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동행/묵상하는 하루

아름다운 말은 사랑에서 나온다(잠언 25장 11절)

강 영 길 2012. 2. 6. 22:41

내 모임 중 한 사람이 늘 가르치는 태도의 언어를 사용한다. 나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그러하다. 항상 타인의 문제 타인의 생각에 대해 지적하고 평가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의 말에 대거리를 하기가 겁나는 것이 그사람의 성격 때문이다. 한 마디 지적만 해도 자신을 공격했다고 한다. 자기의 뜻과 맞지 않거나 자기 의견과 다른 말을 하는 것 자체로 자기에 대한 공격이라고 하며 감정을 폭발시키니 아무도 그에게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에게 진실을 말하려면 공동체의 분위기가 망가질 것을 각오하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빙그레 웃어줄 뿐이다.

 

그런 그와 다른 한 사람, 나 이렇게 셋이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그가 오늘도 한동안 나의 이런 저런 면모에 대해 정죄에 가까운 판단을 했다.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그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 그러다가 그가 불쑥 이런 말을 한다.

"내가 그동안 이 모임에 마음을 안 두었는데 이제는 마음을 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 말을 한 배경은 자신이 이제 이 동료들을 불쌍히 여길 자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는 너무나 바쁜 사람인데 여기 있는 사람들까지 상대할 틈이 없었다는 태도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마음을 열어주겠다는, 자신이 은혜를 베풀겠다는 뜻 같았다. 실로 그는 사람들이 더이상 자기에게 반론을 제기하지 않음은 물론 자기가 아무리 말을 해도 그의 말을 제지하지 않기 때문에 신이 난 것이다. 이제야 말로 자기가 이 모임에서 거침없이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을 연 것이다. 물론 그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어쨌건 내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잘 되셨네요. 앞으로 그 많은 모임 중에서 우리 모임이 가장 소중한 모임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을 한다.

"그럴 일 절대 없네요. 이 모임은...."

이렇게 말을 한다. 내 옆에 앉은 사람도 빙그레 미소를 짓고 만다. 그의 말은 이 모임은 나에게 절대로 가장 중요한 모임이 될 리가 없다는 말이다. 나도 그가 꼭 그렇게 되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이 공동체를 사랑하고 함께 가자는 말이다. 내 말은 그가 마음을 풀고 우리와 완전히 한 가족이 되자는 덕담이다. 이럴 때 온유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말을 할까?

"네,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이렇게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럴 일 절대 없다고 하면 당신들과의 모임은 나에게 중요해질 리가 없다는 말이 되고 만다. 공동체의 일원들을 얼마나 낯뜨겁게 하는 말인지 모른다.

 

잠언 25장 11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격려의 말은 서로를 더 연합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힘이 된다. 서로의 금간 곳을 합해지게 하고 벌어진 곳을 가깝게 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낫다. 그것이 섬김의 자세다. 이 분은 늘 성령충만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앞장서서 듣고 누군가를 가르칠 자리에 자신이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분의 혀에는 늘 이렇게 칼이 들어있으니 그분의 기대와는 달리 그분에게서 그다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은쟁반에 금 사과가 되는 말은 격려의 말이요 칭찬의 말이요 벌어진 곳을 메우는 말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다짐한다. 위로하는 마음 없이 충고하지 말것이며 사랑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입을 다물자고. 그리고 그분을 위해 기도한다. 언젠가 우리 모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