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청년 하나는 서울대학교에 재학중이면서 사회봉사도 아주 열심히 한다. 인성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청년이다. 그 청년에게 한 번은 복음을 전했으나 청년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가치를 실현하고 봉사하며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믿음이나 신앙 따위는 허황하고 굳이 믿지 않아도 선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성경에는 종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성모 마리아도 성령님께 수태고지를 받을 때 나는 주의 종이라고 고백했다. 원래 종은 주인이 하기 싫은 일, 귀찮은 일, 더러운 일을 한다. 그러니 온갖 궂은 일을 하는 게 종의 위치다. 하물며 주인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했으니 예수님의 종인 자들이 할일이란 말할 수 없이 천한 일이다.
오래 전에 파워오브 원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 백인 청년이 흑인 노예들을 구하기 위해 싸운 이야기다.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였으나 영화를 보고 나서도 찜찜했던 것은 그 많은 흑인 중 하나가 투쟁의 선봉장이 된 게 아니라 오직 한 명인 백인이 흑인의 구원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요즘 청년들이 복음을 싫어하는 이유가 복음 자체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가 문제라고 한다. 무언가 가르치려 하고 자신이 우월자라는 입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러면 믿지 않으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자들은 어떻까? 그런 봉사자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봉사하고 자기가 돕는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도움을 받는 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내가 돕는다는 입장이다. 그게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그렇게 하는 것은 교만이다.
인간은 자신이 죄인이고 종이라고 생각하면 상대에 대해 우월감을 가질 수가 없다. 내가 무엇을 주는 게 아니라 나는 상대와 동일한 존재로서 전달자 곧 배달부가 될 뿐이라고 생각할 때 평등한 관계가 성립된다. 그것이 소명을 받는 일이다. 소명이 있는 자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누군가를 돕는다.
신앙인이 되는 것은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내가 우월자가 아니라 대상과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신앙이다. 그런 면에서 봉사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나의 교만을 해소하는 일이 되지 않으려면 신앙인이 되거나 종으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갖는 봉사정신이 자칫 교만의 한 단면이 되지 않기 위해서 소명을 받는 자세, 종이 되는 자세가 중요하다. 종이 되려면 나의 주인인 누군가 절대적인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 존재는 온 우주를 동일하게 바라볼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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