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나눔/현대교회의 문제 진단

어느 청년과의 쪽지 대화 3-초대교회와 다른 오늘의 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강 영 길 2012. 2. 11. 10:01

1. 성령세례를 받은 목사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신학생과 목사라면 예수님의 제자이니 예수님이 하신 일 그대로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매님이 질문한 첫번째 내용입니다.

 

이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은 갈수록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예로 해결을 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기르는 강아지가 주인의 뜻을 다 알 수 있을까요? 주인인 사람은 강아지보다 일단 한 차원이 높은 뇌를 갖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강아지에 대한 절대주권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강아지는 주인이 무슨 짓을 해도 그냥 따라야 합니다. 가끔은 사나운 강아지, 성격 나쁜 강아지도 있으나 결국 강아지는 강아지고 주인은 주인입니다.

그런데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차원이 훨씬 차이가 납니다. 물론 이것은 믿을 때 이해가 될 겁니다. 허황된 말같지만 믿음은 구하시는 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좀더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자주 예배하십시오. 혼자서도 예배드리고 교회예배도 자주 가다보면 깊은 믿음이 생길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래도 부족하거든 제가 훈련받았던 예수전도단 BEDTS 등의 제자 훈련을 받아보시면 좋습니다. 교회에서 주로 율법적인 하나님을 만난다면 예수전도단 제자훈련에서는 사랑의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납니다.

저는 30대 초반까지 미친듯이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교회 생활을 했지 가슴깊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자매님과 같은 비판적 생각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 다음 약 13년을 쉬었습니다. 교회 근처에도 안 갔습니다. 그러다 이제야 뼈저리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만나고 보니 성경의 모든 것이 그냥 믿어지더군요. 내가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 모든 것이 믿어집니다.

자매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랑에 의심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심지어 엄청난 단점까지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일 겁니다. 물론 하나님과의 사랑은 인간과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자, 이제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우선 성령 세례 받은 목사님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알기 힘듭니다. 또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 당사자의 신앙의 몫이니 내 신앙의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주변 사람이 도움될 것은 거의 없습니다. 정 궁금하면 성령세례를 받았는지 직접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목사님이 정직한 목사님이라면 대답을 해 줄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길,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그 분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진다면, 하나님의 평화가 느껴진다면 성령세례를 받은 것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이 상대의 기쁨은 진심으로,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상대의 아픔을 진심으로, 자기 일처럼 아파하여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성령세례를 받은 것 아닐까요?

성령 세례는 꼭 어떤 현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깊은 평강이 성령 세례의 특징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성령의 은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열매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성령세례를 받은 분들에게는 열매가 있습니다.

한가지 전제할 것은 그분을 보는 나의 눈입니다. 만일 초록색 선글라스를 낀 사람에게는 세상이 원래의 색깔에 초록색이 덧입혀질 수밖에 없습니다. 뒤에 가서 말하겠지만 가령 목사님이 헌금하라는 설교를 할 때 그것을 감사와 은혜로 받는 사람이 있고 목사님이 돈을 밝힌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안경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중립적인 눈으로 상대를 보고 있느냐? 상대가 베푸는 사랑을 액면 그대로 사랑으로 보는냐가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매님이 일단 맑은 눈으로 목사님을 보십시오. 그러면 그 분이 성령세례를 받은 분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겁니다. 우리는 동족을 알아보는 놀라운 눈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세계 많은 나라를 여행했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한국인 하나도 없는 곳에 가도 한국인을 찾게 됩니다. 또 한국인이 나타나기만 하면 아주 멀리서도 쉽게 알아봅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성령 세례 받은 사람을 비교적 더 잘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자매님께서 성령세례를 받도록 구하시면 좋겠습니다.

 

신학생과 목사님은 예수님의 제자이니 예수님이 하신 일 그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참 무서운 질문입니다. 그리고 괴로운 질문입니다. 슬픈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신학생과 목사님만 예수님의 제자 되라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말씀은 있죠. 질문하신 분이나 저나,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의무를 타고 났습니다. 그러니 신학생과 목사님만이 아니라 교회 다니는 사람은 모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 무섭고 괴롭고 슬픈가? 나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분 중에 세계적인 학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모든 사람들이 천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러더군요. 자기가 천재라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슬프다고. 그분이 MIT에서 공부를 했는데 거기에 가니, 아예 통계 밖에 나가있는 천재들, 수치로 칠수도 없는 사람들이 있더랍니다. 그러니 자기가 슬프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내가 과거에 목사님들과 어떤 일을 하다가 실망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들께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지구촌 교회에 시무하시던 한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오죽 하면 목사가 되었겠습니까? 용서하세요." 저는 지금도 그 말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오죽하면 목사가 되었겠느냐? 이 얼마나 겸손한 자세인가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보통사람들보다 목사님들이 더 훌륭한 분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목사님들의 변호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성경에서 사람을 향해 온유하다는 말을 딱 두 번 썼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구약의 모세고 한 사람이 신약의 예수님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같아지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신학생과 목사님만이 아니라 사도 바울도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인 동시에 신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목사님과 신학생이 성령세례를 받고 보통사람보다 더 성화되어야겠지요. 그러면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지 우리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적이  치유사역자 한 분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똑같은 마음으로 기도한다. 한데 왜 어떤 사람은 고쳐주고 어떤 사람은 안 고쳐주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일 뿐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주인이 왜 강아지와 놀아주기도 하고 놀아주지 않기도 하는지, 그것은 주인의 마음인 겁니다.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명백합니다. 우리는 모두 귀머거리요 맹인이요 절름발이입니다. 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관점입니다. 개미들 중에 일개미 여왕개미, 병정 개미가 있겠지만 그게 인간에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인간이 볼 때는 그냥 개미일 뿐입니다.

그러면 병을 고치고 방언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은 왜 안 일어날까? 그런 사역을 하는 분은 꽤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면 글이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마무리를 하려 합니다.

 

성령 세례 받았는지 직접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도 목사님이나 신학생도, 사도 바울도 예수님과 같은 능력을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랑이 넘치는 교회, 위로가 넘치는 교회, 한 가족이 되는 교회, 서로 나눠주고 나눠 갖는 교회, 함께 가슴 깊이 통증을 느껴주는 교회는 만들 수 있고,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이고 자매님이 원하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 질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