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동행/묵상하는 하루

노아 방주가 천국이 되려면(창세기 7장 10-24)

강 영 길 2012. 2. 20. 16:20

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창세기 7장 10절에서 24절까지 말씀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도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너무 널리 알려져서 오히려 낯 선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만큼 이 이야기는 유명하다.

120세가 된 노아가 수도 없이 홍수가 날 것이라고 예언을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아무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직 노아의 가족만이 노아를 따라 배에 올랐다. 어쩌면 그의 가족 조차도 노아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배를 지었고 마침내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순간에 땅에 있던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나무에 매달리기도 하고 지붕에 올라서기도 하고 어떤 이는 헤엄을 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작은 배에 올라탔을 수도 있다. 배는 아니라도 나무를 타고 떠내려갔을 수 있다. 또 사람들은 그제서야 방주에 태워달라고 절규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아무도 그들을 구원할 수 없는 시점이 되었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울부짖던 사람도 결국 물에 잠겼고 떠가는 나무나 지붕에 매달렸던 사람들은 마침내 저체온증과 배고픔으로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죽은 자들의 처절한 고통은 생각만 해도 진저리쳐진다. 어떤 사람은 배가 고파진 짐승들에게 먹잇감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인간보다 생명이 질긴 동물들도 하나둘 모두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는 유유히 물을 따라 흘렀다. 마치 환난 때에 세상을 피해 교회에 모인 사람들처럼 배는 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완전히 구원하여 새 땅을 줄 때까지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쏟아진 기간이 만 40일이고 그 비가 다 빠질 때까지 110일이 걸렸다. 하나님이 문을 닫으면 그 동안에 어떤 생명도 살아남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방주 안에 거하는 것이 생명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방주 안에 올랐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 공동체에 있는 동안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지내야 한다. 함께 먹고 마셔야 하고 자야 하며 배설도 해야 한다.

 

만일 사자같은 짐승이 다람쥐같은 동물을 잡아먹는다면 그 배 안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 될 것이다. 환기도 잘 되지 않는 배에 피비린내가 날 것이고 그 냄새가 모든 공간을 어지럽게 할 것이다. 한 짐승이 다른 짐승을 공격하면 그 비명 소리 또한 아수라장이 된다. 또 한 군데에 배설하여 버리지 않으면 그 방주는 쓰레기장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분쟁하면 더욱더 난리가 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아의 방주는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 아규비환의 생지옥이 된다.

문제는 방주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뛰어내리면 죽음만이 기다리므로 뛰어내리지도 못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원리다. 뛰어내리면 안되는 것이 공동체다. 뛰어내릴 수 있으면 진정한 공동체가 아니다. 어떻게든 공동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그 배가 내가 속한 각종 믿음의 공동체들이다. 그 안에서 서로 분쟁을 한다면 이 배는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된다. 좁은 이 배는 생지옥이 되는것처럼 화목하지 않은 공동체야 말로 생지옥이다. 공동체가 갈등하고 분열하면 그처럼 힘든 곳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믿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임무가 있다. 첫째,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에 올라야 구원이 되므로 이 공동체에 올라야 한다.

둘째, 그 안에서 화목해야 한다. 공동체에서 서로 갈등하고 싸워선 안 된다. 그 안에서 서로 화목해야만 아름다운 천국이 된다. 서로 갈등하면 냄새나고 시끄러운 곳이 된다. 만일 동물들 모두가 화목하면 이처럼 아름다운 천국은 다시 없을 것이다. 기독교 공동체의 화목은 참으로 아름다운 보석이요 그곳이 곧 천국이다.

 

노아의 방주 자체가 구원의 도구이지만 그 구원의 도구가 반드시 아름다울 수는 없다. 마른 땅이 나올 때까지, 천국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함께 가야만 하는 공동 운명체다. 그 공간이 아름다운 천국이 될지 지옥같을지는 그곳에 있는 자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