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6장에 보면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삼손과 데릴라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데릴라에게 삼손의 힘의 비밀을 가르쳐주면 은을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데릴라는 삼손에게 힘의 원천이 무엇이냐고 추궁한다.
데릴라의 목표는 오직 은전을 받는 것에 있다.
데릴라가 얼마나 삼손을 추궁했는지 번민이 심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랑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사랑의 대가를 요구한다.
데릴라가 삼손에게 말하기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삼손을 괴롭히는가 하면 첫번째 부인도 삼손이 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삼손을 괴롭혔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덮어 달라고 한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라고 하고
사랑하면 모든 것을 말해 달라고 한다.
심지어 데릴라는 자기는 진실하지 않으면서 삼손더러 진실을 말하지 않으니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비난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사랑이 없을 때 상대를 비난하게 마련이다.
다리를 저는 자녀를 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아이의 부모가 아닌 사람들은 이 아이가 절름발이라고 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부모는 그 아이를 놀리지 않는다.
그러면 부모는 자기 아이가 절름발이라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부모는 그 아이가 아픈 것을 인정하되 아이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아이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워야 하며
아이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기도할 것이다.
사랑이란 저는 아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를 비난하거나 가르치려 한다.
그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사람들은 사랑하면 모든 것을 기뻐해 주고
단점까지 기뻐해 줘야 한다고 사랑을 왜곡한다.
어머니가 아들이 절름발이인 것을 기뻐한다면 그 어머니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지
사랑에 가득찬 게 아니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아파하고 그 다리를 치료하려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지
문제를 덮는 게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무조건적 수용이 아닌 것이다.
사랑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며
상대와 나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사랑에는 일정한 비밀도 존재해야 데릴라와 삼손처럼 죽음까지 이르게 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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