 허사다. 따라서 예수님은 내려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안 내려오시고 묵묵히 그 모든 짐을 지셨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영원한 죽음에 이를 자들이다. 임박한 자기 죽음을 앞에 둔 채 예수님을 비웃는 그 모습이 바로 죄인인 인간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하려고 죽는데 인간은 죄를 위해 죽는다.)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이 크게 지른 소리가 과연 큰 소리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입에서 겨우 나와서 사람들에게도 잘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절규에 가까운 소리여서 듣는 자들이 다른 말로 오해하기도 한다. 예수님이 내질렀을 고통의 절규는 불쌍한 세상을 위한 절규이며 구원의 역사에 대한 감사의 절규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다. 시편 22편 1절을 노래한 것인데 이당시 유대인들은 한 절을 외우면 그 나머지를 통째로 외웠다고 한다. 따라서 시편 22편은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며 끝나는 노래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섭리를 찬양하는 노래라고 보는 것이 좋다. 예수님이 죽음의 고통을 맞아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한 절규다. 그렇기에 죄인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통을 달게 받지 않았으면 예수님과 인간의 차이가 없다.)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예수님이 하는 말을 잘못 듣고 그것으로 놀리는 사람이 있다. 세상이 예수님의 음성을 오해하여 예수님을 비난한다. 세상이 진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자기 귀를 탓하는 게 아니라 진리가 잘못 되었다고 말한다. 아니 세상이 그러한 게 아니라 믿는 내 자신이 그렇게 한다.)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세상은 예수님을 시험한다. 온갖 고통을 다 받고 자신들을 위해 죽어가는 예수님을 시험하고 조롱한다. 교회가 어떻게 하는지를 보자고 하는 병든 세상도 그렇다. 내가 죄를 지으면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자고 하는 내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은 자기 죄를 대신 진 예수님과 교회를 시험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세상이다. 그 세상의 일원이 바로 나다.)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님의 희생은 기존의 성전을 무너뜨린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성전을 무너뜨리고 사흘만에 다시 세우기 위함이다.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모든 권위적인 것이 무너지고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으며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이으셨다. 예수님은 유야무야 좋은 게 좋은 삶을 산 게 아니라 죽음의 고통을 통해 닫힌 것들을 하나 되게 하고 자유 없는 곳에 자유를 주신 것이다.)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십자가에서 탈출하여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백부장은 예수님이 숨지심을 보고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것은 대단한 발견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사실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한 자가 백부장이다. 살아서 기적을 일으키고 휘파람을 불며 적의 진지를 휘달리는 모습이 아니라 모든 짐을 지고 돌아가신 데서 예수님이 참 하나님의 아들임을 발견했다. 예수님이 탈출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인 데서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데서 증명된다.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 내가 죽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여인들의 믿음이 대단하다. 이 죽음의 상황에서도 먼 발치에서 그 죽음을 보고 있다. 어떻게든 예수님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예수님의 제자들 중 유일한 부자다. 하나님은 부자를 들어쓰실 때 이처럼 적절한 곳에 사용하신다. 그들의 돈이나 명예를 높이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 제자 중 가장 부자였다는 요셉으로 인해 예수님의 무덤이 만들어진다. 그는 성경의 다른 곳에 별 언급이 없으나 이곳에서 큰 역할을 한다. 이름이 있건 없건, 모두 그 인성과 특성이 달라도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한다.)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마태복음에서는 유대인들이 무덤을 단단히 막았다고 되어있다. 여기서는 요셉이 막았다. 그러나 누가 막았든지 둘 다 무덤을 단단히 막은 것은 사실이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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