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동행/하나님과의 통화

떠도는 것이 정착이다.

강 영 길 2012. 8. 28. 12:25

나는 기도에 게으른 편이다.

걷거나 생활하면서 혹은 잠자다가 기도를 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기도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

사실 그동안은 성경을 읽는 시간이 곧 기도하는 시간이긴 했다.

성경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도시간이다.

 

오늘은 묵상 시간에 이어 기도시간을 가졌다.

특히 내 기도제목에 대해 기도했다.

나는 지금 선교사역지에서 비자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비자가 언제 나올지 혹은 나오기나 할지, 거부당할지 모른다.

비자 문제가 결정되어야 내 삶의 영역들이 확실해진다.

 

그동안 나는 정착하지 못했다.

가난한 청년기에는 수없이 많은 이사를 다녔다.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일을 내려놓았다.

글을 쓰거나 혹은 선교사역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국내에서 한국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좀더 교회적인 일을 하고자 한다.

그 모든 것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나는 어딘가 붕 떠있는 상태다.

 

그래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는 정착할 나이도 되었고 정착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셨다.

"네가 정착에 대해 착각하고 있구나."

그게 무슨 말씀일까를 잠시 고민했고, 나는 곧 깨달았다.

 

아브라함은 평생을 떠돌았다.

야곱도 평생을 떠돌았다.

예수님도 평생을 떠돌았다.

바울도 평생을 떠돌았다.

사도들 모두 평생을 떠돌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가장 잘 정착한 자들이다.

 

내가 정착한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 머무는 것이다.

어느 지역이나 어떤 직업을 갖는 게 정착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머무는 것, 그래서 하나님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것이 정착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깨달음에 감사했다.

지금까지 무언가 빨리 결론이 나길 기대했다.

살 곳이나 할 일이 어서 결정되길 바랐다.

하지만 인생에서 그런 결론은 없다.

직업이 있어도 방황하고 좋은 집에 살아도 방황한다.

그것은 정착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정착하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면 이 세상 어디로 가더라도, 수시로 옮겨다니는 삶을 살더라도

그 모든 것이 안정이고 정착인 것이다.

떠도는 것이 곧 정착이라는 역설이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우리더러 안주하라고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떠돌라고 한다.

우리의 가치관을 세상에 두면 정착이 안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치관을 두면 떠도는 것이 정착이다.

하나님은 가만히 있길 바라지 않는다. 모험하는 인생을 살라고 하신다.

나도 사도들처럼, 바울처럼, 야곱처럼, 아브라함처럼, 예수님처럼 떠돌며 살아야겠다.

그것이 곧 가장 훌륭한 정착이며 안정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