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동행/세상과 교회를 향해

종기와 사제와 목사와 선거

강 영 길 2013. 11. 24. 22:46

나는 지난 주에 작은 수술을 했다. 20년쯤 전에 엉덩이에 콩알만한 지방종이 생겼다. 너무 작고 특별히 몸에 나쁠 것도 없어서 그냥 두었으나 그 지방덩어리가 너무 커져서 앉기에도 불편했고 앉기에 불편하니 몸을 비뚤게 앉아서 척추에도 무리가 갔던 것 같다.

 

요즘 세상이 참 시끄럽다. 최근에는 정의구현 사제단이 대통령 물러나라는 말을 했고 청와대는 이에 대해 종북 몰이를 한다. 청와대조차 나서서 이제는 종북 운운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우리 나라는 어쩔 수 없는 아시아의 소국인가 하는 자조감 마저 든다. 청와대는 이런 문제에 대해 가능하면 서로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작금의 청와대는 거의 모든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 직접 잣대를 들이대는 형국이다. 아무래도 청와대 심기가 불편하긴 불편한 모양이다.

 

나는 이런 문제를 볼 때마다 참 역겹고, 어쩌면 인간들이 저렇게 파렴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부분이 있다.

"사제는 정치 문제에 끼어들지 말고 복음에만 전념하라."는 논리가 나를 역겹게 한다.

선거철에 수많은 극우적 교회들이 보수 정당의 후보를 지지했고, 설교시간에조차 공공연히 선거운동을 하기까지 한다. 선거 이후에도 은근슬쩍 극우적인 발언을 한다. 그럴 때에 한국의 극우나 보수 정당은 단물을 고스란히 빨아먹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해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한 교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정치에 간섭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은근슬쩍 즐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제들에게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논리라니. 극우파가 득세한 많은 교회들이 민주화운동할 때는 교회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했다가는 요즘 들어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적 활동을 하고 심각한 불법적인 선거운동에 해당하는 설교까지 한다. 그러면서 반대파인 사람들이 입만 열면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라고 했을 때는 정치만 빼라고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우익들만 입을 열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의구현 사제단은 말을 하면 안 되고 극우 목사들은 말을 해도 된다는 것인가?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의 잣대는 대체 얼마나 유연한 걸까? 마음대로 눈금을 휠 수 있으니 참 유용한 잣대이기도 하다.

 

나는 수술후 열흘이 지났는데도 아직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고 있다. 집도한 의사는 수술이 끝난 뒤 당구공만한 종기를 떼어냈다고 한다. 십년 전에만 떼어냈어도 이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한다. 아무리 문제 없는 종기도 그 크기가 커지고 나면 사람을 괴롭힌다. 수술할 때 아랫도리를 벗는 것이 부끄러워서 가지 않은 게 결국 오늘까지 오고 말았다.

 

선거 끝나고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박대통령과 여당이 사과를 해 버렸으면 참 좋았겠다. 하지만 치부를 드러내는 게 부끄러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종기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그들은 끝끝내 사과를 거부했다. 설마, 자신들이 받은 혜택이나 저지른 일이 정당하다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진작에 사과를 했으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거 과정 자체로 나라는 몹쓸 지경에 놓여버렸다. 국가기관들이 동원된, 눈뜨고 보기 힘든 상황 말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박대통령 물러나라고는 하지 않았을 때 그냥 과감히 사과를 했으면 지금 이렇게 종기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대통령이 천주교 신자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아버지들과 참 많은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육신의 아버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거니와, 하늘 아버지의 대사들, 사제(Father)들과도 관계가 있다. 대통령이 고해성사를 하며 하나님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했을 사제들, 그 아버지들에게는 어떻게 대할지 참 궁금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