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동행/세상과 교회를 향해

교회는 사디즘적 증오를 버려야 한다.

강 영 길 2015. 6. 22. 00:21

교회는 사디즘적 증오를 버려야 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누군가를 증오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을 사디즘과 관련하여 설명하곤 한다. 누군가 증오를 하면서 자신들은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가학적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강남 노회 중부시찰장이라는 분이 와서 사뭇 격정적으로 말씀을 전했다. 사실 이 자리는 우리 교회 목사님의 위임식이었으므로 축하하고 위임식에 맞는 이야기를 해야 할 자리였다. 그러나 이분은 그런 자리에 관한 이야기는 간략히 하고 정작 "동성애 집회의 부당성"에 대해 격렬하게 공포심(?)을 자극했다.

 

내가 녹음을 하지 못했기에 이분의 이야기를 기억에 의존해 기록해 본다.

1.동성애적 성관계를 하면 90%가 넘게 에이즈가 걸린다.

2.차별금지법이 들어오면 목사님들은 앞으로 설교에서 비판적인 설교는 못 하고 세 차례의 차별적인 설교를 하면 감옥에 가야 한다.

3.박원순 시장이 동성애 집회를 허용한 게 문제이고 박원순 시장같은 사람 때문에 결국 이 사회는 타락하게 될 것이다.

4.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모두 대동단결하여 이 집회를 막아야 한다.

 

나는 이 분의 격정적인 이야기(설교시간이 아니었다.)를 들으면서 사뭇 묘한 뉘앙스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분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건지, 박원순 시장을 비판하는 건지 분명한 선을 느끼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동성애 이야기를 하면서 내면적으로는 박원순 시장으로 대변되는 진보진영을 증오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저분과 같은 분들은 항상 도덕적 당위성 문제를 들고 나와서 근거도 없이 진보진영을 증오하는 일을 거침없고 쉬임 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분 목사님은 도덕적인 분일지 모르지만) 본인들은 도덕적 행위를 하지도 못하면서 그랬다는 것이 더 문제다.

 

앞의 4항목 중 동성애를 금지하는 게 좋다는 취지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것은 성경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머지 항목들은 그 목사가 객관적 근거를 왜곡시킨 채 선동하고자 하는 목적의 발언이었다. 선동과 설득의 차이는 아마도 근거의 왜곡 여부에 있을 것이다. 설득은 그 근거도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하지만 선동은 근거가 옳지 않고 진실성이 떨어질 때 선동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동성애를 하면 90%가 넘게 에이즈가 걸린다는 사실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그 주장이 너무 터무니 없어서 반론조차 제기하기 어렵다.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이라는 것은 동성애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틀이라고 한다. 동성애가 옳다는 게 아니라 에이즈의 원흉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주장이 옳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할 일이 아니다.

 

둘째, 차별 금지법에 대해 기독교계가 반대하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야고보서 2장은 인간을 차별하는 게 죄라고 되어있는데, 왜 차별을 금지하는 게 금지되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오셨는데 차별을 금지한다고 하면 기독교가 더 먼저 환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차별 금지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목사님들의 설교 세 번이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논리도 공연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말이다. 법이란 유치원생들의 소꿉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인종차별이나 지역 차별 학력 차별 등등 각종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적인 법이 아닐까 한다.

 

셋째, 박원순 시장을 물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의도가 나빠보이고 바로 이 점이 사디즘적이라는 말이다.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나 집회를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일이다. 그것은 시장의 마음대로 허락하거나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이 마치 동성애를 옹호해서 이 집회를 허용한 것처럼 말하면서 교묘하게 한국의 진보세력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오세훈 시장과 박원순 시장의 선거 때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말하길 박원순이 시장이 되면 동성애법이 통과되어 학교는 모두 동성애자로 가득 차고 차별 금지법으로 인해 아이들은 모두 임신하고 다닐 것이라는 논지로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훈련 받은 예수전도단에서는 훈련시간까지 와서 아예 그렇게 흑색선전을 하는 간사들조차 있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위기 의식을 느끼는 걸 보면서 나는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서울 시장이 대한 민국 법을 어떻게 바꾼다는 말인가? 그것은 서울 시장이 하는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가 법으로 정할 일이다.

 

만일 그런 법이 통과된다면 국회의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책임질 일이다. 일개 지방자치단체장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박원순 시장이 가능하다면 쿠데타를 일으켜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이 당선되면 대한민국은 그렇게 된다고 선동했다. 어느 누구도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하소연을 해야 해결될 문제였다. 힘없는 야당이 아무리 노력해도 거대여당이 반대하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국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이 일을 사람들은 믿었다. 예수 전도단 안에서도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중보기도를 하곤 했다. 그것은 마치 광기 같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디즘적 쾌락이다. 

 

최근 몇 번의 서울 시청 주변 집회에서 경찰 버스가 옹벽을 친 사건은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을 박원순 시장이 한 것인가? 서울 시청 집회를 허용하거나 가로막는 것은 그 누구보다 현 정권이 잘 하는 일이다. 그러면 현 정권이 동성애 집회를 막거나 허용하는 일을 할 수 있는데 이 정권은 왜 그것을 가만히 두는가? 그렇게 보았을 때 동성애 집회를 허용하는 것은 박원순 시장인가? 현정권인가? 시위와 집회는 신고제이므로 신고하면 누구라도 집회를 할 수 있다는 게 한국의 법이다. 박원순 시장은 보수단체이건 진보단체이건 민주적으로 집회를 하도록 허용한 것 뿐이다.

 

그러나 현정권은 본인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집회를 가로막았고 본인들의 입맛에 맞으면 집회를 허용했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볼 때 동성애 집회를 허용한 것은 현정권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동성애자는 서울시민만 있는 게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다. 서울 시장이 무슨 자격으로 국민을 다스린다는 말인가?

따라서 그 목사는 현 정권을 문제 삼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사는 박원순 시장이 마치 동성애를 허락하고 박시장의 자녀들도 동성애를 하도록 허용한 듯한 발언을 했다.

 

나는 한국 교회 목사들이 정말로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에 편승하여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을 억압하는 데는 침묵하던 자들이다. 그들은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이 울부짖을 때는 성도들에게 침묵을 요구했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몸부림에 대하여 오히려 순종하지 않는다고 돌을 던졌다. 그러던 자들이 기득권층의 입장이 조금만 해가 되려고 하면 일어서라고 선동을 한다.

 

오해를 없애기 위해 나는 분명히 말한다. 나는 동성애에 반대한다.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죄인이고 그들을 정죄할 자격도 나에겐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동성애 하지 말라고 함께 외치고 기도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도덕적 우월감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자꾸만 도덕적 우월감으로 무장하려고 한다. 그것이 역사 속에서 수많은 폭력을 자행한 기독교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죄 없는 자만 돌로 치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동성애를 안 하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돌아온 탕자이지 형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게 겸손의 실상이다. 예수님이라면 과연 그렇게 했겠는가?

 

나는 그분을 비롯한 많은 목사님들과 한국 교회가 사디즘적 쾌감을 즐기느라 타인을 증오하는 일을 그만 두길 간곡히 기원한다. 북한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증오하고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위한다고 하면서 차별하고 소수들을 아낀다고 하면서 짓밟는 도덕적 우월주의라는 사디즘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길 바란다. 그리스도의 사랑, 무한하고 한량없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세상을 바라보고 품는 한국의 교회가 되길 기도한다.