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명 남짓한 테이블에서 주일마다 서로 큐티 나눔을 한다.
함께 반년이상 큐티 나눔을 하는 형제가 하나 있다.
이 형제는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을 하고 대외적인 사역도 많이 한다.
바쁜 만큼 참여 시간이 좀 적다.
또 다른 형제 한분은 매주 참여하지만 딱히 이렇다할 사역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역이 없으니 아마도 매주 자리에 참석할 수도 있다.
지난 주에 자주 참여하는 형제가 결석을 했다.
그리고 대내외적으로 왕성히 활동하는 형제는 참여했다.
그런데 참석한 형제가 결석한 형제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나눔을 하다보면 반복적으로 이름을 말하게 된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도록 이름을 모른다는 게 약간 낯설게 생각되었다.
잠시 창세기 1장으로 돌아가본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하셨던 창조 사역을 계승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창조는 만남이다.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창조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뒤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이름을 붙이신 것이다.
무엇인가 칭호를 정했다.
낮이라고 했거나 밤이라고 했거나, 이름을 붙였다.
이름은 존재의 집이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람만 알면되지 이름 알아 무엇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대외적 사역까지 하는 사람들이 사역 현장에서 부르짖을 것은 분명,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적어도 이름 석자를 아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아니 이름 석 자도 모르는데 사랑을 할 수나 있을까?
가까운 사람의 이름을 아는 것
가까운 사람의 상황을 아는 것
가까운 사람이 무슨 일을 하면 무슨 아픔이 있는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세상을 사랑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으면서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믿을 수는 없다는 말씀과 마찬가지로
눈앞의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세 세상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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