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 두 절을 묵상하다가 문득 눈을 떠 밤 하늘의 별을 발견한 것 같았다.
많은 신앙인들이 고통과 고난이 축복의 전제 조건이라고 말을 한다. 실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는 것은 일면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상당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고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고난의 원인이 하나님을 위한 선한 의지에서 온 것인가? 아니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데서 온 것인가? 우선 하나님을 위한 선한 의지에서 온 고난이 아니라면 그 눈물은 의미 없는 눈물일 가능성이 많다.
최근 젊은이의 아픈 마음을 상담한 적이 있다. 이성과 헤어져서 견딜 수 없이 아파하는 젊은이를 보면서 저 친구가 하나님과 헤어져도 저렇게 아파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부모와 헤어져도 저렇게 아파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그의 고통이 매우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 상대를 사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존경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자기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할 수 있을 때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젊은이의 눈물은 성경에서 말하는 눈물과는 어딘가 다른 것 같았다.
대체 이 구절에서 말하는 눈물은 무엇일까? 내가 밤하늘의 별을 발견한 것은 바로 <씨>라는 단어 때문이다. 아무리 고통을 받고 눈물을 흘려도 씨를 뿌리지 않으면 열매는 없다. 미래를 위해 씨뿌리지 않는 고통은 단지 눈물을 소모하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뿐 더이상의 의미는 없다.
사람들이 고난을 통해 축복이 온다고 한 것은 어쩌면 자기 위안이기 쉽다. 고난을 받는다고 축복이 오진 않는다. 씨를 심으러 가기 위해 받는 고난에야 말로 열매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씨를 어떻게 뿌릴까? 가령 시집살이가 심해서 눈물로 밤을 지샌다고 해서 열매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고난 속에서도 사랑과 희생을 보일 때 열매가 있다. 사업이 망친다고 해서 열매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업을 망치는 계기가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희생과 열망 때문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확실하다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다.
누군가와 분쟁을 하며 고통을 받는다면 그 분쟁에서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단지 내가 기분 나쁜 것을 하나님이 보상해주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분쟁 속에서 내가 사랑의 씨앗을 심을 때만 열매가 있다. 내가 기분이 나빴고 마음이 아팠으니 하나님이 보상해 주실 거라는 것은 자기 만족과 위안일 뿐이다. 분쟁을 통해 내가 진정한 사랑을 베풀고, 또 그 분쟁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분쟁일 때만 열매가 생기고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 하나님의 위로는 씨를 심지 않는 자에게는 없다고 하면 너무 건방진 해석일까?
내 해석이 어떠하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씨를 뿌리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기쁨의 열매를 주심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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