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은 율법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성령이 그 율법에서 인간을 해방시켰다고 했다.)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율법을 따르는 자는 율법을 생각하고 영을 따르면 성령의 일 곧 긍휼과 사랑을 생각한다.)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캔터베리 이야기로 유명한 초서는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익숙한 적만큼 무서운 적은 없다.”
이 말을 바꾸어 보면 가장 익숙한 죄만큼 무서운 죄는 없다는 말이 된다. 나에게 익숙한 죄에 대하여 나는 늘 합리화하고 용서를 한다. 그리고 내 죄와 수시로 타협하여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그 죄는 반복적으로 짓는다. 마치 내가 매일 옷을 입는 것처럼 죄를 짓는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죄는 무엇인가? 나에게 가장 익숙한 죄는 게으름과 음란과 판단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게으르고 내 생각이 음란하며 내가 판단을 잘 하는 사람인지 고백한다.
주님 나는 게으르고 음란하며 판단하기 좋아하는 무익한 종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이 고백과 선포로 인해 내가 억울하고 무언가 손해본 것 같으면 나는 이 고백과 선포는 온전한 회개가 아니다. 이 고백과 선포가 나를 기쁘게 하고 해방시키며 평안을 주어야 온전한 고백과 선포다.
건전지가 들어가는 기계에 건전지가 없으면 그 기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하나님의 영은 건전지요 내 몸은 기계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영 없이 내 몸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다. 건전지는 기계를 움직이는 에너지요 기계의 생명 자체가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은 내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요 생명이다.
내가 하나님의 영을 따르지 않으면 해방이 없다. 하나님의 영을 따를 때 부활도 있고 생명도 있고 평안도 있으며 궁극적으로 죄로 인해 물리적 법칙에 묶여 있던 내가 완전한 해방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이 내 몸의 본체요 핵심이 되어야 한다.)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나는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많은 명예를 추구하려는 삶을 살아왔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많은 것을 버린 것도 있다. 하지만 내가 영광을 받으려는 욕심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을 때는 부모가 진 빚도 한꺼번에 물려받는다. 부모가 준 재산을 받는 순간 부모가 졌던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고스란히 내게 내려온다. 빚을 갚고 싶지 않으면 상속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으니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한 고난도 달게 받아야 한다.
고난은 우선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이다. 육신대로 살아가면 고난은 없다. 내 욕망을 죽이는 것이 고난이다. 내 욕망의 범주를 살펴보아야 한다.
내 욕망의 범주는 너무나 크다. 한국 교회는 대형화 되었다. 대형화 된 것은 인간관계에서 부딪치기 싫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 한 원인이 된다. 하나님은 서로 관계하면서 살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요구보다 나의 욕망이 앞서게 되면 사람들은 대형교회로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정작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려 한다. 하나님은 그의 예배도 받으실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만 잘 관계하면 된다면 하나님이 굳이 인간을 세상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대형 교회에서 묻혀 살지 않고 그 안에서 적극적으로 사람과 소통해야 한다.
내 욕망은 내가 내려다보는 사람이 되게 한다. 나는 낮아져서 올려다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순간순간 내려다보려는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낮아져야 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내 욕망의 범주다. 내가 인정받지 못할 때 섭섭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 때가 있으면 나는 나를 돌아봐야 한다. 내가 하는 주장을 놓지 않을 때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감사가 없고 내 얼굴에 미소가 없으며 기쁨과 평안이 없는 것도 내 욕망의 범주다. 하나님의 상속자인 나는 즐겁지 않을 수 없고 기쁘지 않을 수 없으며 평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도 많은 욕망의 범주를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서 기도하고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이나 기도나 찬양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나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상속자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 말은 현재 우리는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고난당하지 않는 사람이 현재의 고난이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당장 고난의 삶을 살아야 함을 뜻한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피조물은 자연물 모두를 뜻한다. 세상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들 곧 인간이 나타나기를 뜻한다. 자연은 인간에 의해 올바르게 다스려지기를 원한다.)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자연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따르도록 질서를 만드신대로 질서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피조물이 정녕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돌아가는 것이다.)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인간의 사망의 길을 걸을 때 인간만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 곧 자연도 함께 고통을 받는다.)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소망은 보이지 않는 데 있다.)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18절부터 25절까지 본문은 읽는 자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먼저 20절을 읽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항하며 죄를 짓고 살아왔다. 그런데 죄를 짓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22절처럼 모두가 다 탄식하여 고통을 겪는다. 그것은 단지 구원받지 못한 자만이 아니라 23절처럼 성령의 열매를 얻은 사도들조차 탄식하고 고통받으며 자연과 우주만물이 모두 다 고통받는다. 성령의 열매를 얻은 자들도 탄식하면서 몸이 자유롭길 원하고 있으니 나같은 존재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지만 나도 사도들처럼 되고 그 이상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고통중에 바라는 것이 19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21절에서 다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우리는 사망과 썩어짐의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광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영광임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영광스런 일은 ‘보이지 않는’ 소망이라고 24절에서 말하고 있다. 보이는 것은 이미 이뤄진 것이다. 이뤄진 것을 소망할 이유는 없다. 이뤄지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는 것은 강조할 이유가 없는 말이다.
