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인연을 맺어온 청년과 저녁 약속을 했다.
나는 이 청년의 스승이다.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는 청년에게 예수전도단 제자 훈련(Bedts)을 권유하고 싶어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수일전부터 약속을 했으나 청년이 시간을 오늘 확정하겠다고 해서
청년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오늘 청년은 전화를 걸어와서 힘이 든다며 퇴근 후에 전화를 하자고 한다.
나는 사실 요즘 너무나 바빠서 도저히 청년을 만날 시간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이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청년에게 전권을 주고 기다린 것이다.
이 청년과의 관계는 꽤 오래 되었다.
나는 이 청년이 어린 시절부터 봐 왔고 청년이 어려울 때마다 결정적으로 도와준 적이 몇 차례 있다.
인간적인 면으로 봐선 청년이 나에게 은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청년은 오늘 저녁 너무 힘들어서 약속을 못하겠다고 했으나
알고보니 그 시간에 다른 약속을 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전화 통화를 기다리노라고 두 차례 문자를 했음에도 아무 연락이 없다.
그 청년의 어머니가 나에게 전화를 하여 일부러라도 만나달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썩 내키지 않았으나 청년에게 문자를 다시 넣어 오늘 저녁 가능하면
내가 집으로라도 찾아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청년은 더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생각건대 이 청년과의 인연은 이제 끝나는 게 아닌가 싶다.
청년은 부족할 게 없는 집안 자제이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원할 땐 연락을 하고
조금만 힘들어도 배려심을 잃는 집안에서 자란 건지도 모른다.
밤이 깊고 결국 이제 자정이 다 되었으나 청년은 연락이 없다.
나는 그동안의 인간적 관계를 생각하며 약간의 불쾌감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한 것을 보더라도 이렇게 무례하게 반응조차 없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이런 정도를 갖고 불쾌감을 갖는다면 대체 어떻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대체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으며
사도들은 어떠했는가?
생각해 보면 나는 오늘 하루를 그 청년과 보낸 셈이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청년을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청년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오늘 하루 너와 함께 하게 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로 인해 힘든 부분이 있었으면 나를 용서해다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실 줄 믿는다."
나는 스승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에게 바람을 맞으면서 하루를 보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가 거만한 것이다.
나는 스승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청년의 소식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보냈다.
나는 스승이기 때문에 당연히 청년을 위해 종일 기다리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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