그 소망이 간절하고 진실하다면 25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참으면서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해서 18절로 돌아간다. 그것은 현실의 고난인데 장차 나타날 영광은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18절이 결론이고 나머지 부분이 18절을 위한 전제가 된다.
고난에는 하나님이 주는 고난과 인간의 욕망이나 사탄의 역사로 인한 고난이 있다. 하나님이 주는 고난은 시련이고 인간과 사탄이 주는 것은 유혹이다. 많은 사람들은 유혹이 고난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의 고난은 유혹이 아니라 시련이다.
우리가 시련을 받는 것은 거룩한 시련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의 시련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구별되기 위한 시련이라는 말이다.
지금 내가 받는 시련은 하나님 나라에서 얻을 영광에 비교조차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지금 보이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한 순간씩이라도 미시적인 눈을 제거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노력을 하기로 한다.)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내가 기도할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성령께서 나를 위해 견딜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신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신다는 말이다.)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요 하나님이 성령의 생각을 아시므로 그 기도는 이뤄진다.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스스로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이다. 나는 기도 생활이 약하다. 매순간 하나님께 묻고 답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때때로 나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놓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성령님이 나를 위해 깊은 탄식으로 기도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깊이 살피셔서 성령님을 통해 나를 위해 기도하게 하신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나는 부르심을 입은 자이고 사랑받은 자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모든 것이란 좋은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다 합해서 선을 이루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예수님의 형상으로 선택했다고 했다. 하나님은 계획없이 행동하지 않으신다. 미리 계획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행동하신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선은 나로 하여금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여 맏아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맏아들은 상속자다.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 그 전제조건이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상속자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내 삶의 모든 경험을 통해 나를 다듬으셨다. 이제는 나를 의롭다 하시고 자녀로 삼으셨다. 아직 나에게 부족한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아들 중에서도 상속자인 장자가 되기 위하여 나는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은 나쁜 일과 좋은 일, 그 모든 일을 통해 부르심 입은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를 섬기고 희생한 사람이다. 상속자는 예수님처럼 섬기고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라고 성령님은 오늘도 나를 위해 간구하신다. 나도 이 본문에 나타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합력하여 제 삶에 선을 이루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더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게 하시고 성령의 도움에 따라 세상에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그 순간 나는 영화롭게 될 것이 약속된 것이다.)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내 편일 때 나를 대적할 자는 결코 없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들까지 준 분이 더 이상 무엇을 아끼겠는가? 실제로 인간이 누군가를 위해 내 자식의 목숨까지 버리게 했다며 그자를 위해 무엇을 아끼겠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신다.)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시고 성령님도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시므로 믿기만 하면 그야말로 천하무적이 된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도살당하는 것은 칼로 목을 베는 것이다. 매일 매순간 그렇게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매일, 매순간 죽어야 하는 나를 대신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죽으셨다. 그 죽음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을 확증하셨다.
매일, 매순간 내가 살아 있으려고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랑을 확인시키지 못한다. 내가 죽을 자가 아니면 예수님이 어떻게 나를 대신하여 죽겠는가? 내가 살 수 있는 자라면 예수님의 희생이 무의미해진다.
나는 참으로 사망에서 헤어날 수 없는 자이나 매일 매순간 예수님이 날 위해 기도하시고 날 구원하신다. 결코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을 하나님은 나에게 주신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사망, 죽음, 생명, 천사, 권세자, 현재일, 장래일, 높음, 깊음 등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보다 크고 위대하시며 그 모든 상황에서도 나를 사랑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